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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사랑과 복수로 얽힌 그녀들, 뮤지컬 배우 신영숙·최현주

어두운 핏빛의 뜨거운 와인과 생크림을 담뿍 올린 핫초콜릿.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뮤지컬 배우 신영숙과 최현주. 그녀들은 무의식중에도 캐릭터에 젖어 있는 것일까? 자신들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음료를 앞에 놓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현재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마담 드파르지(신영숙)와 사랑으로 모두를 끌어안는 루시(최현주) 역으로 열연 중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는 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 18세기 프랑스 혁명기, 런던과 파리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한 남자 ‘시드니 칼튼’의 순애보를 그리고 있다. 사건의 중심에는 두 여인이 있다. 따스한 심성으로 염세주의자 시드니를 변화시키는 루시, 왜곡된 복수심으로 의도치 않게 시드니를 단두대로 이끄는 마담 드파르지가 그들이다.

“제가 해석한 마담 드파르지는 가족의 복수가 인생의 전부인 여자에요. 복수를 위해서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과 아픔을 나누지도 않아요. 안으로 삭이고 참고 흔들리지 않죠. 그렇게 억누르고 인내하며 살다가 복수의 순간에 모든 것을 폭발시켜요. 그렇지만 마지막은 너무나 허무하죠. 어떻게 보면 프랑스 혁명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참았던 울분이 폭발해서 세상을 다 뒤엎어 버리지만 지나치게 폭주해서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니까요. 악역 같지만 사실 너무 가여운 여자죠” (신영숙)

“루시는 천성이 따뜻한데다 기억을 잃은 아버지를 돌보느라 더 긍정적으로 행동해요. 아빠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더 애교도 부리고. 그런 와중에 찰스를 만나게 돼서 더 밝아지는 거죠. 하트 뽕뽕!! 온 세상이 핑크빛이 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제가 연기하는 루시는 정말 밝아요. 또 17년 동안 부모님 없이 지냈기 때문에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누구든 가족이 되고 싶다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죠. 칼튼은 혈연도, 부부도 아니지만 그가 순수한 사람인 걸 알기 때문에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지키고 싶어 해요.” (최현주)

‘두도시 이야기’는 국내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연예인 한명 없이 내로라 하는 실력파 배우로 채워진 캐스팅으로 뮤지컬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다. 좋은 배우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의 힘이 크다고. 신영숙과 최현주도 예외가 아니어서 음악에 꽂혀(?) 출연을 결심했다고 입을 모았다. 가창력으로 손꼽히는 그들이지만 아름다운 만큼이나 어려운 노래 때문에 연습 과정에서 애를 먹었다. 이들의 솔로곡은 단 한 곡, 그러나 그 한 곡에 복잡다단한 인물의 감정을 녹여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루시 노래가 굉장히 음역대가 넓은 편이에요. 물론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 노래에 비하면 좁지만요. 크리스틴 노래는 운 좋게 저랑 잘 맞았어요. 청아하고 곱게만 부르면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는데, 루시의 노래는 부르기가 힘들더라고요. 남편 찰스가 사형 당하게 되는 걸 알게 된 후 대단한 솔로곡(Without a word)을 부르잖아요. 가족이 세상의 전부인 여자가 그걸 잃었을 때 얼마나 감정적으로 무너지겠어요. 루시가 그리 똑똑한 여자도 아니고. 아이를 생각하며 강해져야지 마음을 다잡다가도 찰스를 생각하면 또 무너지고.. 그런 감정이 노래 한 곡에 다 담겨 있어요. 눈물 나면 말하기도 힘든데 감정을 조절하면서 노래까지 부르려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최현주)

“연습 때 현주 노래를 들으며 만날 울었어요. 루시 노래에 마담 드파르지가 눈물을 흘린다니까요. (웃음) 저도 마찬가지로 감정과 가창을 동시에 조율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드파르지의 노래(Out of sight, Out of mind)는 음역대도 넓거니와 한에 맺힌 소리를 계속 내질러야 하는데, 숨을 쉴 데가 없어요. 노래 한 곡에 이렇게 진이 빠져보기는 처음이에요. 요즘 오리고기를 싸가지고 다니면서 체력을 비축하고 있어요. (웃음) 근데 단순히 음역대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참 힘들어요. 드파르지를 하면서 느끼는 게 정말 사람이 용서하고 살아야겠구나. 복수, 분노 이런 에너지를 담고 있으려니 몸이 너무 힘들어요. 용서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인 것 같아요. (웃음)” (신영숙)

힘든 과정을 거쳐 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던 프리뷰 첫 날. 두 사람은 객석에서 작품을 모니터하고 벅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단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여운과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고. 출연작에 대한 예의성 멘트가 아닌 작품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타이틀롤인 시드니 칼튼 역의 류정한·윤형렬, 찰스 다네이 역의 카이·전동석, 각자의 더블인 이정화, 임혜영에 대한 칭찬에도 아낌이 없다. 가장 좋아하는 신을 꼽기도 힘들다. 워낙 명장면이 많기 때문이란다.

“이정화 선배님은 전설적인 여배우시고, 존경하는 선배님이세요. 자기 관리, 무대에서의 엄청난 파워... 모든 것이 닮고 싶은 부분이죠. 더블을 하게 돼서 정말 영광이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류정한 선배는 이 세계에서 워낙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주신 뛰어난 선배시죠. 매 작품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이번에는 진짜 맞춤옷을 입었다는 평가를 받고 계세요. 처음 작품을 같이 하는데 무대에서 류정한의 존재가 어떤 건지 제대로 느끼고 있어요.(웃음) 형렬군의 시드니는 너무 담백하고 깨끗해서 캐릭터에 그냥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어요. 좋아하는 신은 너무 많은데... 시드니가 처음 사랑을 느낄 때 뒤에 별 조명이 쫙 들어오면서 ‘뭐지? 하늘에 별에 있네’ 할 때요. 그런 감성을 되게 좋아해요. (웃음)” (신영숙)

“동석이는 너무 귀여워요. (웃음) 같이 연기할 때면 정말 사랑에 빠져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게 느껴지는데 그게 참 귀여워요. 카이는 결혼 후 아빠로서의 모습, 남편으로서의 모습이 좋아요. 감정적으로 의지가 되고요. 혜영이는 일단 너무 예뻐요. 남자나 여자나 예쁜 게 좋잖아요. 또 연습할 때 보면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해요. 끊임없이 사고를 하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좀 부족했나보다’ 하는 생각도 하고 그랬어요. 명장면을 꼽자면... 시드니가 애기 루시를 재우면서 자장가를 불러주는데 그 노래가 다른 아이의 장례식으로 연결되는 장면. 그 신의 연출과 노래가 너무 좋았어요” (최현주)


두 사람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같은 무대에 섰다. 작품 내에선 대척점에 서 있지만 무대 뒤에선 같은 대기실을 쓰는 룸메이트다. 성악을 전공했고 원캐스팅도 어렵지 않게 소화하는 강철 체력을 지녔으며 무엇보다 선한 품성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대 위와 아래의 언니는 완전 딴 사람 같아요. 늘 굉장히 밝은 에너지를 갖고 계세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하고 한결 같아요. 사실 언니가 진짜 루시 같은 사람이에요. 천성적으로 에너지를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무대 위에선 복수의 화신이 되어 카리스마를 막 뿜어내는데 진짜 신기해요.” (최현주)

“현주가 적역을 맡았어요. 따뜻하고 긍정적이고 맑아요. 루시가 시드니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걸 보면 어장관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웃음) 현주가 하니까 그렇게 보이지 않죠. 관객도 그 따뜻함을 느끼는 거예요. 또 매사에 진중하고 차분하고 여유가 있어요. 저한테 없는 부분이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영숙)

 

배우는 ‘배우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완성해 나간다. 이 믿음직한 두 여배우 역시 ‘두도시 이야기’를 통해 얻은 것이 적지 않다.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했던 작품 중에 대사가 제일 많아요. 처음엔 부담이 많았어요. 정한 오빠나 영숙 언니가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너와 잘 어울리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하라고요. 욕심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풀어가니 두려웠던 게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전작(닥터 지바고)에서 외사랑만 하다가 한풀이가 되고 있어요. (웃음) 두 남자한테 한없는 사랑을 받으니까. 아, 그리고 제가 이렇게 애교를 부릴 수 있는지 몰랐어요. 내 안의 애교를 발견했달까? (웃음) 이제 대상만 찾으면 될 것 같아요.” (최현주)

“전작(모차르트!)의 남작 부인과는 완전히 다른 역이죠. 저는 비교적 다양한 역할들을 해 온 편이에요. 배우로서 의미 있고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담 드파르지는 그 중에서도 힘든 캐릭터였어요. 분노의 감정으로 연기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는데 그럴수록 힘을 풀어야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은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부분이에요. 나는 뜨겁게 연기하지만 관객은 서늘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자칫 감정과잉으로 보이지 않도록 감정과 육체적 긴장 상태를 조절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신영숙)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 : 10월 7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조수현(공연칼럼니스트)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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