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1.26 목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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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나’와 지금의 ‘나’, 반갑지만 새롭다”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 이종석 연출가

 

예술가에게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달라져 있고, 그만큼 ‘남’들도 변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이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처음의 자신을 마주한 사람이 있다. 바로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의 이종석 연출가다.

 

이종석 연출가는 6년 전 이 작품으로 프로의 세계에 입봉했다. 그만큼 애착도 많고, 다시 대본을 들면서 반가움과 새로움이 교차한다는 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뮤지컬 ‘쓰릴미’, ‘풍월주’, ‘아르센 루팡’ 등 트렌디한 작품들 사이에서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런 그가 시곗바늘을 돌려 데뷔작으로 돌아왔다. 일보후퇴(一步後退)가 아닌, 이보전진(二步前進)이다.

 

- 6년 만에 데뷔작으로 돌아온 소감이 어떤지.

 

얼마 안 지났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처음 작업을 참 열심히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번역도 새로 바꾸고 가사도 다시 써야 해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재연을 준비하면서 초연의 바탕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 같다. 젊었을 때 해서 그런지 좋은 아이디어도 많았고, 처음의 ‘나’를 만나는 것 같아 반갑다.

 

-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 초연과 어떻게 달라졌나?

 

연출자로서 여러 작품을 겪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성숙해졌다. 그전에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까’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인물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 장면마다 깃들어있는 사랑의 이야기들을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리려고 노력한다. 작품이 옴니버스 형식이라 전체를 꿰뚫는 메시지, 그리고 각자의 사랑도 오롯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 전작인 뮤지컬 ‘풍월주’도 그렇고, 최근 연출의 지향점이 ‘인물간의 관계’로 모이는 것 같다.

 

상황 속 인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우리는 물리적인 시간을 살지만, 텍스트 안의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을 산다. 두 시간 반 동안 반드시 읽어내야 하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들이 충돌하면서 인물 간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집중하다 보면 관계가 읽힌다.

 

- 이번 작품은 초연 극장보다 무대도 많이 다르고, 캐스트도 훨씬 많아졌다. 재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초연을 올렸던 곳은 풀스윙 극장이었고, 지금은 3면 극장이다. 규모도 커지고 객석이 3면으로 둘러싸인 만큼 관객들이 자칫 집중력을 흩뜨릴 수 있다. 무대 한쪽에는 밴드를 올려 무게중심을 잡고, 배우들의 움직임은 3면을 다 쓰되 포인트를 짚었다. 산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많은 부분을 다듬었다.

 

우리 공연팀은 20대가 없고 30대, 40대, 50대까지 골고루 있다. 아주 젊은 배우들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체력을 소진하지 않게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어제의 저녁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오늘의 연습 분위기가 달라진다. 연습 기간에는 술도 못 마시게 할 만큼 엄격하게 준비했다.

 

이번 작품은 송스루 뮤지컬이라 대사보다 노래와 안무 비중이 월등히 크다. 뮤지컬 전문으로 훈련된 배우가 많지 않다 보니 어려운 점도 많았고, 안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행인 것은 먼저 뮤지컬을 경험한 배우들이 많이 도와주고, 팁을 주고, 그야말로 ‘함께’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모두 잘할 수 있도록 팀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박준규 선배님은 몸에 부항을 뜨고 다니실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그 연세에 이렇게 힘든 작업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하고,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원어 고유의 뉘앙스, 악센트를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비슷한 예로 뮤지컬 ‘빌리엘리어트’는 영국 졸리 지방의 악센트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영어를 아는 사람들은 분명한 지방색을 간파할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다소 어렵다.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 원작도 미국의 이민자들이 구사하는 사투리 같은 영어에서 말의 재미를 느끼는 작품이다. 대본에서는 이러한 뉘앙스, 은어, 언어들이 잘 보이는데 한국어로 번역을 거치고 나면 고유한 멋이 없어진다. 고민 끝에 이민자들의 영어가 아니라 모국어의 특색을 살려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리가 우스개로 중국어나 일본어를 흉내낼 때 말도 안 되는 단어들을 늘어놓는 것처럼, 그 나라의 특이한 억양을 살려내면 작품이 재미있어질 것 같았다. 이탈리아어는 성악의 ‘R’ 발음이 두드러지고, 독일어는 된소리 발음이 많다. 멕시코는 빠르고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린다. 이런 속성에 착안해 텍스트를 다시 번역하면서 외국 영화도 많이 보고, 오페라도 공부했다. 실제로 각 나라의 억양이 뮤지컬의 음악적 특성과도 크게 연결된다.

 

- 많은 작품을 거치며 연출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본다면.

 

많은 분들이 ‘뮤지컬은 상업극’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일면 그런 부분도 있지만 직업연출가로서 창작에는 정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작자와도 많이 대화하고, 각자의 영역에 맞게 작업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작품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가끔 창작자의 고유한 영역을 넘어설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나리자 그림을 보러 가서 눈썹이 없다고 욕하지 않는 것처럼, 고유한 의미를 알아봐 주실 때 작품도 빛을 발한다.

 

서두에 이야기했지만, 창작자로서 관계와 상황 속에서 인간의 목적을 들여다보는 일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시대와 소통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시대를 따라가는 작품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예술가가 하고자 했던 말을 잘 전해주고 싶다. 직업연출가이기 때문에 가끔은 원치 않는 작품을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20대 관객에게는 이런 작품이 잘 먹힌다’는 식의 접근법을 지양하고, 어떤 작품을 맡게 되든 흔들리지 않는 창작자로 남고 싶다.

 

- 올해도 벌써 4달이 지났다. 남은 한 해를 어떻게 보내고 싶나?

 

시야를 넓혀 해외 작업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 공연계가 라이선스 작품을 많이 하지만, 이제 창작뮤지컬도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외국에 판매된 사례도 많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한국 땅에서 연출하라는 법은 없듯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에서 작업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어디에서건 공연을 올릴 수 있게 원작자들도 많이 만나고 있다.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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