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목련은 봄의 첫물에 피었다가 어느 새 가뭇한 서글픔으로 져버린다. 희고 풍만한 꽃잎은 탐스럽지만, 이내 사라져버리는 모양은 전설처럼 애틋하다. 얼마나 큰 슬픔을 감추려고 이렇게 아름답게 피는 것일까.

뮤지컬 ‘사랑꽃’은 목련에 얽힌 전설을 토대로 한 대구발 옴니버스 뮤지컬이다. ‘제7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대상을 차지한 작품으로, 지역 극단 최초의 수상작이자 창작 지원작 최초의 대상 수상작이다. 수도권과 해외권 작품을 제치고 거머쥔 대상이기에 그 가치는 더욱 크다.

‘사랑’과 ‘목련’을 관통하는 세 가지 이야기

뮤지컬 ‘사랑꽃’은 제법 맵짠 사랑이야기를 봄날 따뜻한 햇살처럼 녹여낸다. 세 가지 이야기를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꿰어내는 구성도 탄실하고, 쉽고 온유한 줄거리는 피로하지 않다.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즐길 수 있는 폭넓은 콘텐츠라는 점에서 뮤지컬 ‘사랑꽃’은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치는 레이싱카 같다.

작품은 ‘목련꽃의 전설’을 기반으로 한국적 색을 은연하게 섞어놓는다. 첫 번째 이야기 ‘목련’은 광복 후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 ‘목련’의 사연을, 두 번째 ‘몽고반점’은 베트남 노동자 ‘영웅’과 당찬 한국 여성 ‘윤화’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마지막 이야기 ‘골목길 18번지’는 철거촌을 떠나지 못하는 할아버지 ‘황필만’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지고지순한 마음, 새로운 만남의 설렘, 곁을 지키는 뚝심을 담은 이들의 사랑은 모두 ‘기다리는 사랑’으로 축약된다.

뮤지컬 ‘사랑꽃’은 전설에서 토대를 옮겨왔듯 구조가 무척 친숙하고 단단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흩어져 나온 클리셰의 조합은 대중에게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은 성실하고 면밀하게 관습적인 장면들을 쌓아올린다. 견고한 탑처럼 존재하는 클리셰들은 ‘기다리는 사랑’의 지점들이 만들어 내는 정점을 묵직한 힘으로 추동한다.

한국적 선율과 애니메이션의 낭만적 조합

뮤지컬 ‘사랑꽃’의 무대는 단순하다. 무대 앞 쪽에는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한 그루와, 뒤편에는 영상이 등장하는 스크린과 바위, 목련꽃이 그려진 은은한 색상과 질감의 세트가 세워져 있다.

‘목련꽃의 전설’이 영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했다. 묵화로 그려진 영상 속 그림체는 한국적 정서를 맛깔스럽게 추려냈다. 더해진 동양적 선율의 음악은 애틋함을 배가했다. 무대 세트는 음악과 영상과 어우러져 팝업북(Pop-up book)을 펼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대구 지역에서 만들어진 작품답게 지역 색을 찾는 것도 뮤지컬 ‘사랑꽃’의 큰 재미다. 토속적인 맛을 더하는 사투리는 된장찌개보다 구수하다. ‘희야’(형님을 뜻하는 대구 사투리) 등의 특색 있는 단어나 대구 지역만의 독특한 억양을 듣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맥씨어터의 윤정인 대표는 이 작품의 극작과 작곡을 동시에 맡았다. 음악은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도 목련꽃이 피어있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을 묘사해낸다. 서정적인 선율은 활짝 만개한 봄을 만지듯 유연하게 관객의 귀를 파고든다. 음악의 힘은 소극장임에도 라이브 연주를 택한 제작진의 용기로 더욱 거세진다. 무대의 양옆에 위치한 라이브 밴드는 극과 관객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안정적이고 리듬감 있는 소리를 전달했다.

지역 극단 배우? 편견을 버려라

뮤지컬은 배우들의 역량이 중요한 장르다. 뮤지컬배우는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 내야하는 것은 물론 충분한 에너지를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배분할 줄 알아야 한다. 고저장단(高低長短)이 적절하지 못하면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 올리지 못한 채 흐지부지 돼 버리기도 한다. 배우의 관록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관객은 배우의 에너지를 통해 작품을 느끼고, 관통하며, 설득 당한다. 배우들의 에너지가 부족하거나, 흔들리면 극 전체와 관객도 함께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뮤지컬 ‘사랑꽃’을 살아 숨 쉬게 한 것은 배우들의 찰진 호흡과 연기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는 에너지로 충만했다. 극장은 소진되지 않는 에너지와 생동감으로 가득했고, 이제 막 솟는 생명들처럼 싱그러웠다.

노인이 된 ‘한목련’을 연기한 장은주는 빈틈을 주지 않는 섬세한 연기로 극을 관통했다. 안정적이고 맑은 노래 소리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넉넉했다. 어린 ‘목련’을 연기한 정유진과 ‘영웅’ 역의 박명선은 갓 잡은 활어 같은 활력감으로 극에 재미와 긴장을 줬다. ‘황필만’을 연기한 김유성은 우직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그 외에도 극의 전반에서 활약한 ‘계동식’ 역의 오택완, ‘최희봉’ 역의 손호석, ‘휴이 아빠’ 역의 홍석우, ‘휴이’ 역의 전아희 등은 자신의 존재감을 세우면서도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여유를 드러냈다.

정지혜 기자_사진 박민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