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르센 루팡’은 화려했다. 다양하게 변신하는 무대구조, 색색의 파티복과 보석의 향연, 화려한 캐스팅은 대작을 감상했다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몇 번이고 변신하는 무대장치는 탄성을 자아낸다. 무대 바닥이 솟아오르며 비밀의 방이 모습을 드러낼 때는 눈을 뗄 수 없다. 반면, 초연이기에 잡히지 않은 약한 캐릭터는 그 ‘화려함’을 반감시키며 아쉬움을 남긴다.
 
이 작품의 원작은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이다. 모리스 르블랑은 이 소설을 1905년부터 34년간 연재했다. 뮤지컬 ‘아르센 루팡’은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뮤지컬로 제작됐다. 창작 뮤지컬에 초연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관객들 앞에 선 이 작품의 ‘루팡’은 어떤 모습일까.
 
- 다면화된 캐릭터의 루팡
 
뮤지컬 ‘아르센 루팡’에는 한 작품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몇 가지의 다른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캐릭터도 다면화된다. 루팡은 처음에는 유쾌하고, 중반에는 깊은 슬픔을 가졌다가, 후반부에는 정의감으로 불타오른다. 마지막에는 그 정의감이 장난처럼 가볍게 그려진다.
 
처음의 루팡은 유쾌하고 능청스럽다. 도둑질을 하고 잡혀가면서도 넬리를 향해 장미꽃을 선사한다. 보고 싶었다며 흐느끼는 넬리를 느끼하게 안으며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그의 능청스러움은 아픈 과거를 회상하며 고독해진다. 루팡의 아역배우가 등장하며 가슴 찢기는 기억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루팡을 보호해주던 은인은 살해당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루팡의 가슴은 까맣게 탄다. 은인은 죽어가면서도 ‘살인은 안 된다’며 루팡을 말린다. 루팡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그를 바라만 본다.
 
관객은 루팡이 개인적인 아픔을 좇아 복수할 것이라 예측한다. 하지만 그의 다음 행보는 예상 밖이다. 그는 공연 후반부로 가며 정의감에 불타오른다. 은인과 등장인물들을 죽이고 혼자 돈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제브르를 교화시키려 하고, 무너진 수도원에서 그를 살려내려 애쓴다.
 
또 한 번의 변덕은 마지막 장면이다. 결국 무너진 수도원에서 혼자 빠져나온 루팡이 ‘아, 제브르 안 꺼냈네. 제브르으!’하며 깜박한 듯, 장난스럽게 외친다. 정의를 위해 악인마저 구하려 했던 루팡의 의도는 결국 장난으로 흩날린다.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공연 내내 ‘물음표’가 떠있다.
 

- 루팡과 함께 흔들리는 다른 캐릭터들
 
루팡과 대결구도를 이루는 캐릭터들은 레오나르도, 조세핀, 제브르, 가니마르다. 이 중 특정한 한 캐릭터가 강하게 루팡과 대결구도를 이루지 못하고 네 인물이 병렬식으로 나열된다. 루팡의 캐릭터가 분명한 색을 가지지 못했기에 대결구도도 분명하지 못했다. 대결구도의 중심이 선명하지 않은 것은 극을 끌어가는 힘조차 잃게 했다.
 
공연을 보고나니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 TV로 보았던 만화영화 ‘괴도 루팡’이었다. 매일 저녁 TV앞에 옹기종기 앉아 하나씩 보며 쫄깃한 마음을 안고 다음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몇 가지의 스토리가 담긴 이 공연을 보고 나니 만화영화를 몇 편 연속 한꺼번에 본 듯했다. 

- 난해함을 잡아 준 실력파 배우들
 
중심을 잡기 어려운 작품을 굳건하게 이끌어 간 것은 배우들의 힘이었다. 양준모의 무대 장악력은 여전했다. 그는 등장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루팡의 어두운 심리묘사 연기는 탁월했고, 쾌활하고 능글맞은 루팡도 감칠 나게 소화했다. 문진아는 청아한 목소리로 넘버를 부르며 사랑스럽고 씩씩한 캐릭터를 다부지게 연기해낸다. 이들의 연기는 매 장면을 빛내 사진처럼 관객의 가슴에 판박이 된다. 하지만 그 사진들이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하나의 작품을 그려내지는 못했다. 추후의 공연에서는 이 빛나는 장면들이 점들이 아니라 흐르는 영상이 되어 뇌리에 남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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