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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미제라블’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종열 총기획자 인터뷰연극 ‘레미제라블’ 12월 3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올해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잇따라 국내 대중과 만나고 있다. 세계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에 의해 탄생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한국어 초연과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까지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영화 ‘레미제라블’도 개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대작들 사이에서 순수 국내 창작 연극인 ‘레미제라블’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은 뮤지컬과 영화가 주목한 ‘장발장’의 인간애라는 주제와 달리 프랑스의 대혼란기를 살아간 ‘힘없는 자들’에 대해 조명한다. 특히, 작품은 예술단체나 국가 기관이 아닌 회원제로 운영되는 ‘50대연기자그룹’을 주축으로 공동제작 방식을 선택해 주목받았다. 이번 공연의 총 기획을 맡은 이종열에게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지난해 초연했던 연극 ‘레미제라블’이 다시 재공연 무대에 오른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재공연을 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관객 요청에 의해서 열리는 것이다. 두 번째 바람직한 방법은 배우, 스태프를 포함한 공연 참가자들의 공연 만족도에 의해서다. 세 번째는 제작자의 의지에 의해 공연이 열리는 경우다. 이번 연극 ‘레미제라블’의 경우는 앞서 말한 1, 2, 3의 모든 경우를 포함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작년 공연에서 100여 명의 배우, 스태프 등이 함께한 작품의 열정이 추운 연말 연극계를 뜨겁게 달궜던 만큼, 그 느낌을 2012년 말에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으면 한다.

- 연극 ‘레미제라블’은 지난해 공연 당시에도 ‘회원제 단체의 공동제작’이라는 독특한 공연 제작 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공동제작의 방식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1970~80년대 극단 시스템이 주로 해왔던 ‘동인제 시스템’이랄까. 그때는 뜻이 맞는 연극인들이 모여서 극단과 작품을 만들었다. 제작비들도 그들이 함께 부담하는 형식이었다. 흥하든 망하는 공동으로 분배한다. ‘동지의식’으로 함께하다 보니 작품을 대하는 정신이 남다르지 않았나 한다. 연극 ‘레미제라블’은 그러한 제작 방식을 도입했다. 오디션을 통해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기본급을 보장하고, 작품의 공동제작에 참여한 ‘50대연기자그룹’ 배우들은 결산 이후에 공동분배를 한다.

- 이번 공연을 주최한 ‘50대 연기자 그룹’은 어떤 단체인가.

한마디로 ‘대학로 지킴이’들이다. 그동안 연극계를 지켜왔고, 앞으로 연극계를 이끌어갈 중년 연기자들의 모임이다. 그 시작은 30년 전이다. 1982년 민주화의 바람이 세차게 불던 시절, 당시 연극의 메카였던 '명동 엘칸토극장' 옆의 한 중국집에서 혈기왕성한 배우들이 모였었다. 우리들은 연극계의 현실과 한국 연극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을 나누며 다들 “연극배우도 직업인데 프로패셔널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자”라고 입을 모았다. 그 자리에서 함께 결의하면서 ‘30대 연기자 그룹’이 탄생됐다. 당시의 제작환경을 고려한다면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도제식 교육이 전부였던 시대상황 속에서 제작자와 배우는 수직 관계였고, 계약서나 개런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 되던 시절이었다. 간혹 몇몇 배우들이 도발적으로 극단 대표나 연출자에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쫓겨나거나 몇 년간 배역 없는 설움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시절에 탄생한 ‘30대 연기자 그룹’은 열악한 제작환경에 새로운 장을 연 단체라고 할 수 있다.

- ‘50대 연기자 그룹’의 활동은 어떻게 이뤄져 왔나.

‘30대 연기자 그룹’이 만들어진 후 1983년 1월, 문예회관 소극장(현 아르코 소극장)에서 ‘착한 사람들’이라는 첫 번째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이어 1985년 3월에는 샘터 파랑새극장에서 강영걸 연출의 ‘여자 만세’가 공연됐다. 이 작품들은 모두 배우들이 직접 공연 제작에 참여해 공동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새로운 제작방식이었다.

이 공연을 통해 연극배우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졌고, 40대와 20대의 배우들도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서울 연기자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그 외에도 정통 연극 방식을 이어 나가기 위해 연극 ‘밤주막’, ‘어머니’, ‘출세기’ 등의 명작 시리즈를 공동제작 방식으로 무대에 올렸다. 정통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호응에 매진 사례가 나오기도 했고, 연극의 사회적 가치에도 이바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당시 30대 배우들은 50대, 60대가 됐다. 그래서 ‘오! 십대 연기자 그룹’이 탄생하게 된 거다.(웃음)

 

- 그렇다면 연극 ‘레미제라블’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 ‘30대연기자그룹’ 시작 때부터 일반 극단이 올리기 어려운 공연을 많이 했었다. 즉, 대형 명작공연 위주로 레퍼토리를 선정했다. 이번에도 ‘빅토르위고’가 17년간 집필 끝에 총 5권으로 이뤄진 소설을 국민성 작가가 각색하면서 다시 한 번 ‘연기자그룹’만이 올릴 수 있는 공연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대학로는 각양각색의 공연들이 수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창작자 위주의 실험성이 강한 공연들이 관객의 호응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고, 작품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위한 공연으로 아주 적절한 레퍼토리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대학로 지킴이’로써 한국 연극계의 세대 간 격차를 해소하고, 고전과 현대극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연극 정신과 정통성과 가치를 회복하는 역할을 해보겠다는 의미가 바닥에 깔려있다.

- 국가나 예술단체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공연을 기획 제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제작비 마련’이 가장 힘들었다. 작년이나 올해나 지원금 한 푼 없이 시작했기 때문이다.(웃음) 그러나 다 같이 시작하자고 ‘아자아자’하는 마음으로 출발하니 길이 조금씩 열리더라. 그때 마침 서울문화재단에서 기업기부금 ‘1:1 매칭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뉴욕 핫도그'가 매칭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돼 제작비 마련에 큰 도움을 받았다. 특히, MBC가 공동주최를 해 공연의 홍보와 퀄리티를 한층 높여줬다.

- 연극 ‘레미제라블’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였나.

공연제작을 하면서 정말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학생단체관람 때문에 오전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볼 때였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에게 ‘레미제라블’이라는 명작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하게 된 과천과학관 어울림홀 공연은 학생 일정을 맞추다 보니 오전 10시 30분에 무대에 올랐었다. 주로 저녁 시간에 무대에 오르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일상 템포가 오전 10시 30분과 맞질 않아서 힘겹게 공연했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환경에서 밥을 챙겨 먹지 못한 스태프들이 많아 지원받은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공연할 때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후회가 들 정도였다.

- 국내에선 사실 대극장 창작 연극 작품들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흥행도 어렵지 않나. 한국에서 대극장 연극을 제작하는 데 느낀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창작지원금 제도가 여기저기 있어서 공연하고자 하는 의지와 준비만 잘 갖춘다면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환경은 조성돼 있다고 생각한다. 70~80년대의 연극 제작여건과 비교해 본다면 더없이 행복한 조건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원금 제도에 젖어버려 지원금을 신청했다가 선정이 되지 않으면 공연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실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딱 지원금만큼의 제작비로만 공연을 하다 보니 성공적인 공연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연극정신을 부르짖고 있는 거다. 지원처에서는 안타깝게도 소액다권으로 지원해주는 곳이 많아 수준 높은 작품에 많은 지원이 가질 않는 것이 창작극의 성공의 저해 요건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 이번 작품은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과 함께 무대에 올라 더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뮤지컬, 영화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참 이렇게 우연히 겹쳐 각 장르별 공연이 한꺼번에 오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꽁꽁 얼어붙은 연말에 ‘장발장’의 따스함을 한꺼번에 느끼게 해주는데 연극인으로 일조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사실 공연을 준비하느라 아직 뮤지컬과 영화를 보질 못했다. 그 때문에 작품의 차이점을 자세히 말할 순 없다. 다만 총 기획을 하면서 뮤지컬과 영화의 눈에 띄는 홍보와 마케팅에 많이 놀랐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타 장르의 홍보에 힘입어 덩달아 잘 될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예매를 했다가 뮤지컬이 아니냐며 취소를 하기도 한다.(웃음) 연극을 격려하기 위한 얘기 일수도 있지만 작년에 연극을 본 관객 및 주변인들이 연극이 ‘더 감동적’이었다며 조용히 귀띔해 줘서 기죽지 않고 계속 달려가고 있다.

-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나 보여주고 싶었던 점이 있나.

‘레미제라블’이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을 통해 수없이 되풀이되고, 관객들로부터 다시 사랑을 받는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이 ‘비참’한 이야기의 보편성 때문일 거다. 가치가 전도되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유린이 ‘법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시대의 보편성’ 말이다. 더욱이 우리가 위치한 현재의 시기는 이 유감스러운 보편성이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시대 아닌가.

위정자의 이익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다. 위정자의 법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들어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빵’ 하나 때문에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고, 굶지 않아도 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빵’을 사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돈에 굴복해야 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 굴복을 너무나 당연하게 주장하고, 심지어 그 굴복을 자랑삼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비참’하다.

이 작품을 단순한 이야기 구조의 동화처럼 생각해 보면, ‘자베르 경감이라는 악’과 ‘장발장이라는 선’의 대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의 진정한 대립은 ‘선과 악’의 관계가 아니라 ‘현실과 이상’의 관계이며, ‘비참과 존엄’의 관계다. 때문에 주제의 측면에서 인간적 존엄을 잃은 ‘테나르디에’와 자기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장발장’의 대립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들의 대립은 추함과 아름다움의 대립으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삶의 방식을 보여줄 것이다.

- 연극 ‘레미제라블’을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을 감옥살이한 ‘장발장’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이렇게 익숙한 이야기가 왜 뮤지컬로 만들어져 최고의 공연으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영화 역시 새롭게 만들어져 올라갈까. 이는 프랑스의 대문호 위대한 빅토르위고의 작품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과 만인에게 행복을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 꽁꽁 얼어붙은 연말에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장발장’의 삶을 보며 따스함을 느끼시기를 바란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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