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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장 잔인한 자충수, 연극 ‘나쁜 자석’불완전한 그들이 발붙일 곳은 결국 절벽뿐

동화가 꼭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원하는 결말을 내기 위해 지나친 미화나 무리한 설정을 일삼는다면 ‘동화’가 ‘막장’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나쁜 자석’은 그런 의미에서 참 ‘착한 연극’이다.

연극 ‘나쁜 자석’은 사라진 인물의 뒤를 쫓는 추리극이 아니다. 금지된 사랑에 이해를 갈구하는 퀴어물은 더더욱 아니다. 진심이 담긴 동화가 긴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것처럼, 연극 ‘나쁜 자석’은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뒤꼭지를 잡아당겨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널 사랑하려면 내가 망가져야 한다 

9살 때 친구가 된 네 명의 남자가 있다. ‘프레이저’, ‘고든’, ‘폴’, ‘앨런’이 그들이다. 이들은 타임캡슐에 자신들의 소중한 물건을 묻고 어른이 되면 꺼내보기로 한다. 19살이 된 네 친구는 록밴드를 결성해 피 끓는 청춘을 보낸다. 처음부터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던 ‘고든’은 나머지 친구들과 갈등을 겪고, ‘앨런’은 그런 ‘고든’에게 밴드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한다. ‘고든’은 아지트나 다름없던 폐교에 불을 지르고 사라진다. 이 사건은 남겨진 친구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기고, 이들 역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세월이 흘러 29살이 된 세 친구는 추억과 아픔이 공존하는 폐교에서 다시 만난다.

‘9’는 십진법에서 가장 높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느낌을 주는 숫자다. 동양에서는 끝자리에 ‘9’가 들어가는 나이를 ‘아홉수’라 칭하며 결혼이나 이사와 같은 인생의 대소사를 꺼리기도 한다. 연극 ‘나쁜 자석’ 속 네 남자 역시 9살, 19살, 29살이라는 절벽에서 인생의 향방을 알지 못한 채 끝없이 부유한다.

‘고든’은 ‘프레이저’를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 ‘나쁜 자석’ 이야기를 만든다. 자석은 다른 물건을 끌어당기지만 같은 자석을 만나면 서로 밀어내는 성질을 갖고 있다. 자신의 본질을 온전히 잃어야 사랑하는 이와 만날 수 있다. ‘고든’은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제 기능을 상실한 망가진 자석, 즉 ‘나쁜 자석’이 되기로 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연극 ‘나쁜 자석’은 군더더기 없이 오직 ‘관계’로만 점철된 작품이다. 작품은 ‘관계’라는 단어 앞에 어떠한 수식어도 붙이지 않고 사전적 정의를 표현하는 데 충실하다. 그 의미는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이 있음’이다. 죽어버린 ‘고든’ 자신은 본성을 잃은 사물이었고, ‘폴’과 ‘앨런’에게는 이따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으며, ‘프레이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현상이었다.

무대는 거의 비어 있고, 내러티브는 설명이나 서사의 형태를 띠지 않는다. 연극 ‘나쁜 자석’은 암실에서 고요히 빛나는 광선의 집합처럼 인물 사이에 흐르는 복잡한 기류를 무대 위에 단단히 결박한다. 네 친구는 9살, 19살, 29살에 간직한 ‘기억의 습작’을 불연속적으로 흩뜨려 놓는다. 이것을 제자리로 돌리려는 순간 관객은 깊은 혼란에 빠진다. 연극 ‘나쁜 자석’은 애초에 맞출 수 있는 퍼즐이 아니다. 흩어진 조각을 끼워 맞추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작품의 속뜻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날것 그대로의 ‘불안함’ 표현한 무대와 배우들

연극 ‘나쁜 자석’의 배우들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 균형 잡힌 연기력을 선보였다. ‘프레이저’ 역의 정문성은 ‘고든’에게 끌리면서도 친구들 앞에서 그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중성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그는 무리의 리더로 군림하지만 사실은 부모의 학대로 한껏 구겨진 ‘프레이저’의 불안한 자아를 흔들리는 눈빛과 호흡으로 드러냈다.

‘고든’으로 분한 김재범은 감정의 완급 조절에 능숙한 장기(長技)를 펼쳤다. 친구들 사이에서 외딴 섬 같은 ‘고든’의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단단한 목소리 톤은 대사를 끝내고 퇴장한 뒤에도 무대를 채우며 여운을 남겼다.

‘앨런’ 역의 박정표는 네 친구 중 가장 밝지만 어느 한 곳 자신의 마음을 누일 데 없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순수한 만큼 마음의 여백이 많은 ‘앨런’을 안정감 있게 연기했다. ‘폴’ 역의 김종구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캐릭터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선보였다. 하지만 인물 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비열함을 조금 더 밀도 있게 표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깎아지른 절벽을 형상화한 무대는 그 자체로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하늘과 바다로 이어진 배경은 작품의 호흡이 바뀔 때마다 색을 바꾸며 제대로 빛을 발했다. 무엇보다 색모래를 붙인듯한 질감이 살아있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무대에 섬세함을 더했다. 절벽은 평평하지 않고 객석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어 관객이 배우의 동선을 놓치지 않도록 제작됐다. 입체감과 공간감을 동시에 살려 깔끔하면서도 매력적인 무대였다.

 

노오란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악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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