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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남을 빛내는 성숙함,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 박준희 안무가 인터뷰

 

몇 년 전 대국민적 오디션 바람이 불면서 예술계가 술렁였다. 노래, 연기, 춤까지 채널만 돌리면 모두가 ‘경연’을 하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파이가 커진 장르도 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대중을 만나는 아티스트도 있다. 바로 현대무용가이자 교육자, 뮤지컬 안무자로도 활약 중인 박준희다.

 

춤꾼 박준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1기로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국립현대무용학교(CNDC)를 마쳤다. 서울무용제, 서울국제무용제, 한국무용협회 신인무용콩쿠르 등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이력만 보면 순수예술가의 길을 걸어갈 것 같은 그에게 ‘뮤지컬 안무’라는 행보가 눈에 띈다.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로 최근작을 경신한 박준희와 이야기를 나눴다.

 

- 지금까지의 춤 인생을 돌아보면서.

 

처음에는 리듬체조를 했는데, 잦은 부상과 결석 때문에 어머니가 반대를 해서 그만두게 됐다. 몸을 움직이던 아이가 가만히 있자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중학교 선생님이 한국무용 학원을 소개해 주셨는데, 같은 몸을 움직이는 건데도 리듬체조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때 춤을 가르쳐 주신 분이 변지연 선생님이다. “준희야, 이건 체육이 아니라 춤이라는 거야”라고 하시며 ‘춤’만의 호흡과 감정을 깨우쳐 주셨다.

 

- 박준희에게 ‘춤’은 무엇인가?

 

한 줄로 이야기하면 춤은 ‘표현’이다. 그리고 나의 머리, 가슴,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이 ‘춤’이다. 사실 어릴 때 가정환경이 편하지는 않았는데, 이런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상처에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춤을 만나서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해서든 발산이 된 거다. 창의적이고 건전하고 좋은 쪽으로 뻗어나갔다. 그 시절에는 온전히 ‘나’를 위해서 춤을 췄다.

 

대학에서는 1기생이라 교수님들도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춤에 대한 철학이 있다기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춤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면서 처음으로 춤을 통해 관객에게 뭔가를 전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나를 위해서 춤을 췄고, 관객도 다 관계자들이다. 그런데 거기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춤을 본다. ‘소통’에 신경을 쓰게 됐고, 많이 배웠다.

 

유학 중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와야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자니 그새 문화적 차이가 느껴져 힘들었다.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강의를 시작했다.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교수님들이 잘 잡아 주셨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강의지만, 유학길에서 못 느꼈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잘나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경험한 것들을 나누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거저 배웠으니 나눠주는 것이 당연하다.

 

 

- 현대무용가로서 뮤지컬 안무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뮤지컬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뮤지컬에서는 춤이 주(主)가 아니다. 특히 송스루인 이번 작품은 노래가 메인이라 춤의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같은 작품처럼 춤의 비중이 크지 않다. 내가 계속 순수예술만 고집했다면 이런 작업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출가와 발을 맞추고, 때론 숙여주고, 서로 믿으면서도 안무자로서 주장할 것은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이전에 해 왔던 방식과 달라서 어렵지만 그걸 통해서 춤도 많이 개발된다. 말이 표현하지 못하는 건 춤이, 또 춤이 표현 못하는 건 말이 대신하는 것을 보면서 ‘춤의 활용도가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춤 하나로 가지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티스트로서도 도움이 된다.

 

작품에서 ‘안무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가 빛나지 않더라도 숙여줄 수 있는 성숙함을 보이고 싶다. 가끔은 자존심을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춤이 이따위 대우를 받아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 오래전부터 함께 작업해 온 이종석 연출가 덕분도 있다. 연출의 생각이 분명한 사람과는 어려울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 힘들다. 다행히 매번 훌륭한 분들을 만나서 섬세하게 배우고 있다.

 

- 이번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어려운 작품이었다. 퀵체인지가 많아 배우들이 힘들어했다. 그러면 스태프도 힘든 거다. 안무자 입장에서는 배우들이 춤만 추고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가 이어지게끔 몸의 표현으로 녹여내야 한다.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화된 춤보다는 연출라인에 맞췄다. 다른 뮤지컬은 안무곡만 딱 몇 곡 할당받아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은 모든 곡에 연출라인이 스며있다. 장면마다 ‘여기서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하면서 주고받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안무자만 확실하게 준비해서 딱 주고 빠질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즉흥적으로 발의해야 하고, 연출의 생각을 계속 바라보면서 전달해야 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배운 부분도 많았다.

 

- 어느새 공연 중반에 온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에 대한 소감.

 

이번 작품은 1인 5역씩 트리플 캐스팅이라 정신이 없지만 배우들이 잘 따라와 줬다. 특히 박준규 선생님은 안무를 따로 안 드려도 될 정도였다. 연기에서 이미 몸이 먼저 호흡하고 공간을 채우면서 그 캐릭터로 살아있었다. 동작을 드리면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이 뮤지컬에 안무가 있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전체가 같이 맞추는 부분 말고는 그 어떤 터치도 하지 않았다.

 

아직 연륜이 부족한 젊은 배우들에게는 동작을 입혔다. 송스루라 노래도 많지, 옴니버스라 연출도 많지, 퀵체인지 많아서 옷도 갈아입어야지, 거기다 춤까지 춰야 했으니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한마디씩만 해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겠지만 우리 배우들은 한마디 군말이 없었다. 제작 기간도 부족하고 자본도 넉넉지 않아서 불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지만 묵묵히 함께 가 줬다. 안무자로서 항상 붙어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더 미안했다. 가장 박수받아야 할 사람들은 배우들이다.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 하나 하면 우리 배우들이 다른 데 가서도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열심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꼭 롱런했으면 좋겠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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