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갔다. 바닥에 흩어진 꽃처럼 허망하다가도, 뇌리에 새겨지는 달큰한 향내처럼 짙은 내음을 남기고 떠났다. 이제 연인은 손에 닿을 수 없는 세상에 있다. 남은 자는 말없이 참회의 아침을 맞을 뿐이다. 흩어지는 꽃다발 속에서 몸으로 울어내는 알브레히트가 막 너머로 사라지면, 그제야 죽어서도 연인을 지키려 했던 ‘지젤’의 숭고한 사랑이 관객을 덮친다.

국립발레단 ‘지젤’은 2013년 국립극장 교차공연 프로그램으로 국립무용단 ‘춤, 춘향’과 함께 공연됐다. 5개월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지젤’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한 감동, 여전한 울림으로 관객을 물들였다.

발레 ‘지젤’은 1841년 초연한 후 ‘낭만 발레’의 대표작으로 손꼽혀왔다. ‘지젤’은 수많은 버전이 있다. 국립발레단 버전은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부예술감독인 파트리스 바르가 안무한 버전이다. 

‘지젤’은 작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소녀 지젤은 마을을 찾아온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다. 알브레히트는 자신이 귀족임을 숨긴 채 그녀와 사랑을 속삭인다. 하지만 지젤을 사랑하는 청년 힐라리온이 질투에 눈이 멀어 알브레히트의 정체를 밝히고 만다. 끝까지 인정하길 거부하던 지젤은 알브레히트와 마을로 찾아온 약혼녀 사이를 알게 된다. 충격에 빠진 그녀는 괴로워하다 지병인 심장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알브레히트는 지젤이 묻힌 무덤가를 배회하다 ‘윌리’(처녀 귀신)를 만난다. ‘윌리’는 숲을 지나가는 남자를 죽을 때까지 춤추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죽음에 직면한 그의 앞에 지젤이 나타나고 동이 틀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며 지켜낸다.

안무가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는 찬찬하다. 그는 ‘이야기’가 갖는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러시아 버전의 ‘지젤’이 춤에 비중을 둬 이야기의 비약이 느껴졌다면, 파트리스 바르 버전은 춤과 이야기, 음악을 한 몸처럼 묶어둔다. 하나하나의 동작에 담긴 의미는 ‘춤’을 ‘춤’만이 아닌 하나의 ‘드라마’로서 읽히게 한다. 때문에 국립발레단 ‘지젤’은 이야기의 흐름이 훨씬 더 자유롭고 유려하다.

국립발레단의 ‘지젤’은 1막의 발랄함과 2막의 비극이 절묘하게 교차된다. ‘지젤’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아돌프 아당의 음악은 귓가를 간질이는 봄바람처럼 설렌다. 파트리스 바르는 무용수가 리듬을 타고 노니는 듯한 한들한들한 춤으로 지젤의 사랑스러움을 그대로 녹여낸다. ‘루이스 스피나텔리’의 무대와 의상은 그림 같은 무용수들과 어우러져 화가 ‘에드워드 밀러’의 그림처럼 눈이 부시게 빛난다.

1막 마지막을 장식하는 지젤의 ‘크레이지 신’은 비극을 정점으로 몰고 들어간다.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지나친 사랑의 기쁨은 지나친 슬픔의 길목으로 들어서는 안내서가 된다. 작은 체구로 작은 새처럼 무대를 날아다니던 김지영은 비극을 몸으로 토해내며 지젤의 죽음을 점묘(點描)하듯 묘사해냈다.

2막의 하이라이트는 장중한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발레블랑’이다. 흰 튀튀를 입고 나타난 무용수들은 탄성을 절로 불러냈다. 푸르스름한 조명을 입은 흰색 의상은 ‘다른 세상’의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여성무용수의 ‘파 드 부레’(발끝으로 물 위를 떠다니는 듯 걷는 동작)는 관객의 환호를 부르기에 충분했다. 환상적 이미지를 구축한 무대에 얹어진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파드되는 ‘애수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애절한 춤사위로 탄생한 파동은 무대로부터 번져와 관객의 가슴을 퉁겼다.

김지영은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다운 면모를 아낌없이 풀어헤쳤다. 한층 더 깊어진 연기는 전율이었다. 작은 체구와 섬세한 동작은 지젤의 사랑스러움을 더했고, 2막은 초연한 표정과 눈물겨운 몸짓으로 서정시(時)를 읊어냈다. 알브레히트 역의 김기완은 무대에서 날개를 펼쳤다. 특히, 2막에서는 작정한 듯 무대를 누비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그는 주역 무용수로서의 가능성이 아닌 주역무용수로서의 스타성도 함께 ‘지젤’ 무대에서 증명해 보였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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