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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쎈 연극 ‘에쿠우스’욕망의 전이, 그 매력적인 과정을 찾아서

 

‘쎄다’. 전라(全裸)의 배우는 바닥에서 꿈틀대고, 그의 세계는 미친 듯 공회전한다. 한 사내가 그를 안쓰럽게 지켜보고, 그들을 또 누군가가 지켜보고, 관객은 이 모두를 지켜본다. 시선은 벌써 여러 겹이다. 관음을 관음하는 비정상의 이면에는 가슴께 걸린 오래된 울음을 토해내는 듯한 시원함이 있다. 정열이다.

 

연극 ‘에쿠우스’는 똑똑하지만 현학적인 작품은 아니다. 신, 인간, 섹스라는 무겁고 탁한 재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관객의 입에 넣어준다. 공중으로 터져 나오는 언어들은 매우 분명해서 중의(重義)의 여지가 없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는 것은 이 작품에서 틀린 말이다. 욕망은 전이되며, 우리는 그 매력적인 과정을 탐미하기만 하면 된다.

 

유능한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는 친구인 판사 ‘헤스터’로부터 한 소년을 인도받는다.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로 말 8마리의 눈을 찌른 ‘알런’이다. ‘다이사트’는 잔혹한 행위의 동기를 찾기 위해 ‘알런’과 대화를 시도한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알런’은 진심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다이사트’에게 그간의 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다이사트’는 ‘알런’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그를 이해하고 동경하게 된다.

 

연극 ‘에쿠우스’는 달의 뒤편 같은 인간 무의식의 저변을 탐닉하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옷은 ‘알런’이 벗지만, 벗겨지는 사람은 ‘다이사트’다. 그는 아내와의 정신적·육체적 교류를 차단당한 채 무기력한 삶을 살다가 연구실에 돌아오면 신(神)이 된다. 무언가에 미친 환자들을 고쳐 정상의 범주에 구겨 넣으면서 그는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개성과 열정을 거세했다’고. 밤마다 어린 아이들에게 칼을 꽂아 내장을 후비적거리는 환영에 시달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런 그가 ‘알런’을 만나면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기 시작한다. 알고 있었지만 아프다. ‘알런’처럼 단 하나에 완벽하게 미친놈은 처음이다. 이제껏 보지 못한 정열이다. ‘알런’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착한 아이였다. 세뇌와도 같은 모친의 종교 교육에도 ‘아멘’을 읊조리는 그런 아이.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말(馬)의 눈빛에서 구원을 얻는다. 아무도 모르게 말을 내달리는 행위는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예배이자 섹스다. ‘알런’이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털어놓는 순간, 그의 욕망과 정열은 ‘다이사트’에게 전이된다. 연극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관음의 미학이 돋보이는 무대는 다분히 직설적이다. ‘다이사트’의 연구실은 네모난 링의 형태로 중앙에 돌출돼 있고, ‘다이사트’와 ‘알런’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은 연구실 밖에서 관객처럼 앉아 있다가 드나든다. 이들이 연구실 밖에 있을 때는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알런’과 ‘다이사트’를 지켜보기만 한다. 극중 또 다른 숨은 시선은 작품의 관능적 매력을 증폭시키는 훌륭한 장치가 된다.

 

아쉬운 점은 무대가 거의 비어 있어 소리가 많이 울리는 것이다. 1막 여러 장면에서 대사 전달에 어려움이 있었다. 공명이 큰 무대는 어떤 배우에게 유리하지만 다른 배우에게 불리하기도 하다. 뒷면에 설치된 마이크에서도 미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음향 문제만 보완한다면 더 높은 완성도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1막에서는 전체적으로 힘을 아낀다. 가랑비에 옷 젖듯, 정열의 전이 과정은 ‘알게 모르게’ 그려지다가 2막에서 속도를 붙인다. 말들은 인간의 성적 매력을 입고 짙은 황홀경을 선사한다.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누군가의 자아, 판타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배우들은 자신의 기량을 드러내기보다 드라마에 철저히 녹아들었다.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는 깊고, 또 깊다. 작품을 국내 초연한 단체인 만큼 오리지널리티를 놓치지 않는다. 경천동지할만한 색다른 해석은 없지만 ‘에쿠우스’가 가진 날것의 에너지가 그대로 살아있다. ‘알런’이 말의 눈을 찌른 이유가 드러나고 ‘다이사트’가 전이된 욕망을 발견하는 결말은 충격보다 희망을 안긴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코르코르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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