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무거울 수 있는 ‘승려’라는 종교적 소재가 ‘즐거움’이란 고운 색을 입고 무대 위에 피었다. 뮤지컬 ‘쌍화별곡’은 신라 말기 ‘불교의 꽃’을 피운 두 명의 승려, 원효와 의상 이야기를 다룬다.

뮤지컬 ‘쌍화별곡’은 뮤지컬 ‘모차르트!’, ‘뷰티풀 게임’ 등의 안무가로 이름을 알린 이란영의 첫 연출작이다. 그녀는 제작 기간이 짧은 20억 규모의 대형 창작뮤지컬을 첫 연출작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배울 것이 많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란영이 공부하듯 파고든 뮤지컬 ‘쌍화별곡’은 기대치보다 훨씬 더 완성도 있는 모습으로 관객을 만났다. 작품은 ‘원효’와 ‘의상’이라는 ‘종교적’ 소재가 주는 편견을 벗고, 인간사 이곳저곳에 핀 ‘희로애락’을 담는 데 더욱 주력한다. 원효가 파계하고 군중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불렀다는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一道出生死, 모든 일에 거리낄 것이 없어야 생사의 번뇌에서 벗어난다)라는 ‘무애가’의 가사처럼 뮤지컬은 이들의 슬픔과 고통, 고뇌를 드러내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작품은 의상이 천재 승려 원효에 품은 질투와 애정, 두 승려의 우정,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삶과 죽음 등 삶의 어디든 도사리고 있는 일반적인 감정들을 폭넓게 담아낸다.

이번 작품에 대해 이란영은 “뮤지컬 ‘쌍화별곡’은 승려 원효와 의상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우리 작품의 인간들은 좋은 쪽으로 일을 해결해 나간다. 설상 질투하고 미워하더라도 죽이거나 해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반성하고 승화시킨다”고 말했다.

뮤지컬 ‘쌍화별곡’은 고개 하나를 두고 먼 산을 뒤덮은 들꽃 무리를 발견한 것처럼 전체적인 작품의 규모, 음악, 조명, 안무 등 다양한 면에서 고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각 장면들은 3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제작된 작품임에도 꽤 단단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안무와 음악, 조명, 배우가 한데 조화를 이룬 ‘일체유심조’와 같은 장면은 여러 요소가 합일을 이뤄 넘실대는 높고 검은 파도처럼 관객을 압도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미처 꽃이 다 피지 못한 허전한 구석도 보인다. 작품은 각 사건이 빠른 무대전환과 함께 쉴 틈 없이 펼쳐진다. 가볍고 빠른 상황 전개는 관객의 집중도는 높였지만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못해 깊이를 느끼기에는 아쉽다. 또한,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원효’가 가볍게 묘사돼 ‘원효와 의상의 갈등 관계’, ‘진리의 깨달음’,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등 주요 사건의 임팩트가 약해진 점도 아쉽다.

뮤지컬 ‘쌍화별곡’은 음악과 무대와 잘 어우러지는 안무가 일품이다. 특히, 안무와 음악의 호흡은 잘 갈고 닦은 그릇처럼 반질반질한 윤이 난다. 원효가 ‘무애가’를 부르는 장면은 노래와 안무 모두 쉽게 따라할 수 있으면서 중독성 있게 만들어져 흥을 돋운다. 마지막 커튼콜은 다함께 일어서 어깨춤을 들썩이는 옛 마을의 잔치를 보는 것처럼 신명나고 정겹다.
 

무대는 부처를 모시는 법당의 꽃살문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커다란 벽체를 세운 회전무대를 사용한다. 두 개의 회전무대는 서로 같거나 다른 각도로 움직이며 궁전, 설법 장소, 왕의 침실 등 다양한 공간적 장소를 만들었다. 의상이 원효에 대한 질투로 분노하는 장면에는 두 회전 무대가 양쪽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의상의 번뇌를 상징하는 감정적 공간으로도 등장했다.

이번 공연은 뮤지컬 ‘피맛골 연가’, ‘형제는 용감했다’ 등에서 한국적인 감성을 담아내며 호평받았던 장소영이 참여했다. 장소영은 특유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한국적인 리듬을 가미해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음악을 선보였다. 복작복작 어깨살 부딪히며 춤추는 ‘무애가’를 비롯해 독창과 앙상블이 잘 어우러진 웅장한 ‘일체유심조’, 떠나간 사랑을 그리는 요석공주의 서글픈 독창 ‘물에 비친 달’ 등은 오랫동안 귓가를 맴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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