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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Flashback. 60] 소통은 곧 사랑…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가족 간의 소통’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주제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에서 수없이 다뤄온 문제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낡아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비슷한 소재라도 어떤 화법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극이 되곤 한다. 연극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은 ‘언어와 감정’, ‘공동체와 개인’, ‘대비와 투영’을 통해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불통(不通)의 전이를 전에 없이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주제는 날카롭지만 따사롭고, 감동은 단단하다.

빌리는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이다. 날 때부터 듣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노력을 통해 구순술(입 모양을 읽는 것)을 익혔고, 어눌하지만 말도 구사할 줄 안다. 집안은 온통 언어중독자들이다. 직설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아버지, 소설을 쓰는 어머니, 언어와 관련된 석사논문을 쓰는 형, 유일하게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아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누나까지. 집안은 하루 종일 논쟁과 언어로 뒤덮여 숨 쉴 틈이 없다. 어느 날, 빌리는 자신의 청각장애인 여자친구 실비아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는 자신의 가족들이 실비아와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고, 가족이 그동안 자신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품은 ‘가족’과 ‘사회’, ‘공동체’ 간의 공통점을 통해 주제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가족은 곧 부족이라는 공동체로 투영되고, 부족 내에서 나타나는 불통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로 치환된다.

가족의 중심에 선 아버지는 이방인이 자신들의 삶에 끼어드는 것을 거부한다. 작품 속 다니엘의 여자친구 헤일리는 ‘북부 출신’(심지어 아버지가 북부 출신이다)이라는 이유만으로 쫓겨난 일이 있다. 아버지가 세운 ‘공동체 구성원’의 자격에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는 빌리도 공동체의 구성원 자격이 부족하기로는 헤일리 못지않다. 빌리는 ‘언어’를 맹신하는 가족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인 ‘청각장애’를 지닌 인물이다. 가족들은 빌리의 청각장애를 애써 외면하며 그를 정상인처럼 대하려 한다. 구순술을 가르친 것도 그를 가족의 공통분모에 간신히라도 걸쳐놓기 위해서다. 빌리는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지도, 배척하지도 못한 채 가족들의 규율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가족들에게서 늘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빌리는 관객에게 불편한 공감을 안긴다. 가족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인 언어로 자신을 변호하지만, 정작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시종일관 폭포처럼 쏟아지는 수위 높은 대사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공중에서 흩어져 버린다. 그들은 서로에게 고개를 돌린 채 자기 말만 쏟아낸다. 유일하게 그들의 상처를 바라보려 애쓰는 것은 빌리 뿐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그에게 ‘아무 일도 아니야’라는 말로 무마한다. 누구보다 많은 말을 하면서도 전혀 소통하지 못하는 무대 위 가족의 모습은 ‘자신의 말만을 하기 바쁜 우리 사회 가족들의 모습’을 뒤편에 조용히 세워놓는다. 가족들의 대화를 유심히 관찰하는 빌리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땅 속으로 꺼질 것 같은 무거움을 가진 작품은 아니다.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가족들의 언변 사이에서 반짝이는 검은 유머들과 불통의 상황에서 툭툭 터져 나오는 웃음 코드들은 극의 리듬을 지루하지 않게 변주한다.

 

빌리가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가족에게 수화로만 대화하겠다고 선포하는 장면은 위기의 절정이다. 빌리는 ‘언어’에 갇혀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청각장애인의 언어 ‘수화’로 맞선다. 추측하고 왜곡하는 ‘언어’와 솔직하고 직설적인 언어 ‘수화’의 대립은 가픈 긴장감의 포물선을 격렬하게 오르내린다.

작품은 자막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센스를 발휘한다. 빌리의 독립 선언 장면이 펼쳐지는 무대 뒤쪽에는 몇몇 자막이 스쳐 지나간다. 이는 가족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소통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는 연극적 장치다. 예를 들어, 떠나겠다는 빌리에게 어머니는 “널 이해해”라고 말하지만, 자막에는 “이해 못하겠어”라고 뜬다. 언어와 속마음의 불일치는 관객의 이질적인 웃음을 자아내고, 우리가 현실에서 체험하고 있는 ‘소통의 부재’를 더욱 가깝게 끌어당긴다.

빌리는 기어코 가족들 곁을 떠나 독립한다. 그가 가족을 벗어나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만의 부족’을 만드는 일이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실비아와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려 한 것이다. 하지만 빌리는 새로운 부족에게 그렇게 벗어나려 했던 가족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는 실비아에게는 ‘수화’로 말하라고 권하며, 구순술을 악용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작품은 결국 우리가 ‘가족이란 부족’을 통해 배우고 학습하며 규정되는 존재인 것을 ‘실비아와 빌리’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일련의 사건이 지난 뒤, 빌리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가족들은 작은 변화를 겪는다. 형 다니엘은 돌아온 빌리에게 사랑을 고하고, 누나 루스는 피폐해진 다니엘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려 애쓴다. 부모는 겸연쩍지만 따뜻한 말로 돌아온 그를 환영한다. 빌리가 유일한 안식처였던 형 다니엘이 먼저 수화를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마주 선 빌리와 다니엘은 ‘추측하고 상상하며 왜곡하는 말’ 대신 ‘조금 더 직설적이고 솔직한 수화’로 첫 대화를 나눈다. 빌리는 “사랑해”라는 수화를 손으로 전하고, 다니엘은 낯설지만 천천히 그의 동작을 따라 한다. 서로에게 전한 ‘사랑의 말’, 이보다 더 좋은 결말이 있을까. 결국,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의 주제는 그들이 손끝으로 말했던 ‘사랑’이라는 그 단어 하나에 모두 함축되는 일일 것이다.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12월 1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노네임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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