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마음속에 ‘이상형’은 존재한다. 일명 ‘백마 탄 왕자님’으로 비유되는 스타일 좋고, 재력 좋고, 유머러스하며, 여자의 말에 동감하는 한 마디를 날릴 줄 아는 센스까지 지닌 ‘완벽남’을 꿈꾼다. 하지만 실제 여자들이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완벽남’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좋게 표현하자면 어딘가 한 두 가지쯤 부족한, 요즘 말로 ‘완소남’ 스타일이랄까.

강남 윤당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그남자 그여자’에는 자신의 이상형과 전혀 다른 남자에게 빠져버린 여 주인공 ‘선애’가 있다. 선애는 입사 때부터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은 미녀 사원이다. 당차고 매력 넘치는 선애에게 아쉬울 것도 손에 넣지 못할 것도 하나 없어 보이지만 그녀는 사실 ‘짝사랑’ 중이다. 하필 그것도 그녀의 이상형과 정반대인 바로 옆 자리의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패션 센스가 없고, 커피를 숭늉처럼 마시는 까만 뿔테 안경남’만 아니면 된다고 답하지만 그 조건에 정확히 부합하는 남자가 바로 옆에 앉아 있다. 선애는 여자만의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다른 남자가 하면 절대 싫었을 행동이 모두 이 남자라면 허용돼 버리는 바로 ‘콩깍지의 딜레마’다.

선애가 직장 동료인 영훈과 사랑에 빠지고 커플이 되어 겪는 일련의 모든 ‘연애 과정’들은 영훈과 선애의 시각으로 각각 다르게 서술된다. 특히, 선애의 연기와 독백은 사랑에 빠지고 연애에 돌입한 여자라면 200% 공감할만한 대사들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좋아하는 남자와의 사소한 일상을 담은 짝사랑 일기 쓰기, 직장에서는 완벽 커리어우먼, 휴일에는 촌스러운 추리닝 차림으로 변신하기, 첫 데이트 식사에서 쌈 싸주는 남자에게 곤란한 내숭으로 응대하기 등이 평범한 여성의 실상과 그대로 닮아 있다. 예뻐 보이고 싶어 애를 쓰다 매번 지각하고, 손수 뜬 목도리를 선물하려다 실패하는 모습들도 사랑에 빠진 여자만의 전유물이다.

연극 ‘그남자 그여자’의 두 커플 중에서도 직장인 커플의 선애에게 주목할 만한 이유는 또 있다. 작품은 선애와 영훈의 연애가 현재의 ‘연애 중’에 그치지 않고 ‘결혼’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의 갈등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선애는 특히, 결혼이라는 현실의 벽을 쉽사리 넘지 못하는 상대에게 실망과 회의감을 느끼는 이 시대 젊은 여성의 내면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연애는 괜찮지만, 결혼은 부담스럽다’는 많은 미혼 남성들의 소극적 입장에 맞서는 여성의 적극적인 대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 결과도 통쾌하고 훈훈하다. 눈물바람 끝에 선애는 결국 영훈의 감동적인 프러포즈를 받아내고야 만다.

연극 ‘그남자 그여자’의 묘미는 대학생의 풋풋한 커플과 결혼을 앞둔 커플의 사랑을 만남에서부터 이별, 화해의 순으로 보여주면서 전 세대 남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누구나 첫 사랑이 있고, 짝사랑을 한 경험이 있다. 결혼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한 적이 있는 미혼 남녀, 헤어짐의 아픔을 겪은 적 있는 커플에게도 이 작품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공감의 무대가 된다. 특히, ‘완벽남’을 꿈꾸다가 남들에게는 뭔가 하나 부족해 보이는 나만의 ‘완소남’에게 빠져버린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이 공연을 추천할 만하다. 사랑에 빠져 발버둥치는 ‘선애’의 모습에 공감하며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잊고 있던 달콤쌉쌀한 사랑의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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