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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픈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 될 것” ‘칸타타 금강’ 이현관 작곡가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 칸타타로 돌아와

‘칸타타 금강’은 시인 신동엽이 동학혁명을 소재로 써내려간 서사시 ‘금강’을 칸타타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1994년 故문호근 연출가의 음악극으로 초연된 이래 2004년 재공연, 2005년 평양 봉화예술극장의 무대에 올랐다. 올해 공연은 기존의 대사와 연기가 강조된 음악극 형식을 벗고 줄거리를 갖는 성악곡을 의미하는 ‘칸타타’ 형식으로 돌아온다.

이현관 작곡가는 ‘칸타타 금강’의 초연부터 함께해 왔다. 1994년 여러 명의 작곡가들과 함께 이 작품에 참여해 음악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했다. 재공연에서 온전히 그의 손에 맡겨진 ‘금강’의 음악들은 한층 통일성을 갖고 무대에 오르게 됐다. 그리고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르는 ‘금강’은 ‘칸타타’라는 대중에게 다소 생소한 형식으로 다시 돌아온다. ‘칸타타’라는 형식으로 인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금강’이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게 될지 이현관 작곡가에게 물었다.

- ‘금강’이 ‘칸타타’라는 형식으로 무대에 오르게 됐다. ‘칸타타’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해준다면?

개신교 교회를 다니시는 분은 알거다. 부활절, 크리스마스 때 많이 들을 수 있는 노래 공연의 한 형식이다. 일정한 주제가 있고, 연관된 주제를 스토리텔링하는 노래다. 오페라나 뮤지컬과도 비슷한데, 이 장르들은 연기가 들어간다. ‘칸타타’의 경우 대사가 없다. 대사처럼 노래하는 것을 ‘레치타티브’라고 하는데 이런 기법이 사용된다.

- 1994년 초연부터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초연은 1994년, 그러니까 18년 전에 가극으로 세종문화회관의 무대에 올랐다. 당시에는 여섯 명 정도의 작곡가가 함께 공동작업을 했었다. 그때가 동학기념 100주년이어서 맞추어 공연을 하게 됐다. 이후 10년 만인 2004년에 재공연의 무대에 올랐고, 2005년에 북한문화교류 차원에서 평양을 찾았다. 초연에서 미진한 것을 고쳐서 갔다. 이때 다른 곡들을 모두 내가 쓰게 되면서 음악적 통일성을 갖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극 형식이었다.

올해는 제작자와 얘기를 주고받다가 그동안 뮤지컬 형식으로 했던 작품을 칸타타로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의기투합하게 됐다. 연기 대사가 빠지고, 음악으로 대체됐다. 이 작품의 음악은 대중가요 스타일이었다. 올해는 그런 음악을 클래식 연주자들이 연주했을 때 어떻게 들릴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번에는 클래식 쪽으로 가깝게 곡을 많이 수정했다. 대본도 바뀌어서 전면적인 개작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 작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었나.

아주 옛날 얘기인데.(웃음) 유신에서부터 5공 때까지 사회 운동이 굉장히 활발했다. 당시 민중가요가 유행했는데, 그 모태가 되는 팀이 ‘새벽’이었다. 그곳 회원으로 있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하게 됐다. ‘금강’ 공연은 우리나라의 진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동학혁명’을 재조명해보고 싶다는 움직임이 모여진 것이었다. 당시 민중음악, 클래식 등의 장르에서 진보음악계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했다. 부지런하게 작곡을 해서인지 음악감독 자리까지 하게 됐던 것 같다.

- 굉장히 큰 작업이었던 것 같다.

1994년은 창작뮤지컬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뮤지컬 산업의 힘이 많이 커졌지만, 당시는 창작뮤지컬뿐 아니라 뮤지컬 자체가 형성이 안 되어 있던 시기였다. 창작뮤지컬을 대형으로 세종에서 올린다 했을 때 커다란 화제였다.

- 작곡할 때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음악적인 통일성에 가장 중점을 뒀다. 이를테면, 전체 음악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모티브, 음악적 주제를 잡으려고 했다. 그게 바로 ‘녹두밭에 가지 마라’는 ‘새야새야’ 민요다.  이 노래에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음이 딱 ‘미 라 시’ 세 가지로만 구성돼 있다. 세상에서 제일 단순한 멜로디일지도 모르겠다.

‘새야새야’ 속의 공백은 동양화의 여백, 시가 갖고 있는 함축성, 한국 춤의 절제돼 있는 공백을 보여준다. 서양 음악 관점에서는 빈약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공백은 비어있지만 가득 차 있다. 그 자체로 부족함이 없다. 이런 음악의 힘을 잡아내고, 나의 음악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이번 공연에서 절반 이상이 ‘새야새야’를 주제로 곡을 만들었다.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변화하고 발전되는 과정을 담으려고 했다.

- ‘칸타타’라는 음악적 형식을 사용하다 보니 음악에도 많은 공을 들였지 않을까 싶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창작 과정 자체가 가장 어려웠다. 이야기를 음악화한다는 점에서 ‘레치타티브’가 아주 중요했다. 한국말로는 서창(서사)이라고 하더라. 작품은 인물들의 과거사, 배경, 스토리의 전개를 가사로 만들어서 음악으로 풀어낸다. ‘레치타티브’로 풀어내는 것이 음악적으로 참 힘든 작업이다. 서양 오페라는 ‘레치타티브’로 만들기 쉽다. 이들의 언어는 장단이 있기 때문에 음악적인 변형을 거치면 바로 ‘레치타티브’가 된다. 한국어는 장단이나 고조가 없는 편이어서 ‘레치타티브’로 풀어내기가 어렵다. 오페라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색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음악 어법을 찾아내는 게 많은 작곡가들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은 약간의 시도를 해본 것이다.

- ‘칸타타 금강’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 같은가.

우선 이야기다. ‘동학혁명’은 역사적으로 패배한 혁명이고 그 피해가 너무 컸다.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도 셀 수 없다. 마지막 우금치 전투에서는 일본인 군대가 한국군을 지휘했다. 부끄러운 역사다. 일본군은 기관층으로 퍼붓고, 동학군은 언덕을 올랐다. 사실 상상을 해보면 참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지 않나.

뮤지컬 ‘명성황후’ 같은 작품이 히트하긴 했지만 우리 민족의 큰 역사가 다뤄지는 일들이 그동안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동학혁명’은 당시 커다란 사회적 사건이었고,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다들 알고는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동학혁명’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비중 있게 다뤄진 적이 없다. 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 충격으로 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 이 작품의 매력이자 흡인력이 강한 부문이다.

-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안하게 보셨으면 한다. ‘칸타타’라는 장르가 생소해서 어렵지 않을까 지레짐작을 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가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또한, 클래식적인 면이 있지만 요즘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내용에 푹 빠져서 지금의 우리 상황은 어떤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이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 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발판으로 딛고 다시 새롭게 일어서야 하는데, 최근에 언론이 탄압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가 잘 정리하고 있는지 안타까움이 생기곤 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공연을 통해 자극되고, 이런 아픈 역사를 지나온 우리나라는 지금 얼마나 변화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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