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어둠, 오지 않는 새벽, 죽음이 찾아올까 두렵다. 잠이 들고 싶은데 잠이 들까 두렵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박한 전쟁터, 사랑과 꿈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당신을 살릴 수만 있으면 내 목숨은 거둬가도 상관없어”

뮤지컬 ‘The promise’에서 국군 청년 일곱 명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인다. 등장인물 중 부소대장 상진은 살아야 한다는 집념을 가장 크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고립된 상황 속에서 탈출의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다. 상진은 지훈이 자신보다 상사라는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 명령 때문에 모두가 죽었어”라며 분노를 토해낸다. ‘나라도 살아야지, 나 혼자면 여기 얼마든지 살아나갈 수 있다’는 식의 태도는 이기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가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려는 것은 단순한 ‘삶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상진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랑하는 아씨다. 사랑은 상진이 살아야 하는 이유이자 목표다. 상진과 아씨는 집안의 격차로 이뤄질 수 없었다. 결국,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한 아씨는 매일 폭언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상진은 사랑하는 아씨를 지키기 위해 아씨의 남편을 죽이고 만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서 버티라”는 말을 남긴 채 아씨의 곁을 홀연히 떠나고 만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지켜냈던 아씨는 또다시 위기를 맞이한다. 원인은 바로 6·25전쟁이다. 인민군은 아씨가 있는 마을까지 점령한 상황, 상진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한 지경에서도 아씨를 구하러 달려간다.

현실에서의 상진은 철저하게 계산적이다. 소대장 지훈을 향해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게 돼 있어. 그런 대원을 끌고 오느라 살아있는 사람까지 죽이려 하느냐”고 반박한다. 그렇지만 상진은 사랑 앞에서는 앞뒤를 분간할 줄 모른다. 그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잡기 위해 끝까지 달려간다. 아씨를 향해 “우리 함께 도망가자”고 절규하는 상진의 모습은 이를 잘 반영하는 대목이다. 상진은 싸늘한 시체가 돼버린 아씨 앞에서 눈물보다 슬픈 허망함으로 속절없는 사랑을 심연까지 드러낸다. 

김무열 배우는 상진의 원초적이고 사랑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완벽하게 그린다. 그는 몸짓과 눈빛만으로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의 모습을 완성해낸다.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가 죽어도 괜찮아’라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상진이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게 한다.

‘역사의 의무보다 사랑을 선택한 남자’

6·25전쟁이라는 상황은 자신보다 나라와 집단을 먼저 생각하게 한다. 소대장 지훈은 “이 시대는 개인의 꿈보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는 대사를 통해 당시 시대를 표현한다. 그렇지만 상진은 지훈의 모습과는 대비되게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극이 전개될수록 전쟁 상황은 치열해진다. 강렬한 비트의 음악, 탱크까지 무대에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위기 속에 상훈의 아씨에 대한 사랑이 크게 두각 되기 시작한다. 지훈에게 부탁을 하며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니 나를 보내 달라”고 말하는가 하면, 아씨의 주검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노래를 부른다.

아씨의 죽음 이후에 상진은 다시 싸우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의 전투는 ‘조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한 싸움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결연한 의지, 바로 그것이 상진이 다짐했던 전쟁에서의 ‘약속’이 아니었을까.

배세민 기자_사진 홍아름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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