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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봄은 너의 어머니다”…뮤지컬 ‘봄날’

어머니, 고향, 그리움, 그리고 봄날은 누구에게나 있는 하얀 운동화 같은 기억이다. 때가 묻어도 빨면 다시 새하얘지는 해묵은 기억은 굳이 들춰내지 않아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주름진 손가락 마디만 보아도 내 어머니인 줄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어머니 같은 봄날은 목소리 높여 외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송 스루 뮤지컬에서 발견한 Poetic

빈 무대,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알 수 없는 이곳에 떠도는 이의 모습을 하고 아름다운 말들을 늘어놓는 한 남자가 있다. 그가 내뱉는 말들은 삶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무겁지도, 한마디 노래로 흘려버릴 만큼 가볍지도 않다. 그저 여러 해 봄날을 지나온 인간의 세월에 대해 늘어놓을 수 있는 만큼의 무게이다. 아름다운 언어로 점철된 언어를 내뱉는 남자 뒤로 또 한 번의 봄날을 맞이하는 남녀가 있다. 그들은 말없이 봄을 느끼는 듯 무대를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봄날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는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시어로 무대를 가득 메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인 뮤지컬 ‘봄날’의 오프닝 장면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작은 거리의 시인 ‘그랭구아르’가 파리의 아름다움을 운율감 있는 언어유희로 소개하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오프닝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 프랑스 뮤지컬은 ‘노트르담 드 파리’처럼 대사 없이 노래로 모든 서사를 이끄는 ‘송 스루’ 형태로 진행되는 것들이 많다. 리얼한 말의 표현을 모두 노래로 대체한 프랑스 뮤지컬이 표방하는 바는 언어 하나하나가 주는 영감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데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뮤지컬에서 언어유희는 하나의 파트로써 분절되지 않았고, 음악 속에 응집되어 서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장면의 정서, 음악이 주는 감동까지 끌어올리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이번에 공연된 뮤지컬 ‘봄날’도 프랑스 뮤지컬과 같이 시적 언어를 충분히 활용했다는 점에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Poetic의 여러 시도

뮤지컬 ‘봄날’에서는 이야기 밖에서 인물들을 관찰하는 인물을 두 명 배치한다. 한 명은 서사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시인이고 한 사람은 이야기 안에서 죽은 자로 등장한 어머니이다. 서사 밖에 인물을 배치하여 인물들의 정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래하게 장치한 시도는 함축적인 가사 때문에 서사의 전달이 약화 될 수 있는 뮤지컬의 약점을 보완한 방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작품에서 서술자가 따로 등장하는 경우, 관객은 이야기 속 인물들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반응이나 행동을 통해 장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시인과 어머니는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 뿐 그 이상 해석의 여지를 주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서사와 장면의 정서를 극대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시인의 등장은 작품의 이해를 돕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작품 전반의 촛점을 흐리는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음악 요소 안에 정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함축적인 표현을 활용한다. 특히 노래 가사는 정서를 대변하는 강렬한 단어를 고르고 리듬감을 살리는데 주력하기 때문에 시의 양식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시인이 내뱉는 말도 절반 이상이 비유와 함축이 가득한 언어유희다. 따라서 각 노래에서 정서를 이미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시인까지 등장하여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면 같은 맥락의 말들을 되풀이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이 어느 지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프랑스 뮤지컬이 노래와 대사를 융합해 응집된 산물로 노래만을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지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객에게 너무 친절했던 뮤지컬 ‘봄날’

이번 작품은 비교적 작은 극장에서 관객과 가깝게 호흡하는 것을 콘셉트로 진행되는 공연이다. 이 작품은 다루고 있는 소재 또한 어머니, 고향, 후회 등 누구나 한번쯤 가진 기억에 대한 것들이다. 완성도 높은, 잘 다듬어진 노래보다는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듯한 일상적인 표현이 효과적이다. 이런 경우 대극장에서 쓰일만한 정확한 발음과 분명한 발성을 하는 창법이 아닌 말하는 듯한 창법으로, 다시 말해 작은 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큰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소위 대극장 창법에 가까운 노래가 많이 눈에 띄었다. 수야와 시인의 노래가 가장 그러하다. 시인의 경우에는 이야기 밖에 존재하는 정보 전달자이므로 이러한 표현이 허용되는 지점이 있지만, 수야는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서사 안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물로서의 정서와 노래가 연동된 창법을 구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수야와 은호가 사랑에 대해 노래를 하는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다. 노래의 내용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어 굉장히 진한 정서를 표현하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서로의 시선은 서로를 향하고 있지 않고 관객을 향해 있기 때문에 노래의 톤이 커지고 목소리도 과장이 되어 어색하다. 멀리 있는 관객에게도 가사를 잘 전달하기 위해 관객을 향해 크고 분명한 소리를 내는 노래는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의 정서와 색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가진 일반적 이미지가 가져온 오류

어머니의 경우, 구시대적 인물로써 사투리와 느린 행동을 구사하는 등 자신의 정서를 노래에 잘 연계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한국 전통 춤의 사위를 인용한 몸짓과 창이나 민요조의 말투를 변형시킨 노래는 다른 인물과 조화의 측면에서나 필요성 측면에서나 어떤 이유로 이러한 설정이 삽입된 것인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머니가 남사당의 손녀이며 아내였다는 전사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은 작품 전반에 강조된 전사가 아니다. 만일 확실한 의도가 없이 어머니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전통적 요소를 삽입하는 것은 어머니라는 인물에게 부여된 일반적 이미지를 단순히 ‘전통’적인 색채로 여과 없이 치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풍자극에 등장하는 가면을 쓰는 이유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어머니의 일반적 이미지는 오히려 수야와 은호의 어린 시절을 통해 잘 드러난다. 특히 인형을 활용한 어린 시절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다. 이 부분은 수야와 은호를 대신한 인형이 그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다. 인형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구사하는 과장된 말투를 얼마든지 사용해도 허용되는 지점이 있어 정서를 극대화하는데 적합하다. 이는 풍자극을 공연할 때 가면을 쓰는 이유가 더 풍부하고 과장된 연기를 구현하기 용이하기 때문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고향, 시골, 봄날, 어머니에 대한 향수에 대해 어린 시절이라는 개념을 핵심 축으로 잡고, 이 개념의 중심에 인형 내세워 장면의 정서를 극대화시킨 점은 매력 지점으로 작용했다.

전형성을 전형성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 뮤지컬 ‘봄날’에서 현대적 시의성을 찾으려 한다면 무리가 있다. 하지만 시의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진리처럼 다뤄질 수 있는 소재인 가족, 그리고 사랑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외로운 소년과 몸이 아픈 소녀의 순수한 사랑은 소설 ‘소나기’의 모티브를 연상시킨다. 또한 남사당패였던 의남매 오빠와 결혼하여 모진 세월을 겪어낸 어머니가 자신의 삶이 되풀이되는 것이 두려워 의남매인 은호와 수야의 사랑을 말리는 구도는 한국적 소재의 정서를 풍부하게 드러낸다.

한국적 전형성이 짙은 소재는 새롭지는 않지만 특별한 울림이 있는 ‘슬픔’이다. 하지만 드러내는 방식이 인물의 상황이나 성격을 말로 설명하는 방식에 그쳤기 때문에 선택된 소재만큼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 초반에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온 은호와 수야가 봄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가장 대표적인 지점이다. 고향 마을에 돌아온 수야의 얼굴이 밝지 않은 것을 눈치챈 은호는 수야에게 이유를 묻는데 수야는 ‘봄볕이 좋아서 그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봄, 봄볕, 봄날 등의 봄의 개념과 이미지를 말로써만 표현하여 관객에게 봄의 이미지를 강요하는 부분이다. 만일 이런 부분들이 설명하기가 아닌 ‘관찰 가능’한 방식으로 표현된다면 어머니, 용서, 봄날, 후회와 같은 전형성 강한 소재도 전형성 이상의 지점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나여랑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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