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1890~1976)는 ‘오리엔탈 특급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과 함께 1952년 11월 영국 앰버서더 극장에서 시작해 지금은 세인트 마틴 극장에서 60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최장기 공연을 기록하고 있다. 기네스북에 연일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을 정도로, 그녀의 수많은 작품은 추리소설 독자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전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추리소설계의 여왕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수많은 작품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그녀가 어느 날 돌연 실종되었다. 열하루가 지나 자택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의 한 호텔에서 발견되었으나 작가는 그간의 행적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추리소설 같은 실제 그녀의 미스터리한 12일간의 알 수 없는 실종이다.

그녀의 실종은 단순 사고로 인한 기억 상실인 것인지, 누군가의 목적에 의한, 의도된 납치와 조작된 기억의 억제로 인한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작가 본인의 자존감에 대한 일탈로 무의식적으로 내려놓음인지 알 수 없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은 그녀를 둘러싼 의문과 또 다른 의문으로 남은 작가의 실종 미스터리는 2013년 12월 마지막 날에 한국의 창작자들에 의해 새롭게 뮤지컬의 옷을 입고 태어났다.

작가 본인도 기억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차마 작가로서의 지켜야 할 자존감의 마지막 끝날인 것인지, 그녀가 함구했던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테마를 시작으로 한지안 작가, 허수현 작곡, 김태형 연출에 의해 새로운 미스터리 추리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열혈 팬으로 추리소설 작가를 꿈꾸던 작가 지망생에서 어느덧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작가로서 마지막 밑바닥에 휘몰린 ‘에드몬드’와 당대 최고의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와의 통화와 만남으로 전개된다.

뮤지컬 ‘아가사’는 “추리소설을 쓰는 것은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다분히 상징적 추리로의 극대화된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 중에서 ‘테세우스’는 미궁 속의 괴물을 죽이는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전개될 미묘한 이야기를 유추하고 가늠하게 한다. 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과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말로 인해 뇌와 가슴에 공황과도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처럼, 작품은 미궁 속의 붉은 실처럼 얽히고설킨 또 다른 미궁의 붉은 실타래를 쉼 없이 뱉어내었다.

남편 ‘아치볼드’와 기자 ‘폴’, 편집장 ‘뉴먼’과 하녀 ‘베스’. 그리고 아가사의 분신과 같은 미지의 인물 ‘로이’와 내연녀 ‘낸시’. ‘레이몬드’는 열쇠 구멍을 통해 그들의 내면과 의식을 훔쳐보고, 그들의 맨얼굴과 태도 뒤에 숨은 인간의 저속한 본성과 함께 ‘아가사 크리스티’ 내면의 말하지 못했던 본성을 찾아간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결국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불안으로 오는 온갖 스트레스와 강박관념, 심적 불안으로 오는 우울감 등 자신에게 번져있는 수많은 두려움과 살의를 고해성사하듯 인정한다. 그러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억압했던 굴레를 내려놓고 그래도 현실적 작가로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저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통해 아가사 크리스티는 결국 자신과 싸우고 사랑했던 모든 캐릭터들이 창작자로서의 고통의 산물이며 그들을 통해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각기 다른 인간 본질의 문제까지 유추하고 생각하게 한 것이다.

뮤지컬은 창작 초연이라서라기보다 다분히 연극적인 추리극과 심리적인 메타포를 활용한 뮤지컬적 어법에서의 변별성이 좀 더 독창적인 접근으로 발현되기를 기대해서인지, 작품 속 캐릭터의 심리적 불안이 표출된 전개가 다소 매끄럽지 않다. 거기에 과하게 펼쳐지고 불분명한 동선과 애매한 상황의 무대적 설정에 오히려 추리극의 긴장감과 예상치 못한 반전의 쾌감이 묻어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무대 미장센에서의 세트와 조명, 영상 등의 비주얼적인 유기적인 흐름과 메타포로서의 표출이 분명하지 않고 오히려 흩어져 있었다. 음악과 조명의 심미적인 조합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도리어 미스터리한 추리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각 캐릭터들의 본성은 오히려 무뎌진 칼날처럼 느슨한 흐름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오르골의 흐름과 심미적 추리의 이미지는 첫 단추를 잘 꿰맨 듯 했으나 결국 일반적인 뮤지컬에 익숙해진 음악적 구성과 보편적인 편곡의 뮤지컬 형식으로 변했다. 기대했던 미스터리한 심리적 추리극의 아주 독특한 범주를 강력하게 심어주진 못했다. 부분적으로는 음악이 드라마를 리드하며 이야기의 골격을 잡아주고 있었으나 마지막 보컬과 화성이 화려하게 받쳐주질 못했다. 하지만 뮤지컬 ‘아가사’는 앞으로 부분적인 클리닉을 통해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작 ‘쥐덫’처럼 오랫동안 롱런 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매 작품마다 늘 새롭게 이미지를 구축하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배우 배해선은 이번에도 단 한 순간도 몸을 사리지 않으며 고도의 집중과 열정을 불태우고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배우로서 ‘아가사 크리스티’ 캐릭터에 혼신의 힘을 다하며 진정성 있는 연기를 통해 이미 추앙받는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되어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몰입된 뮤지컬적 호흡과 연기는 배우로서 최고의 경지에 들어선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을 자유자재로 변환하며 매순간 극도의 몰입과 적합한 에너지의 분출로 작품의 가장 커다란 기둥이 되어 있었으며 그 아우라로 극장과 작품의 든든한 중심축을 잡아 주었다.

작품은 2013년 12월 31일부터 2014년 2월 23일까지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유희성 he2sung@hanmail.net

사진_아시아브릿지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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