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랄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연극 ‘양철지붕’ 류주연 연출의 말이다. 거침없이 담담한 그녀 식의 진솔한 인터뷰는 연극 ‘양철지붕’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싶었다. 공사장 함바집에서 펼쳐지는 리얼리즘 연극 ‘양철지붕’은 현대사회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낱낱이 고발하는 작품이다. 11월 1일부터 시작된 연극 ‘양철지붕’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류주연 연출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 ‘양철지붕’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양철’이라는 사물은 뜨거울 때는 뜨겁고, 추울 때는 춥다. 집안을 보호해야 할 지붕이 양철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보라. 추위와 더위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꼴의 집일 것이다. 그 허술한 집, 집으로서의 구실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하는 양철지붕의 모습이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양철지붕 속에 있는 극단적이고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싶었다. 결국, 양철지붕의 특징을 통해 폭력의 악순환이라는 주제를 보여주고자 했다.
 

- 주인공들은 어떤 인물인가?

대표적인 인물로 유현숙과 구광모가 등장한다. 유현숙은 여자로 사회의 약자를 대변한다. 그는 폭력에 노출된 상황이다. 그렇다고 유현숙이 끝까지 그런 부당함을 참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는 나중에 폭력으로 복수를 꾀하는 인물이다. 구광모는 폭력 자체를 상징한다. 이외에도 거친 부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내들 중심의 막노동자들은 여자들에게 성희롱 언어들을 내뱉는다. 

- 연출가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2개의 장면이 있는데 모두 대사가 없는 장면이다. 하나는 개고기를 먹는 장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노동자들이 비 오는 날 하염없이 단장님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개고기를 먹는 장면은 남성들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비 오는 날의 장면은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어 공을 치는 모습을 그렸다.   

- 연극 ‘양철지붕’에는 어떤 무대적 특징이 있나.

소품을 사용해 ‘함바집’의 리얼리즘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무대 같은 경우에는 양철지붕의 색감과 질감을 사용해 투박하고 낡고 허술한 느낌을 그대로 드러냈다. 마지막 장면에는 양철지붕이 붉게 타오르는 효과를 넣었다. 사실 집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은 아니다. 이를 통해서 이 세상의 낯선 일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일상을 살던 공간이 전혀 일상처럼 보이게 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정말 낯선 공간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 소품과 무대에 최대한의 리얼리즘을 살리다가 마지막 장면에 비현실적인 장치를 넣은 것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별이 보이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한다. 무대 연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무대 장치로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상을 보여주는 작업이 먼저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 뒤에 일상을 변형시켰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 연극 ‘양철지붕’으로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나?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기보다는 ‘현실이 이렇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희망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 위에서 설계해야 한다. 그런 작업이 없이 만들어진 희망은 잘못되고 엉뚱한 희망이 될 수 있다. 일단은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우리 작품이다. 연극 ‘양철지붕’은 희망이랄 것도 없고 찜찜하고 그렇다. 그런 찜찜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요즘 현실에는 별로 없다고 본다.

- 최근 대학로 공연의 흐름에 관한 류주연 연출가의 생각을 듣고 싶다.

최근 대학로 공연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오락 위주의 작품이 많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잠시나마 위로를 주는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피로를 풀어주는 코미디극들도 그 나름의 생리가 있다고 본다.

- 최근 대학로 공연의 다양성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는가?

양적으로 공연이 다양해지는 것 자체가 좋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다양해지면 그중에서 질적으로 괜찮은 작품도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두려워해야 할 점은 너무 비슷비슷한 류의 작품만 올라가는 일이다. 관객들이 한쪽의 레퍼토리만 접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학로 공연에 다양한 시도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배세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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