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소비층이 확대되면서 공연예술의 장르도 더욱 다채로워졌다.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작품을 고를 기회는 많아졌지만, 현재 대학로에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일부 작품이 관객층을 선점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고도의 기술이 기초과학에서 나오듯, 순수예술의 바탕이 튼튼해야 좋은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다.

연극 ‘동백아저씨+소설처럼’은 연극 ‘소설처럼’과 ‘동백아저씨’가 차례로 무대에 오르는 연작 공연이다. 이번 공연은 극단 골목길과 선돌극장이 ‘2014 선돌에 서다 1탄’으로 기획했다. 2월 1일 선돌극장에서 개막해 23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고독과 슬픔의 잔해, 연극 ‘동백아저씨’

부모 친척 없이 여관 월세방에 홀로 사는 ‘이동백’. 그의 이름은 고아원 원장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듣고 지어준 것이다. ‘이동백’은 읍내 문방구 한쪽에서 도장을 새기며 생계를 이어 왔지만 시원찮은 벌이에 손을 털었다. ‘여관 주인’은 아들인 ‘창식’만 바라보고 사는 억척스러운 어머니지만, 성매매를 원하는 투숙객들에게 아가씨들을 들여보내주는 포주이기도 하다.

‘창식’은 다중인격자다. 평소에는 홀어머니의 넋두리를 다 들어주는 착한 아들이지만 가끔 무서운 강도로 돌변해 어머니를 폭행하고 돈을 빼앗아 간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이동백’의 여관방에 드나드는 아가씨다. 이들 모두는 서로의 진짜 얼굴을 숨긴 채 누군가 여관에 질러버린 불길에 휩싸인다.

연극 ‘동백아저씨’는 국내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인 박근형이 새로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밑바닥에 내몰린 인간 군상의 ‘진짜 밑바닥’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동백’은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고아원 원장에게 폭력에 가까운 성추행을 당했다. ‘여관 주인’은 부잣집 딸이었지만 ‘창식’의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쫓겨났다. 하지만 작품은 인물들이 철저히 망가지게 된 과거의 경위보다는, 오염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그들의 현재를 대변한다.

책장 넘기듯 ‘읽는’ 연극 ‘소설처럼’

‘정윤’은 남편 ‘대일’의 친구이자 밀회 관계였던 연인 ‘성훈’과 헤어진 후 오랜만에 재회한다. 그녀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고 이혼을 고려 중이다. ‘성훈’은 ‘대일’이 자신과 ‘정윤’의 밀회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4년 전 ‘대일’ 부부가 결혼기념으로 떠난 베니스에서 밝혀진 뒤다.

모든 사실을 안 ‘대일’은 여행에서 돌아와 ‘성훈’을 만나지만 피상적인 이야기만 주고받는다. 두 사람은 술자리에서 우연히 소설가 ‘김작가’를 만나고, 그가 술에 취해 내뱉는 소설 줄거리가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린다.

연극 ‘소설처럼’은 영국 극작가 해롤드 핀터의 희곡 ‘배신’을 극단 골목길의 이은준 연출가가 개작, 연출했다. 시공간이 순서에 맞지 않게 뒤섞여 있어 넘어간 소설책의 앞장을 다시 들춰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품은 헤어진 ‘정윤’과 ‘성훈’의 재회 장면으로 시작해 4년 전 베니스, ‘대일’과 ‘성훈’의 술자리, ‘정윤’과 ‘성훈’의 결별 장면으로 이어진다.

배우들이 보여주는 인물 내면의 변화는 다소 정적(靜的)으로 그려진다. ‘대일’은 아내와 친구의 배신을 알고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정윤’과 ‘성훈’이 헤어진 이유는 ‘대일’ 이 아니라 서로의 변심 때문이다. 작품은 인물들이 유기적이라고 믿었던 관계가 얼마나 파편화된 것이었는지를 담담하고 건조하게 조명한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극단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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