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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실과 예술을 말하다”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 이현정 연출가3월 12일부터 3월 31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1920년대, 시골 마을의 한 여인이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한 신문사의 기자는 ‘독살미인’이란 타이틀로 특종 기사를 대문짝만 하게 내건다. 신문은 남편을 살해했다는 범죄자가 ‘미인’이라는 문구 하나에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재판 당일, 주변은 삼일운동 이래 최고의 인파가 몰린다. 민족운동만큼이나 커다란 세간의 관심이 쏠린, 조선의 관습을 뒤엎는 희대의 ‘사건’이자 ‘신드롬’이었다.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은 1920년대 실제 있었던 ‘김정필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작품은 연극 ‘뷰티퀸’, ‘아미시 프로젝트’의 이문원 작가가 쓰고, 이현정 연출가가 함께하는 창작초연작이다. 2009년 창작팩토리 시범공연지원사업 선정작으로 한 차례 쇼케이스를 펼치며 탄탄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13년,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은 개성 있는 작품들을 무대에 펼쳐온 남산예술센터의 시즌 라인업 첫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의 한계’와 ‘예술’에 대한 진지한 시각이 드러나는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의 이현정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삼일운동 이후 최고 인파를 끌어모은 ‘김정필 사건’
‘진실’과 ‘예술’을 이야기하다

- ‘1920년대 부인이 남편을 살해했다’ 당시로는 엄청난 사건이지 않나. 소재는 어떻게 알게 됐나.

이문원 작가가 인터넷에서 ‘김정필 사건’을 우연히 봤다더라. 그 소재를 발견하게 된 시기가 여성의 외모가 이슈로 떠오른 때였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진실이 아니라 스펙이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나. ‘김정필 사건’도 ‘진실’에 대한 문제에 맞닿아 있어서 재밌는 소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은 처음 사건에 대해 기사를 쓴 황기자의 시각이 굉장히 중요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기사가 실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남편을 살해한 여자가 ‘미인’이라는 말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삼일운동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몰렸다고 하지 않나. 그러한 인파를 몰리게 한 ‘첫 기사를 쓴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 하다가 연극 속 기사를 쓰는 기자가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을 하게 됐다. 처음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시점에서 출발했다가, 황기자를 중심으로 ‘예술’과 ‘진실’에 대해서 깊게 다루게 됐다.

- 황기자는 어떤 인물인가?

황기자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자신이 쓴 소설을 연재해줄 신문사를 찾다가 우연히 한 신문사의 말단기자로 일하게 된다. 윤정빈 사건도 자신에게 던져진 한 장의 사진으로 취재도 없이 ‘소설’을 써버린 거다. 이 기사 때문에 남편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윤정빈은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미인’이 돼버린다. 황기자는 진실이 아닌 자신의 기사 내용에 불안해하지만 ‘이것만 잘 넘기면 소설을 출판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희망을 건다. 그는 이후 윤정빈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예술가가 자신의 뮤즈를 만난 것처럼 목숨을 걸만큼 소중한 소설을 쓰게 된다.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황기자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낸다. 순수 예술인들은 부모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까지 ‘이걸 안하면 죽을 것 같아서’ 예술을 한다. 대본 내용 중에도 ‘이 땅의 모든 예술가들을 위해 건배’라는 대사가 있다.

- 중점적으로 다뤘던 부분이 있나?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크게 보면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황기자를 통해 드러나는 ‘예술’에 대한 고민을 그린다.

비유적으로 가장 크게 잡은 테제는 ‘눈’이다. 극중에는 ‘눈 같은 기사’, ‘눈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세상은 시커멓고 더러운데 눈이 내리면 잠깐 하얗게 변하지 않나. 흰 눈으로 덮어온 한국사의 역사적 아픔을 황기자 같은 보통 지식인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 극중에는 이광수도 등장한다. 시놉시스를 읽으니 이광수의 역할이 굉장히 궁금해지더라.

세상에는 특권층이 있고, 부자가 있다.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뱀 같은 지혜로 잘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뛰어넘는 강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극에 등장하는 이광수는 이 ‘세계의 룰’ 밖에 있는 인물이다.

일차원적으로 보면 두 사람은 ‘성공한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다. 극중에는 이광수가 황기자의 글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황기자는 ‘당신이 뭔데 나에게 충고하냐’고 말한다. 이광수는 ‘나는 삼류연애소설 작가고, 친일파다. 나는 나를 안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나에 대해 책임진다. 너는 너의 글이 진실하냐’고 묻는다. 이광수는 체계를 넘어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강한 종자인 거다. 황기자는 쓰레기 같은 세상의 체계를 따르기엔 양심이 크고, 밖에서 살아남기에는 강하지 못한 보통 인물이다.

- 이광수와 황기자의 대립 구도 등 작품의 인물 설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윤정빈은 어떤 인물로 그려지나.

윤정빈은 1920년대를 산 여성이다. 당시 ‘여자의 성공’은 ‘시집 잘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니면 ‘나혜석’이나 ‘윤심덕’처럼 돼야 했다. 윤정빈은 집안 사정 때문에 배우진 못했지만 예쁜 생김새를 가졌던 인물이다. 그 때문에 지참금을 많이 받고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성병과 폐병에 걸려 있는 환자였다. 당시는 이광수의 ‘무정’이 유행하면서 자유연애 사상이 크게 유행했다. 윤정빈은 우연히 이 소설을 알게 되면서 ‘사랑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연애소설을 통해 ‘사랑’이라는 개념을 ‘사랑’하게 된 거다. 그런 사람이다.

개성과 작품성 두루 갖춘 무대 선보인 ‘남산예술센터’, 2013시즌 첫 무대

- 남산예술센터의 무대는 원형으로 돌출돼 있다. 보는 입장에선 멋지지만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작업일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다.(웃음)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은 장면이 많이 바뀌는 편이다. 극의 흐름 자체도 무대를 매번 셋업하기에는 호흡이 빠르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명의 전환으로 많이 표현하려고 한다.

- 남산예술센터는 그동안 개성 있으면서도 작품성 있는 연극들을 공연해 왔다. 2013년 시즌 첫 작품으로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부담감이 ‘매우’ 크다.(웃음) 사실 예정보다 공연이 빨리 들어가게 돼서 배우 캐스팅, 스태프 날짜 조정하는 게 좀 힘들었다. 지난 쇼케이스를 함께했던 배우들도 연락하니 이미 다른 공연스케줄이 잡혀있더라.

- 함께하는 팀의 호흡은 어떤가?

좋다. 연극은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라 함께하는 예술이지 않나. 늘 끝은 ‘사람과 사람’의 문제다. 그건 매 작품을 할 때마다 깨지면서 배우는 것 같다.(웃음)

- 부부가 함께 작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호흡이 안 맞거나, 의견이 충돌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런데 ‘공과 사’의 분리가 안 된다.(웃음) 예를 들면, 연습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쉬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집에 가도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24시간 일하는 기분이다.(웃음)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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