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은 일본의 ‘오타쿠 문화’라는 재료에 ‘추리’라는 맛깔스런 양념을 더한 색다른 매력의 코미디다. 2011년 초연된 후 2년 사이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꾸준히 관객과 만나고 있는 무대는 한국 역시 더 이상 ‘오타쿠 문화’ 혹은 ‘팬덤 문화’가 낯설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은 아이돌 ‘키사라기 미키짱’(이하 미키짱)의 죽음 이후 1주기 추도식을 위해 모인 오타쿠 삼촌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미키짱’의 죽음 후에도 그녀를 향한 사랑이 여전한 기무라 타쿠야, 스네이크, 이에모토, 야스오, 딸기소녀 등 다섯 명의 오타쿠는 1주기 추도식을 갖기로 한다. 모임장소에서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콜렉션’, ‘사진’, ‘물품’ 등을 내놓으며 ‘미키짱’과 관련된 추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 중 한 명이 ‘미키짱’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상황은 더욱 미스터리하게 흘러간다.

추리와 코미디의 아슬아슬한 경계 ★★★☆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은 코미디와 추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묵직한 긴장감이 흘러야 할 추리 도중에도 무심결에 툭 튀어나오는 유머는 절로 ‘풉’하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모두가 추리에 열을 올리는 사이 ‘야스오’는 상한 애플파이를 먹고 화장실에 가느라 매번 중요한 순간을 놓친다. 다른 오타쿠들은 핵심 단서가 나타날 때마다 ‘미키짱’과 연관돼 있다는 이유로 수집 욕심에 눈을 반짝인다. 객석은 이들의 ‘미키짱’을 향한 무한애정에 탄식과 웃음이 섞인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를 연발한다. 작품의 웃음 코드는 추리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무대를 뛰논다. 한껏 조여 오다가도 툭 하고 풀어버린다. 극은 이러한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배치 덕에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다양한 세대가 즐기기엔? ★★☆

작품은 비교적 최근 생겨난 ‘문화적 코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팬덤 문화가 있었지만 일본처럼 극성 ‘오타쿠’들이 생겨난 것은 근래에 이르러서다.

이 때문에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의 코드를 즐길 수 있는 세대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타겟층도 분명하다. 학창 시절 팬덤 문화를 경험한 10대부터 30대까지 관객의 반응이 가장 뜨겁고 몰입도도 높다. 특히, 과거 팬클럽이나 동호회에서 활동해 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의 공감지수는 급상승한다. 하지만 각색을 거쳤다 해도 원류가 일본인 만큼 여전히 일본 색채가 짙은 편이다. 다양한 세대를 포괄하기에도 소재의 특수성이 강해 40대 이상의 관객의 공감대를 끌어내기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

개성 강한 캐릭터의 조화! ★★★☆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에는 다섯 명의 오타쿠가 등장한다. 성격과 생김새도 각양각색이다. 겉은 영락없는 아저씨지만 조신하게 딸기 머리띠를 두른 ‘딸기소녀’, 얼굴과 이름이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기무라 타쿠야’, ‘미키짱’의 모든 활동과 희귀본을 소장한 허우대 멀쩡한 ‘이에모토’, 결정적인 순간엔 꼭 사라지고 마는 허당 ‘야스오’, 명랑하다 못해 산만함의 끝판을 보이는 ‘스네이크’까지 누구랄 것 없이 그야말로 개성파 인물들이다.

작품은 ‘센’ 캐릭터들이 한 데 뭉쳤음에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한 명의 등장인물이 부각되면 다른 인물들은 그의 이야기가 돋보일 수 있도록 부수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에 빈틈이 생기면 빠른 템포로 치고 들어와 어느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구조에도 인물들은 마치 온갖 채소가 몸을 뒤섞은 샐러드볼에 감칠맛 나는 소스를 뿌린 것처럼 이야기에 착착 스며든다. 여기에 일본 번역극을 자주 맡아온 이해제 연출가의 생기 있고 이해도 높은 연출이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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