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리가… 잊을 수 있다면 슬퍼지지 않고, 잊을 거면 쓰지도 않아. 저 동네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 가슴에 등불이, 먼 앞바다 배에서 켜지는 것과 같이 작은 불이 켜지고 아주 조금 따뜻하고 훈훈한 기분이 들어. 잊지 않아. 저 동네는, 저 동네 사람들은 내 안에서 지금도 살아있어”
환한 웃음을 띤 사람들, 하지만 이들의 옷자락에는 삶의 힘겨움이 한 방울 매달려 있다. 이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이들은 서로를 향한 애틋함을 손에 꼭 쥐고 모여 있다. 사람들의 가슴에는 작은 불이 켜져 있다. 사그라질 듯 따스함을 내뿜는 불은 우리에게 삶을 비춘다. 하늘빛 ‘푸른배’는 이들이 바라보는 하늘을 향해 노 젓는다. 품에 안을 수 없었던 꿈을 향해, 불씨 속에 담았던 희망을 향해 한없이 노를 젓는다. ‘푸른배’의 그림자, 어둠은 그들의 허리께에 닿아있다.
잊힌 사람들로 무대를 수놓다
재일교포3세 극작가 겸 연출가인 정의신은 경계인,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보여 왔다. 그의 대표작인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은 70년대 오사카 근처의 재개발지역을 배경으로 재일한국인 가족의 삶을 그렸다. 올해 1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유랑하는 남사당패 사람들과 일본인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었다.
연극 ‘푸른배 이야기’ 역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소시민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택지개발사업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 마을을 30년 만에 찾아간다.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더듬어 가는 이야기로 그 시절의 사람들을 무대에 불러낸다.
야먀모토 슈고로의 소설 '아오베카 모노가타리'가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이 소설의 배경인 우라야마시는 지금 도쿄디즈니랜드로 변해버렸다. 우라야마시는 연극 ‘푸른배 이야기’에서 인천의 남촌도림동으로 각색되었다. 작품 속 30년 전 남촌 도림동의 살아가는 모습은 투박한 뱃사람들의 땀 냄새와 기센 여자들의 웃음이 가득하다.
공연 속 인물들은 노골적이고 본능적이며 저질스러워 보이지만 일면 순수하고 소박한 면을 가진다. 이들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 언저리에서 소박하게 삶을 피웠던 사람들은 낡아서 쓸모없어진 ‘푸른배’ 와 닮아있다.
마을을 찾은 ‘나’는 마을 사람들과 직접 말을 섞고 때로는 제3자의 입장에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작소설의 지문을 화자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들려주는 연출 방식은, 소설의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객관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작품에서는 한 배우가 여러 배역을 맡기도 하고, 한 배역을 여러 배우가 나누어 맡기도 하는 형식적 실험을 한다. 한 인물이 가진 여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이런 시도를 통해 관객들의 공연 보는 재미는 배가 된다.
이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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