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4.20 화 13:02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인터뷰
[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배우 출신 안무가의 녹록지 않은 첫 연출, 뮤지컬 '쌍화별곡'

뮤지컬 ‘쌍화별곡’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한 작품이다. 연초 뮤지컬 라인업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이 뮤지컬의 제작 기간은 3개월 남짓. 준비 기간이 충분치 않은 작품치고 만듦새가 훌륭한 작품은 드문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가벼이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정선아, 김다현, 김호영 등 뮤지컬 스타 캐스팅도 그렇지만 장소영(음악), 구윤영(조명), 권도경(음향), 채송화(분장), 한정임(의상) 등 손꼽히는 실력파들로 구성된 스태프가 작품의 퀄리티에 관심을 갖게 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란영 연출이다. 10년 넘게 주연급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 안무가로 변신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뷰티풀 게임’, ‘영웅’, ‘모차르트!’, ‘피맛골 연가’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작품에서 드라마틱한 안무를 선보여 왔던 그녀의 연출 데뷔작이라는 점은 개막일에 맞춰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한 첫 번째 이유였다.

쌍화, 두 송이 꽃은 신라시대 대표적 고승인 원효와 의상을 의미한다. 작품은 승려로서의 삶이 아닌 인간적 번뇌에 포커스를 맞춰 관객이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원효는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천재 스님이자 자유로운 영혼이다. 원래 귀족 출신의 화랑이었으나 전쟁터에서 무의미한 죽음에 회의를 느껴 불가에 귀의, 민중 속으로 파고든다. 의상은 원효의 비범함에 매료되어 그를 불교로 이끌지만 원효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에 괴로워하는 입체적 캐릭터. 원효와 사랑에 빠져 그를 파계에 이르게 하는 요석공주는 사랑이 떠난 후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

원효 역의 김다현, 의상 역의 김호영, 요석과 선묘 역의 정선아는 이 작품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여성성 강한 역할들을 연달아 맡아왔던 김다현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원효의 능청스럽고 호쾌한 캐릭터를 잘 살리고 있다. 톡톡 튀는 강렬한 연기와 중성적인 이미지가 강한 김호영은 반듯한 원칙주의자 의상 역으로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쌍화별곡’을 하며 처음으로 창작 뮤지컬의 즐거움을 알았다는 정선아는 1인 2역을 무리 없이 소화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한다.

‘쌍화별곡’은 역사와 종교를 다룬 뮤지컬은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데 주력한 모습이다. 원효와 의상은 승려라기보다는 사상가·철학자에 가깝다. 대사를 최대한 배제한 송스루(song through) 형식과 스피디한 무대 전환, 유려한 음악과 열정적인 안무는 작품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위인을 다룬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 기승전결에 충실한 스토리텔링은 아니다. 인물의 핵심적인 사연을 선택해 나열한 이야기 전개로 인해 대사와 가사를 집중해 듣지 않을 경우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안무가 출신 연출의 작품인 만큼 여느 작품보다 안무에 힘이 실렸다. 도입부부터 커튼콜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배치된 안무가 흥을 돋운다. 특히 2막, 7분여에 걸친 ‘무애가’는 이 작품의 백미다. 이 장면은 실제 원효의 파격적인 포교 방식에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것. 원효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대중과 어울리면서 ‘모든 것에 거리낌 없는 사람만이 생사의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는 그의 사상을 전파했다고 한다. 풍류를 통한 포교 방식이 뮤지컬적 표현 양식과 만나 멋들어진 장면이 연출됐다. 종교색 없이 원효의 사상을 느낄 수 있는 영리한 연출이기도 하다.

“뮤지컬 ‘쌍화별곡’은 자신의 가장 순수한 작품”이라고 밝힌 이란영 연출. 그녀의 말처럼 뮤지컬 ‘쌍화별곡’은 연출가 이란영의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무대관을 엿볼 수 있는 뮤지컬이다.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에너지를 사랑한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뮤지컬, 관객에게 따뜻함과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식 없이 담백하고 힘이 넘치는 무대에 색다른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9월 30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조수현 공연칼럼니스트 lovestage@empal.com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