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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다운 배우로 남고 싶어요” 뮤지컬 ‘위키드’ 배우 전호준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지만 ‘재미’가 있기에 오늘도 달린다

 

2013년 11월, 대한민국 뮤지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작품이 있다. 브로드웨이의 블록버스터로 불리며 10년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뮤지컬 ‘위키드’다. 작품은 탄생 10주년을 맞아 한국어 버전으로 새 옷을 입고 당당히 오픈런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옥주현, 박혜나, 정선아, 남경주와 새로 합류하는 김선영, 김소현까지…. 뮤지컬 ‘위

키드’를 보기 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막이 오르면 이들과 함께 무대를 빛내는 앙상블 배우들의 열연에도 뜨거운 갈채를 보내게 된다. 귀여운 대장원숭이 ‘치스테리’부터 다채로운 얼굴로 공연의 재미를 살리는 전호준 배우를 만났다.

 

-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 동안 뮤지컬 ‘위키드’와 함께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무대도 많이 남았는데, 마라톤을 달리는 소감이 어떤가요?

 

하다 보니까 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장기공연을 꽤 많이 해왔지만 이번 공연처럼 오랫동안 한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이에요. 한 회씩 쌓이다 보니 어느덧 200회를 넘겼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도 금방 지나갈 것 같아요. 길다고 ‘언제 다 하나’ 이런 생각보다는 하루하루에 충실하려고 해요.

 

- 장기전이면 체력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할 텐데요.

 

일주일에 한 번 마사지도 받고, 체력적 부담이 크니까 고기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5일씩 고기를 먹으니까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웃음)

 

- 뮤지컬 ‘위키드’ 오디션이 정말 까다로웠다고 들었어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로 데뷔해서 ‘캣츠’, ‘시카고’, ‘남한산성’ 등을 거쳐 왔어요. 중간에 연극도 했고요. ‘위키드’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었지만 오디션 당시 사정이 있어서 응시를 못 할 뻔 했어요. 안타깝지만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할 때쯤 기회가 왔어요. 지금 앙상블로 같이 출연하는 심새인, 백두산 배우의 적극적인 권유로 오디션을 보게 됐고, 여기까지 왔네요.

 

- 앞에서는 화려해 보이지만 무대 뒤에서는 아찔한 순간도 많을 것 같아요.

 

매 순간이 아찔해요. 제가 공연 시작과 동시에 관객분들을 만나는데 천장에서 밧줄알 타고 내려오거든요. 2~3층 높이의 타워에서 점프도 해야 해요. 동료 배우들에게 “내 무릎에 에어맥스 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집중하고 긴장해야 돼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 앙상블로서 많은 역할을 연기하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인상적인 역할은 ‘치스테리’예요. ‘치스테리’는 ‘마법사’의 시종이구요. 원숭이 무리에서 대장을 맡고 있는데, 사건이 하나 있어요. ‘엘파바’가 ‘모리블총장’이 전해준 마법책(그리머리)을 읽다가 제가 마법에 걸리거든요. 그러면서 제 등에 날개가 솟아요. 혹시 강아지를 키우신다면, 책을 읽다가 갑자기 강아지에게 날개가 생기는 기분이랄까요? 몸으로 이걸 표현하는 순간 아주 짜릿해요. 또 오즈 세계에서는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는데 제가 충격을 받아서 말을 못하게 되거든요. ‘글린다’에게 ‘엘파바’의 초록물병을 전해주다가 말문이 트이는 장면이 있어요. 이런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고, 앞으로도 기억하고 싶어요.

 

- 배우 전호준에게 ‘위키드’란?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질문이네요.(웃음) ‘위키드’는 ‘여자친구’다. 행복하면서 힘들기도 해요. 무대 위에서 ‘치스테리’로 임할 때, 커튼콜에서 가면을 벗을 때는 정말 행복해요. 하지만 그 행복을 위한 과정은 만만치 않죠. 안무나 동작 같은 것들이 단순한 움직임이라기보다 근력과의 싸움이에요. 사람이 동물흉내를 내니까 무릎이나 허리에 무리가 가기도 하고요.

 

- 6개월째 사귀고 있는데 안 깨지고 끝까지 가면 좋겠네요.

 

맞아요.(웃음) ‘삶’은 ‘달걀’이라는 비유처럼 딱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래요.

 

- 잊고 싶지 않은 넘버, 장면이 있다면요?

 

공연 전체적으로 보자면 ‘디파잉 그래비티’라고 1막 마지막에서 ‘엘파바’가 하늘을 날아가는 부분이에요. 저는 그 장면에 참여하지 않아서 테크니컬 리허설 때 객석에서 봤는데, 너무 멋있어서 숨이 막히더라고요. 2~3분 동안 가만히 있었어요. 실제 공연을 본 친구들도 그렇대요. 생각해 보면 기계의 힘을 빌린 것이지만 드라마와 결합했을 때는 대단한 시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이외에도 ‘위키드’에는 예쁘고 좋은 장면들이 정말 많아요.

 

- 연습이나 공연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전 세계 ‘위키드’ 프로덕션 중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닐까요? 제가 200회를 하면서 전무후무한 실수였을 텐데.(웃음) 아마 170회차 즈음이었을 거예요. 밧줄을 타는데 제 실수로 인해서 발이 미끄러졌어요. 원래는 객석으로 안전하게 돌아와야 하는데, 넘어지면서 밧줄을 본능적으로 잡은 거죠. 그때 관객분 어깨에 제 발이 닿았어요. 공연하는 내내 걱정됐죠. 처음엔 그분 얼굴이 굳어있었는데 공연을 잘 보셨는지 나중엔 기립박수를 쳐주시더라고요.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지금도 너무 죄송해서, 컴퍼니로 연락 주시면 제가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어요.

 

- 한순간도 긴장을 놓치면 안 되겠군요.

 

관객과의 신체접촉은 전혀 예상치 못했죠.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은연중에 ‘이제는 사고도 없겠지’ 하는 마음이 생길 때쯤 그 일이 터졌어요. 이걸 계기로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긴장감이 다시 생겨서 오히려 그분께 감사해요.

 

 

- 대학 시절 경영학과에서 뮤지컬동아리(중앙대 브로드웨이)로, 나중에는 무용학과로 진출했어요. 당시의 과정을 돌아본다면?

 

대학생활 욕심이 좀 많았어요. 공부 쪽은 아니고 동아리 욕심이요.(웃음) 컴퓨터, 춤, 뮤지컬까지 동아리를 세 개나 들었는데, 특이하게 뮤지컬동아리는 오디션을 보는 거예요. 뮤지컬이 뭔지도 모른 채 춤, 노래를 준비해서 갔죠. 그때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최민철 선배님이었어요. 그렇게 동아리에서 작품을 하고 갈라콘서트를 하다가 재미를 느꼈고, 뮤지컬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학과로 전과가 된다는 걸 알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어요. 어릴 때 비보이를 한 경험이 있어 무용을 특기로 내세워야겠다는 생각에 무용학원에 등록했는데, 거기서 보니 남자가 무용 하는 게 정말 멋있는 거예요. 무용 선생님과 동아리 선배들이 무용학과도 괜찮겠다고 해서 그곳으로 옮기게 됐어요. 무용학과 교수님들이 ‘무용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은데, 너는 왜 반대니?’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제 안에 있는 뭔가가 꿈틀댄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나요. 저희 학교 무용학과 역사 50년 만에 최초의 전과자, 전과 1범이 된 거죠.(웃음)

 

- 동아리 활동이 배우를 결심한 큰 계기가 되었네요.

 

그렇죠. 제대하고 복학해서 저희끼리 돈을 걷어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아이 러브 유’ 두 작품이었는데, 완전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어요. 되든 안 되든 해 보자는 생각에 다 같이 힘을 합쳐서 공연을 올렸어요. 그다음에 ‘노트르담 드 파리’로 데뷔를 하게 됐고요. 지금 뮤지컬배우 중에 저희 동아리 선배가 몇 분 있어요. 최민철, 박동하, 정철호 선배님 모두 활발히 활동 중이시죠. 그래서 정말 자랑스러워요. 제가 무용학과를 나왔지만 어딜 가도 동아리 얘기를 빼놓지 않아요.

 

- 애착이 정말 크시네요. 후배들 공연은 종종 보러 가시나요?

 

자주는 못 가요. 지금 공연도 하지만 연기레슨, 노래연습 하느라 여유가 많지 않아요. 간간이 연락이 오면 후배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요.

 

- 꼭 하고 싶은 작품, 역할이 있다면.

 

소극장 작품에서 찾자면 ‘쓰릴미’에 ‘나’라는 역할을 꼽고 싶네요. 소극장 작품을 좋아하는데 잘 보러 다니질 못해요. 처음 ‘쓰릴미’를 봤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연출력이며 음악이며…. 피아노 한 대와 배우 두 명이 같이 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구텐버그’도 비슷한 분위기고요.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역할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와르’예요.

 

‘노트르담 드 파리’는 제가 댄서로 처음 뮤지컬에 발을 들인 작품인데 오디션을 봐서 코러스 녹음에도 참여했었어요. 그때까지는 어깨너머로 노래를 배워서 실력이 좀 모자랐을 거예요. 그런데 미국 지휘자가 ‘호준, 너의 소리는 좋으니까 계속 개발해 봐’라고 용기를 줬어요. 이 작품에서 박은태 형을 만나면서 노래 공부도 더 깊이 하게 됐죠. 지방공연이 많았는데, 갈 때마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상상을 했었어요. 언젠간 할 수 있겠죠?(웃음)

 

-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요?

 

‘배우다운 배우’요. 배우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데, 관객분들이 그걸 좋아해 주신다면 더 좋고요. 예전에 다른 음악감독님께 배울 때 그러셨어요. ‘배우는 도인과 같다’. 앞에선 화려하지만 뒤에선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감독님이 어떤 세미나를 가다가 누굴 마주쳤는데 쳐다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셨대요. 알고 보니 탤런트 최수종 씨라고 하더라고요. 평소에도 배우의 내공이 비친다는 걸 알고 놀라셨대요. 최수종 씨도 30년 가까이 연기를 하셔서 그 자체로 뿜어내는 카리스마가 있잖아요.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금 ‘위키드’가 재밌어요. 제 삶에서는 재미가 가장 중요하고, 저를 움직이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우리 공연팀 사람들에게 저에 대해 물어보면 ‘호준이는 파이팅이 넘친다’고 말씀하세요. 재미가 없으면 이 작업을 할 이유가 없고, 무대 위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죠.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정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가끔 ‘너는 좋아하는 거 하니까 그렇지’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에 반해 힘든 것도 많아요. 하지만 ‘힘들다’는 말을 굳이 꺼내놓고 싶진 않아요. 저 말고도 다들 힘들다고 생각하니까요. 요즘도 계속 공부 중인데, 언젠가는 포스터 앞쪽에 제 이름이 걸릴 그 날이 올 때까지 꾸준히 노력해야죠. 화이팅! 제 에너지가 팀원들과 관객분들에게 전해질 때까지 화이팅! 그리고 위키드 화이팅!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설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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