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5년째, 27살 나영의 인생은 고달프다. 어딜 가도 똑같은 직장 생활에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삼시세끼 밥을 챙겨먹기도 힘들다. 몇 번째 이사일까, 덜컹덜컹 허름한 동네를 찾아 헤매는 것도 지겹다. 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 나영을 위로하는 건 차가운 바람에 나풀거리는 빨래조각들이다.

- 외로움과 슬픔의 도시 ‘서울’,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공연이 시작되면 동네 사람들은 ‘서울살이 몇핸가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밝은 조명 아래 해맑아 보이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유쾌함’ 그 자체다. 그런데 노래 가사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다. “서울 살이 5년째, 4번째 직장, 여섯 번째 이사, 최저 임금 칠십팔만 원”이라는 가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나영은 ‘서울살이 몇핸가요’의 노래의 가사를 몸소 삶으로 체험하고 있는 인물이다. 강원도에서 상경한 그는 서점에서 책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영은 문학의 길을 꿈꿨지만 대학의 문턱은 버거웠다. 그의 유일한 낙은 출퇴근할 때 간간이 보는 소설책뿐이다. 

나영이 자신의 집 건너편에 살고 있는 몽골청년 솔롱고를 만나면서 그의 캐릭터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낸다. 나영과 솔롱고는 모두 타지에서 힘든 생활을 살고 있다. 솔롱고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문학청년이었지만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다. 두 사람은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고,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점에서 공통을 이룬다.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될수록 나영과 솔롱고는 점차 가까워진다.    

나영 역할을 맡은 배우 차미연은 나영의 외로움과 슬픔에 초점을 맞춰 연기에 임했다. 차분하지만 힘이 없는 목소리, 어수룩한 말투, 사람들과 시선을 똑바로 맞추지 못하는 겁에 질린 나영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다양한 무대 효과는 나영이 어떠한 인물인지 관객에게 입체적으로 알려준다. 무대는 나영의 일상 공간들로 구성된다. 앉은뱅이책상과 별다른 가구 없이 초라한 나영의 방, 이와는 대비된 커다란 대형서점은 일용직 노동자로 고된 삶을 사는 나영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외에도 나영과 등장인물들이 만원 버스에 탄 모습을 연출한 장면은 전쟁 같은 출근길을 다이내믹하게 그려냈다.

- 강원도 사투리에서 아저씨들과 ‘맞짱’까지 뜨는 당돌함까지  

나영은 겉모습만 봤을 때는 얌전하고 평범하다. 그렇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나영은 다양한 매력을 선보인다. 그는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과 같이 유채색상의 다양한 의상으로 20대 청춘의 모습을 드러낸다.  
 

나영이 고향 집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강원도 사투리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뿐인가. 그는 욱하는 성격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맞이한다.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되는 상사를 보며 분명하게 “이거 부당해고에요. 사장님” 이라는 나영의 말은 깊은 울림이 있다. 또한, 나영은 이웃집 솔롱고가 집주인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을 때 참지 못하고 덤비는 당돌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차미연 배우는 수줍은 모습에서 화를 내는 모습까지 나영의 다양한 모습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그는 감정의 과잉 없이 정점의 순간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끌어 모은다.

- 빨래, 오늘을 맞이하는 행복과 내일을 꿈꾸는 희망

고된 세상살이에서 나영이 위로를 받는 순간은 바로 ‘빨래’를 말릴 때다. 옥상으로 터덜터덜 올라가 빨래를 너는 순간은 왠지 모를 쾌감이 있다. 옥상은 나영이 빨래를 너는 모습과 함께 몽골 청년 솔롱고와 나영의 애틋한 모습을 담는 공간이다. 옥상에서 나오는 뮤지컬 넘버들은 밝고 경쾌하다. 노래는 특별한 가사가 담겨있지는 않지만 쉬는 날 빨래를 너는 여유와 나른함이 묻어나온다.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온 나영이 집 앞에서 엎드려 울고 있을 때 그를 위로한 것도 바로 빨래였다. 빨래는 세상을 견디는 나영의 모습과 닮았다. 작품은 빨래가 바람에 몸을 맡기며 마르는 것처럼 세상의 모진 풍파도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하얀 거품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제는 오늘의 상처를 씻어준다. 빨래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거친 상처도 어느 순간 사라질 것임을 암시한다. 이제 그는 차가운 세상이 밉지 않다. 사랑하는 연인과 빨래를 하며 오늘을 맞이하고 내일을 꿈꾸는 행복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배세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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