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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의 문화인3] “죽을 때까지 춤추는 게 꿈” 한국무용인 김홍주

 

한국무용인 김홍주는 하남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역의 예술인이다. 중학교 때 김홍주의 신체조건을 유심해 본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한 후 서울예술단을 비롯해 국극단체에 몸 담았다. 무용과 함께한 세월만 약 20년이다. 오랜 시간 단체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문화예술을 전한 그는 고향이었던 하남으로 돌아와 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한 성실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나이 지긋한 어머님들과 함께 한국무용 강습을 막 끝낸 그와 함께 ‘하남의 문화인’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다

김홍주는 하남이 고향이다. 부모님 때부터 고향이었던 하남이었기에 그가 하남에 갖는 애착도 그만큼 크다. 그는 처음 하남에서 활동할 당시 문화적으로 소외당해 있던 지역의 문화발전을 꿈꿨다. ‘시 단체’를 만들겠다는 큰 포부와 함께 하남으로 돌아왔지만 일은 녹록치 않았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단체에 생활할 때에도 느낀 적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랜 단체 생활에서 터득한 노하우로 ‘단체 일’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무용단에 오래 생활해서 그런지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 단체 일이더라고요. 처음엔 ‘시 단체’ 만들기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겹치지 않는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죠. 주변에 ‘한국춤교육연구회’라고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춤 연구를 10년 넘게 한 단체가 있어요. 그 곳에서 만들어진 교육 자료를 하남시를 위해서 한 번 펼쳐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노인복지회관, 농협, 동사무소 등에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국무용 수업이예요. 지금은 인기가 많아져서 강좌가 계속 늘고 있어요.(웃음)”

맡는 수업이 늘어날수록 김홍주의 생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자신을 위한 채찍질은 멈추지 않고 있다. 남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자신의 실력이 줄지 않게 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꾸준히 레슨을 받는 것이다. 김홍주는 “비슷한 안무를 가르치다 보면 기계적으로 가르칠 때가 많아요. 저한테는 정말 마이너스인거죠. 그래서 이제는 제가 배웠던 것들을 어머님들과 함께 작업해서 발표를 할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레슨을 받고요. 어머님들과는 무용극도 만들고, 공연도 해보려고 해요. 어른들은 자발적으로 하시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하세요. 지금은 저 분들과 함께 예술혼을 펼치는 입장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무용 하고 싶다”

김홍주의 ‘무용 사랑’은 특별하다. 힘든 기억보다 좋은 추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무용을 할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저는 주변 사람에게도 아이에게 예체능을 가르치라고 해요. ‘무용해서 나중에 어쩌려고’ 말하기도 하는데, 저는 사실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잘하는 소수만 엘리트로 크잖아요. 저는 제가 공부하는 사람으로 자랐다면 그냥 애 키우는 아줌마였을 것 같아요. 그래도 무용을 배워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연하는 엄마에 대해서 아이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요. 무용하게 도와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요”

유달리 무용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다는 김홍주는 최근 하남에서 활동하면서도 즐거운 일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단체를 이끄는 데 ‘다사다난’하다는 것이다. 단체에서 일하며 가장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묻자 “어머님들이 공연 당일 날 모이셨는데, 한 어머님이 무대의상을 안 갖고 그냥 오신 거예요. 조금 있으면 무대로 나가야 하는데요.(웃음) 깜빡깜빡 하다 보니 그러신 거죠. 그래도 하남시에 다들 계시니까 공연 직전에 무대 의상을 가지러 다녀 오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웃음)”라고 전했다.

하지만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무용 수업의 시작이 지금처럼 순탄치는 않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모인 ‘단체’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첫해는 정말 싸움을 많이 하셨어요.(웃음) 어른이 될수록 독선적이거나 자신만의 생각이 확고해 지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어요. 무용의 가장 장점은 단합이에요.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서로 도움을 줘야 해요. 어른들도 무용하시면서 남의 말도 듣게 되시고, 한 발 양보해서 서로에게 맞춰주기도 하시고요. 그리고 자꾸 예뻐지세요. 예쁜 춤을 추다보니 스스로를 많이 꾸미시는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이 정말 보람되고 재밌어요.(웃음)”

김홍주는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마주하는 현장을 좋아한다. 그가 무용에 느끼는 매력도 바로 ‘더불어 함께하는 것’ 때문이다. 김홍주는 자신이 이렇게 무용 무대를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해 “저는 무용을 하면서 한 번도 외로워 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는 함께하는 동료가 있었고, 커서는 같이 하는 선생님과 동기들이 있었고요. 지금은 제자들이 있잖아요. 함께하는 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창작 작업하고 춤추는 게 꿈이다”

하남시를 기반으로 활발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가 피부로 직접 느끼는 하남문화의 아쉬운 점은 어떤 것일까. 그는 “하남은 아직 자리가 잡혀 있지 않은 도시인 것 같다”며 운을 뗐다. “아직 개발 중이잖아요. 늘 새로운 게 생기고요. 그래서 문화예술에 눈 돌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됐을 때 저희 같은 예술인을 지원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하남시에 대해 무언가 하고 싶어도, 아직까지는 봐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워요”

김홍주는 앞으로 하남에서 ‘하남의 문화 유산’을 이용한 무용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하남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하남의 색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남시의 보물 유산이 참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 하남역사박물관도 짓고 있잖아요. 외부 사람들이 왔을 때 하남의 문화로 지역을 홍보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어요. 재작년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어요. 저도 하남시 살고 있지만 모르고 있었던 게 꽤 되더라고요. 그리고 야외 상설무대 같은 것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현재 색소폰 동호회가 매일 연주를 하고 있는데, 민원 때문에 다리 아래에서 하고 있거든요. 하남시도 꾸준히 녹지대가 설치되니까 아이들도 뛰어놓고 체험하고 공연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김홍주는 “고인 물이 아닌 더 발전하는 무용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죽을 때 까지 춤추고 싶다” 싶다는 그는 현재 하남문화예술회관의 지원 아래 하남의 ‘검단 설화’를 모티브로 한 연희극을 제작하고 있다. 향후 이 작품의 성공을 기반으로 프로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함께하는 공연 프로젝트로 이어갈 예정이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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