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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춤출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지젤’로 무대 오르는 국립발레단 이은원 무용수 인터뷰

무대 위의 무용수 이은원을 표현하라면 ‘영롱’이란 단어를 꺼내고 싶다. 환한 미소와 빛나는 두 눈, 찬연하게 반짝이는 존재감까지. 무대 아래의 그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대 위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지젤’과 ‘알브레히트’ 첫 만남 장면은 음악만 들어도 설레요”라며 수줍어하는 그녀는 이제 막 피어난 새벽이슬처럼 청초했다.

인터뷰 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가 맡았던 배역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힐 땐 ‘라 바야데르’의 도도한 ‘감자티’가, 장난스럽게 웃음을 터뜨릴 땐 ‘돈키호테’의 사랑스러운 ‘키트리’가 스쳤다. 하지만 지금 이은원이 가장 닮아 있는 것은 눈앞에 공연을 둔 ‘지젤’이었다. 수줍은 얼굴로 미소 짓는 그녀에게는 ‘지젤’의 선량함과 사랑스러움이 선연히 묻어났다. 10월 16일 늦은 오후, 국립무용단과 함께 국내 최초로 교차 공연을 시도하는 국립극장의 무대에 ‘지젤’로 오르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은원을 만났다.

“수석무용수 승급,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국립발레단은 국립무용단과 함께 10월 17일부터 10월 23일까지 ‘지젤’, ‘춤, 춘향’을 교차해 공연한다. 이은원은 ‘발레 롤랑프티’에 출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지젤’로 무대 위에 서게 됐다. 힘들지 않냐 묻자 “많이 했던 작품이라 괜찮아요. 매번 할 때마다 새롭지만, 체력적인 부분에서 부족하진 않아요”라며 밝게 웃었다.

그녀는 지난해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스물둘, 그녀조차도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 몰랐다”고 할 만큼 빠른 성장이었다. 뒤늦은 축하인사를 건네자 “감사합니다”라며 웃어 보인 그녀는 “단장님과 모든 선생님들께서 좋은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이 자리에 제가 서게 돼서 정말로 감사드려요. 하지만 그만큼의 부담감도 있어요”라며 말을 이었다.

“한동안은 정말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모든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동작이나 테크닉에 많이 중점을 뒀었어요. 실수하지 않으려고요. 지금은 조금 더 예술가로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망친 춤이 있고, 실수한 춤이 있다’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실수는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고 맡은 역에 몰입하고 표현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제가 집중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이은원에게 ‘지젤’이란? “특별한 작품”

‘지젤’은 이은원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의 정단원이 된 후 처음 주역을 맡은 작품이었고, 이 작품을 통해 무용수 이은원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2011년 초연한 ‘지젤’은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작으로 국내에서 유례없는 전회전석 매진의 사례를 낳은 작품이다. 발레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은원에게 ‘지젤’이 특별한 작품일 것 같다고 운을 떼자 “초연 ‘지젤’은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는 농도 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은원은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선생님이 오셔서 직접 코치를 다 해주셨어요. 제가 또 언제 그런 선생님들에게 코치를 받아보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학생이어서 ‘전막’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 동작 하나하나 의미를 담아야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지젤’을 통해 굉장히 많이 배웠고, 즐겁게 연습했었어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지젤’은 이은원에게 익숙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가 TV에 방영되는 ‘지젤’을 녹화해 보여준 일이 있는데 그 역시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 버전이었다는 것이다. “그게 처음 본 ‘지젤’이었어요. 나중에야 다른 버전의 ‘지젤’을 봤죠. 돌이켜 보니 정말 인연이 깊은 작품이네요.” 

이은원은 ‘지젤’의 무대에 여러 번 올랐다. 매번 같은 안무를 추지만 느낌은 출 때마다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대마다 ‘지젤’로서 느끼는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점이다. 몰입을 위해 따로 하는 것이 있느냐 묻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지젤’은 심장병이 있는 아이니까 동작을 할 때도 움츠러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2막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면 귀신처럼 빨리 걸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요”고 말했다.

‘지젤’은 수많은 안무 버전이 있다. 키로프, 볼쇼이, 마린스키 등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자신 만의 안무를 쏟아냈다. 여러 버전이 국내에서 공연됐지만,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파트리스 바르’ 안무 버전의 ‘지젤’이다. 국립발레단이 보유하고 있고, 이은원이 혼신을 힘을 다해 추고 있는 그 버전이다. 이은원은 ‘파트리스 바르’ 버전의 매력에 대해 “드라마 연결 구도가 굉장히 잘 흘러가는 거 같아요”라며 “다른 ‘지젤’은 이야기 속에서 춤이 딱딱 나오는데, 파트리스 선생님 안무는 동작 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지젤’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이은원에게 어려운 작품이다. 미쳐가는 ‘지젤’의 감정 연기부터 능숙하게 해내야 하는 섬세한 동작까지 신경 쓰이는 것이 여간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2막에서 ‘지젤’이 걸어가는 동작이 가장 어려워요. 귀신같이 스윽 걸어가야 하는데, 툭툭하고 걸으면 안 되거든요. 드라마적으로도 감정 표현을 더 해야 하고요. 아는 선생님께서 ‘백조의 호수’나 ‘지젤’은 공연을 하면 할수록 눈사람처럼 착착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다 만들고 나면 할머니 된다고.(웃음) 연륜이 쌓일수록 더 느는 작품 아닐까 싶어요.”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배신하지 않았다”

‘지젤’을 연기하는 이은원의 진가가 발휘된 지점은 ‘알브레히트’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다. 발레 ‘지젤’은 시골 처녀 ‘지젤’의 숭고한 사랑이 담긴 작품이다.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 ‘지젤’은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죽음에 이른다. 이후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무덤을 찾아오자 무덤 주변의 ‘윌리’(처녀 귀신)들은 그를 밤새 춤을 추게 만들어 죽이려 한다. 그때 ‘윌리’가 된 ‘지젤’이 그가 죽지 않도록 돕고 결국엔 그를 살려낸다. 약혼녀가 있음에도 ‘지젤’을 만난 이력 때문에 ‘알브레히트’는 흔히 ‘나쁜 귀족’, ‘방탕한 남자’로 자주 그려지곤 한다.

“저는 ‘알브레히트’가 ‘지젤’을 배신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정말 사랑하는데 신분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약혼녀와 만난 거 아닐까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지젤’이 그걸 알고 죽게 되고요. 상황이 맞아떨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2막에서 ‘알브레히트’는 저(지젤)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 혼자 ‘나 여기 있어’라는 느낌으로 연기를 하거든요. 처음부터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를 지키려 하는 거죠. 제 해석은 그렇습니다.(웃음)”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물으니 금세 소녀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기라도 하듯 환한 웃음이었다. “절 가장 설레게 하는 장면은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첫 만남이에요. ‘알브레히트’가 ‘지젤’ 집 문을 두드리고 숨어요. 그러면 ‘지젤’이 문을 열고 ‘누구지? 여기 있나? 없나?’하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거든요. 그 장면은 정말 음악만 들어도 웃음이 나요. 다른 사람들이 그 장면을 연기해도 혼자 웃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녀가 보여주고 싶은 ‘지젤’은 어떤 모습일까. 이은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백합 같은 지젤’이었다. 그녀는 “제가 나이가 어려서 아무래도 같은 역할을 맡은 언니들보다 연륜이 떨어질 수 있어요. 1막은 제 나이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풋풋함을, 2막에서는 더 애틋한 지젤을 표현하고 싶어요”라고 무대에 대한 당찬 포부를 전했다.

무용수 이은원의 꿈

춤은 몸으로 수많은 감정들을 그려낸다. 대사만 없을 뿐이지 연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최고의 정상에 오른 무용수들도 테크닉을 넘어서 몸으로 감정을 토해내는 경지에 오른 이들이 대다수다. ‘끼’가 필요한 직업이다 보니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연기’와 같은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진 않느냐고 묻자 단번에 “아직까지는 없어요”라는 꽤 단호한 대답이 흘러나온다.

“춤은 말보다는 몸으로 표현해야 하잖아요. 전 말도 잘 못하거든요. 사람이 많으면 떨려서요.(웃음)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연습하는 지금 이 과정은 굉장히 힘들지만, 인생에서 무대에 설 시간은 많지 않겠구나라고요. 그래서 이 순간이 즐거워요. 설레고요.”

그녀는 최근 방영된 ‘댄싱9’를 언급하자 “봤어요!”라며 반가운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댄싱9’의 출연진 중 많은 인원이 그녀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여서다. “(김)명규 오빠는 학번이 같아요. (이)선태 오빠는 한 학번 위인데 저희 발레단 공연도 같이 했었어요. (이)루다 언니는 저 1학년 때 4학년 선배셨거든요. 다 학교 사람이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 TV에 나오니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이번에 댄스스포츠 하시는 김홍인, 김수로 씨 무대를 보고 정말 ‘와~’했어요. 힘도 좋고, 느낌도 좋고 정말 멋지더라고요. 나중에 한번 배워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댄싱9’에서 보았던 그들의 에너지는 그녀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듯했다. 그녀에게 ‘무용수 이은원을 춤추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며 질문을 던지자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춤출 때 가장 행복하다”며 진심 어린 눈빛을 반짝였다. “무대에 섰을 때 관객에게 받는 에너지가 있어요. 프레스콜 때 무대를 딱 보면 객석은 비어있고, 기자분들의 플래시 소리만 들리거든요. 그럴 때 가끔 기가 빠지고 힘들어져요. 그런데 공연 때 꽉 찬 객석에서 춤을 추면 힘이 들어도 정말 즐거워요.”

그녀에게 춤의 소중함을 알려준 시간은 대학교 시절 무릎 부상을 입었을 때다. 발레밖에 모르고 살았던 그녀가 ‘이참에 다른 것을 해보자’는 생각을 처음 해본 시기였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춤의 공백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는 “다른 일을 처음 했을 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서비스 직업이 나한테 맞나?’ 할 정도로요.(웃음) 그런데 한 달이 지나니까 지겨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아르바이트는 3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빠져서 지속적으로 했던 게 ‘발레’밖에 없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힘들어도 제가 발레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요. 그걸 알기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낼 수 있었어요”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무용수로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은원은 “이 모든 일은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제가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의 가슴을 칠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발레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나중에 발레를 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과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요.” 이은원의 정주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발레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가 오래도록 무대에서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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