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이 하얗게 빛나는 한 여인 위로 겹겹이 지붕이 올라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붕 옆으로는 역시나 끝을 알 수 없는 높은 성탑이 자라고 있다. 마치 서커스의 천막을 밖에서 바라보는 듯 붉고 노란 색채로 빛나는 성탑은 어떤 비현실적인 세계를 품고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끝을 모르고 중첩되는 지붕과 높은 성탑, 마치 살아서 자라나는 듯한 성의 단면에는 누군가의 낡은 서재가 보인다. 흰 옷을 입고 서 있는 한 여인 아래로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앉아 있다. 자신의 서재인 듯 군림하는 남자와 이 곳 세계와 동떨어진 곳에서 온 것 같은 낯선 여인의 꿈꾸는 듯한 표정이 대조를 이룬다.

작품의 제목은 일렁이는 불길과 같은 색채를 띤 단 한 글자, ‘꿈’이다. 스웨덴어로 쓰여진 작품의 원제와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면 보지 않아도 이미 범상치 않은 작품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스트린드베리이, “이 세상, 삶, 인간들은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스트린드베리이의 원작을 바탕으로 이윤택이 연출을 맡은 연극 ‘꿈’이다. 스트린드베리이의 시학과 자작시를 시인 출신의 연출가 이윤택이 시극양식으로 풀어내는 대목에 주목할 만하다. 연희단거리패는 자유연상의 기억, 체험, 삶에 대한 단상, 부조리한 세계 인식 등을 시간과 공간이 해체된 무대로 그려낸다.

포스터 속 여인은 스트린드베리이의 꿈속에 내려앉은 ‘아그네스’로 보인다. 장소는 작품 속에서 ‘매일 자라는 성’으로 표현되는 장교의 서재다. 신의 딸 아그네스가 인간의 현실 속에 들어와 스트린드베리이의 분신들을 만나며 환상적인 이야기를 이어간다.

1901년에 쓰인 원작 ‘꿈’은 동시대의 자연주의 계열 작품들과 전혀 다른 형식의 희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트린드베리이는 스스로 희곡 ‘꿈’에 대해 ‘몽환의 테크닉’, ‘유랑의 드라마’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스트린드베리이는 “이 세상, 삶, 인간들은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삶의 비애와 “인간이 불쌍하다”는 연민의 명대사를 남기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 작가 스트린드베리이의 모습은 장교, 변호사, 시인이라는 분신으로 등장한다. 공연은 스트린드베리이의 분신들끼리 서로 만나고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배우의 말을 중심으로 하되, 무대 미술가 신선희의 상징적 무대와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극적 양식,  안무자 겸 배우로 나서는 이승헌의 몸의 움직임, 특유의 색채감과 공간미를 표현해낼 조인곤의 조명이 더해진 무대 미학을 선보인다.

연희단거리패의 스트린드베리이 페스티벌 참가작 ‘꿈’은 12월 7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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