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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의 문화인4]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아트컴퍼니 나누리 박진희 대표

박진희는 ‘일복’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다. 7살 때 무용을 시작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무용학원 강사로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놓지 않은 무용의 길은 그녀를 하남시 예비사회적기업 아트컴퍼니 나누리의 대표이사로 자리하게 했다. 박진희는 그와 동시에 하남문화예술회관의 자문위원으로, 하남시 학교운영위원회의 사무국장으로, 하남시 전통무용협회 회장으로, 한 대학의 뮤지컬학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특별시 ‘한국관광협회 관광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진희를 수식하는 다양한 타이틀 속에서 그녀는 수많은 ‘일’을 도맡아 지금을 일궈냈다. 이제는 아트컴퍼니 나누리의 대표로서 주력하고 싶다는 박진희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트컴퍼니 나누리, 따뜻한 기업”

박진희는 1998년 하남에서 무용학원을 개관해 지금까지 무용인으로서 살아왔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다, 지난해부터 대표이사직을 맡게 된 아트컴퍼니 나누리를 올해 ‘예비사회적기업’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예비사회적기업’은 노동부와 도 지원금을 받으며 자생할 수 있는 힘을 키워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을 말한다. 박진희 대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문화예술 쪽이다 보니 작품을 제작해 사회의 여러 곳에서 함께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에 대해 따뜻한 기업이라고들 하시더라(웃음)”고 말했다.

‘아트컴퍼니 나누리’는 공연 기획, 아카데미 운영, 성인 단원과 아이들로 구성된 예술단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에는 다섯 살 아이부터 고연령대의 노인까지 다채로운 연령대가 춤을 배우러 온다. 한국무용, 발레, 현대, 재즈, 방송댄스, 밸리댄스, 댄스스포츠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친다. 공연 기획 쪽으로는 ‘교육’과 ‘문화예술’을 접목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특별시 ‘한국관광협회 관광홍보대사’로 위촉돼 한국을 알리는 활동도 하고 있다. 국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인 단체에서 박진희를 추천한 것이었다. “태권도 협회나 다른 곳과 연계해서 다른 지역,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의 콘텐츠를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어려움은 없는지 묻자 그녀는 “예술단체가 기업 경영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는 스스로가 좋아서 했던 일이라면, 이제부터는 기업이라 내가 좋다고 다 되는 게 아니더라. 최근에는 예술가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는 과도기에 있다. 예술가로서의 성향을 줄이고 사업가의 마인드를 가지는 것에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고 전했다.

‘차곡차곡 쌓아온 하남과의 인연’

그녀의 고향은 하남이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박진희는 개발이 한창이었던 하남으로 이사를 왔다. 건축 관련 업종을 하시던 부모님을 따라온 것이었다. 하남에서 거주하며 서울로 학교를 다니던 박진희는 스물둘,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학원을 오픈했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힘든 점도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은 안되는 일이 있으면 ‘그래’ 그러고 마는데, 예전에는 작은 일에 부딪혀도 울고 그랬다. 지금도 어딜 가나 젊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젊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려고 하셔서 도움이 되는 점도 많다”

박진희가 하남에서 공연 제작 관련 일을 하게 된 것은 결혼 탓이 크다. 하남이 고향인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박진희도 자연스럽게 하남에 정착하게 됐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그녀는 “엄마가 무용하는데 아이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하고 생각했다. 박진희는 “무용이 사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장르이지 않나. 그러다가 전래 동화를 무용극으로 풀어가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이 참 보람되더라. 어머님들도 굉장히 좋아하고,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책을 사달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연결이 되니 성교육, 학교 폭력 등을 소재로 한 댄스컬 등의 작품을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진희를 한 단체의 대표로서 단단하게 만든 것은 지난날 경험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겪어온 사회와 수없이 무너지고 부딪혔던 경험은 그녀를 여기까지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녀는 “사실 기획일이 정말 힘들다. 이상하게 하늘이 날 강하게 키우는지 공연 제작 일을 하면서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겪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아닌 것들을 정리하면서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공연을 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전했다.

하남의 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하남 지역에서 문화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떨까. 오랫동안 살아왔던 하남이기에 그녀는 더욱 조심스럽게 하남의 현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남은 지역이 좁다.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도 한정돼 있다. 정해진 것에서 나눠줘야 하는데 지원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다. 더욱이 지역이 좁다 보니 서로 경쟁 아닌 경쟁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점들이 아쉬울 때가 많다. 하남에서 98년부터 제자를 양성했다. 문제아도 있었는데 그런 친구들이 대학도 가고, 강사도 되고, 결혼해서 사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왜 우리도 힘들 때 졸업한 학교를 가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나. 나는 이곳이 그 친구들에게 그런 공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남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는 하남 소속 예술인으로서 하남을 외부에 알리는 일을 더 하고 싶다”

박진희는 현재도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학교와 연계해 교육과 문화예술을 결합한 콘텐츠로 전국투어 공연을 다닐 예정이다. 아트컴퍼니 나누리의 레퍼토리로는 성교육 문제를 다룬 댄스컬 ‘소중한 선물’과 학교 폭력을 다룬 ‘골든 데이지’가 있다.

“문화예술회관이 생기며 점점 정착돼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그녀는 하남 문화예술의 발전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지원’을 꼽았다. 제대로 된 공연을 제작하기 위한 지원 시스템의 부재가 아쉽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또한, “지금은 하남문화예술회관이 모든 행사를 포괄하고 있다”고 운을 뗀 그녀는 “학생들 축제부터 유치원생들의 학예 발표까지 모두 문화예술회관이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무대가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보기만 했던 무대를 직접 서보게 하는 경험도 좋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하남 문화예술의 질이 낮아 보일 수도 있다. 작은 소극장이라도 하나 있어서 그런 시스템을 분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예술회관이 생기기 전에는 하남의 예술인들이 나가서 공연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연을 많이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공연을 자주 하다 보니 수준이나 작품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하남의 문화예술인들이 더 활발하게 활동하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지원’이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그녀가 이뤄갈 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었다. 박진희는 “어릴 때 무용하면서 장래희망을 그리라고 하면 건물을 하나 그렸다”며 웃었다. “꿈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다. 학교 사업이 꿈이다. ‘예비사회적기업’을 받을 때도 학교를 운영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앞으로는 무용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뮤지컬이나 다양한 분야를 병행할 것이다. 조금씩 쌓아가려고 한다. 요즘은 못 먹고 사는 아이들은 거의 없지 않나. 문화예술을 활용한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내년에 순회공연으로 학교를 찾는 사업으로 시작해 보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의미 있는 사업을 하고 싶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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