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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Flashback. 41] 탐미의 정점,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명백한 흑백 대비의 폭발력

흑과 백은 가장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색채다. 가장 매혹적인 색이자 동시에 가장 순수한 두 가지의 색의 충돌은, 그래서 더욱 파괴적이고 아름답다.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것은 두 가지 색의 명백한 대비가 만들어내는 관능 덕택일지도 모른다.

발레 ‘백조의 호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작이라고도 불린다. 누구나 아는 줄거리지만, 그에 더해지는 음악과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서정적인 안무는 1시간 45분을 마법처럼 물들인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는 섬세하고 쫀쫀하다. 1막 왕자의 생일날 펼쳐지는 무도회와 백조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3D영상을 보는 듯 입체적으로 구성돼 있다. 동선은 서로 얽히면서 풀어지고, 엉기면서 새롭게 구축된다. 대각선, 방사선, 디귿자 등 자유로운 대열 변화는 3차원 그래픽이 구현되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여성 무용수의 몸놀림은 백조 그 자체다. 안무는 상체를 숙이고 두 팔을 늘어뜨리거나, 두 손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손등을 맞닿게 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부산한 두 팔의 날갯짓은 처연하고, 일사불란한 발동작은 우아한 흰색 깃털이 실재하는 듯하다. 이러한 동작은 ‘백조’의 움직임을 실감 나게 그려낼 뿐 아니라, 세밀한 동작의 예술성을 부각시킨다. 전체 그림을 관조하듯 바라보면 탐미(眈美)의 정점에 서서히 도달하게 된다.

2막의 백미는 흑조 ‘오딜’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빠른 템포에 맞춰 춤추는 ‘오딜’은 감각적이고 고혹적이다. 청순한 매력의 ‘오데트’를 연기한 무용수가 180도로 변신한 모습도 볼거리지만, 발레리나의 기술 중 최고로 꼽히는 ‘32회전의 푸에테’는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백조와 흑조의 앙상블은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흑조들은 백조의 대열 사이에 숨어들며, ‘지그프리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엉겨있는 흑과 백의 균열은 ‘대립되는 색채’의 상징성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한다.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에서만 볼 수 있는 ‘로트바르트-지그프리트 왕자-오딜’의 3인무도 놓쳐선 안 될 포인트다. 웅장한 음악에 휩싸인 세 사람의 안무는 극적이면서도 악마적 생동감이 넘친다. ‘오데트’와의 사랑을 지키려 하는 ‘지그프리트’와 그를 유혹하려는 ‘오딜’의 밀당은 관객의 관능적 호기심을 돋운다.

‘오데트/오딜’ 역의 이은원은 두 역할을 180도 다른 매력으로 연기했다. ‘오데트’로는 가련함을, ‘오딜’로는 마력을 터트렸다. 활력 넘치는 그녀의 ‘오딜’은 전천후 표정과 깔끔한 기술로 ‘매력적인 여인’ 이상의 악마적인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반면 ‘오데트’ 역에서는 절제미와 농익은 감정 연기가 아쉬웠다.

‘지그프리트’ 역의 이재우는 이날 솔리스트에서 수석무용수로 파격적인 승급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195cm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테크닉을 구사한 것은 물론, 감정 연기도 짜지 않았다. 특히, 턴을 도는 장면에서는 큰 키에 실린 어마어마한 힘으로 관객석을 압도했다. 경험만 더해진다면 더욱 풍부한 잠재력을 터트릴 수 있는 새로운 발레 스타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정지혜 기자_사진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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