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기억을 더듬기에도 이제는 희미한 나이. 그때 임효선은 처음 피아노를 만났다. 피아노를 전공한 임효선의 고모가 절대음감으로 노래하는 그녀를 보고 ‘피아노’를 추천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장래 희망은 늘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노가 마냥 좋았던 네 살 꼬마는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 5위, ‘비오티국제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를 석권한 서른둘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그런 그녀가 9월 20일 ‘TIMF앙상블과 함께하는 실내악 시리즈’로 돌아온다. 실내악은 두 명 이상의 연주자가 함께하는 연주를 의미한다. 두 명은 듀오, 세 명은 트리오, 네 명은 쿼르텟, 다섯 명은 퀸텟으로 불린다. 임효선은 “이번 공연은 TIMF앙상블의 현악 4중주와 저, 피아니스트 윤홍천 씨가 한 회씩 맡아 피아노 퀸텟 공연입니다. 1부는 TIMF앙상블이 현대에 작곡된 현악 4중주를 들려줄 예정이고, 2부는 분위기를 바꿔 피아니스트와 함께 브람스, 슈만 피아노 퀸텟을 연주해 낭만파 음악을 들려줄 예정입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실내악 시리즈’인 만큼 ‘실내악’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많은 솔로 활동을 펼쳐온 임효선이지만 현재는 실내악 쪽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실내악을 정말 좋아하고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그녀는 “솔로 활동에 주력했을 때는 홀로 여행하고, 연습하고,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외로움이 있었어요. 실내악은 같이 하는 즐거움이 있죠. 서로 연주하며 윈윈 전략처럼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걸 느껴요. 서로 배우는 점도 많고요. 좋은 연주자일수록 서로의 연주에 반응하고, 음악으로 대화하고 호흡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요. 그게 실내악의 매력 같아요”라고 말했다.

임효선은 이번 연주회에서 2부를 맡아 ‘브람스’의 음악을 연주할 예정이다. “1부에서는 TIMF앙상블이 출연해요. 스트라빈스키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세 개의 소품’, 케빈 폴라스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화이트 맨 슬립스’ 두 곡을 연주합니다. 모두 현대음악으로 관객분들이 쉽게 들어보지 못한 곡일 거예요. 2부는 제가 브람스 피아노 퀸텟을 연주합니다. 브람스 특유의 깊은 음색과 열정, 끊이지 않는 긴 프레이징 등을 맛볼 수 있는 약 40여 분 정도의 대곡(大曲)입니다. 브람스의 실내악 대표곡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임효선은 2007년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 5위로 선정되며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는 1951년부터 시작된 권위 있는 콩쿠르다. 피아노, 작곡, 성악, 바이올린까지 총 네 개 부문이 진행된다. 특히, 피아노 부문은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차이콥스키국제음악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일컬어진다. 국내에서는 1987년 이미주가 6위, 1991년 백혜선이 4위, 1995년 박종화 5위, 2010년 김태형 5위, 2010년 6위로 입상했다.

그녀는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외에도 다양한 경연에서 화려한 입상 경력을 가진 피아니스트다. 국내외 수많은 무대를 섰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중 하나는 역시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 무대가 기억에 남아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쳤었어요. 사실 콩쿠르 때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어요. 리허설 후 연습이 너무 안 된 것 같아 스스로 충격을 받았죠. 본선 전날 새벽 4시까지 연습을 했어요.(웃음) 사실 컨디션 조절을 하려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저녁부터 6~7시간을 정신없이 전 협주곡 모두 꼼꼼히 훑어봤던 기억이 나요”고 말했다.

그녀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비롯해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서 1위와 특별상, 청중상을 휩쓸었고, ‘베토벤 빈 국제 콩쿠르’에서는 입상과 후기 소나타상을 수상했다. 화려한 입상 경력은 그녀의 명성을 더 높여줬지만, 때로는 묵직한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콩쿠르 수상 경력이 화려해질수록 콩쿠르에 대한 도전이 정말 부담됐었어요. 저에 대한 기대감과 관심이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한다는 게 매우 힘들었죠. 콩쿠르는 실력뿐만 아니라 많은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은 고려하지 않고 결과로만 평가되거든요. 지금으로서는 부담이 아니라 좋은 추억과 경험으로 기억되는 경력들이에요. 이제는 콩쿠르가 아니라 다른 면에서 항상 발전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여전히 남부럽지 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그녀에게도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었던 시절은 있었다. “제가 꿈꾸는 것만큼, 제 욕심만큼 실력이 따라주지 않을 때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피아노’가 싫어서 그만두고 싶진 않았어요. 외국 생활을 하면서는 유학생활의 외로움과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안정되지 않은 삶, 멀리 있는 가족 등 그런 이유로 힘들었죠. 하지만, 피아노는 내가 싫어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효선은 바쁜 해외 활동을 펼치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와 경희대학교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기 중에는 한국에서 거주하지만 방학 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바쁜 해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숨돌릴 틈 없는 바쁜 일정이지만 이런 생활은 임효선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다. “지금 저의 삶이 어떻게 보면 제가 정말 원했던 삶이었던 것 같아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의 삶과, 교육자의 삶을 병행하고, 내 나라를 잊지 않으면서도 국제적으로 나아가는 것. 항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 힘들기보단 행복한 것 같아요”

이미 많은 것을 이룬 피아니스트지만 아직 임효선의 발전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 어릴 적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이룬 시기라면, 앞으로는 “더욱더 좋은 선생님이자 피아니스트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안정된 삶에 안주하는 것은 어떨까 잠시 생각했었어요. 그때 느낀 것은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임효선은 죽은 임효선’이라는 것이었어요. 발전이 없을 때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았죠. 아직 교육인으로서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고, 더 많은 공부와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점점 느껴요”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즐김’은 ‘사랑’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다. 임효선은 천생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좋은 선생님이자 피아니스트로 발전하고 싶다”는 그녀의 꿈도 ‘피아노’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교육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임효선의 앞날이 기대되는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