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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의 아껴둔 이야기들, 서윤미 연출가 인터뷰①작품의 다양한 해석, 결말과 반전에 대한 이야기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의 마지막 공연을 닷새 남짓 앞두고 서윤미 연출가를 다시 만났다. 공연이 무대 오르기 전 4월의 인터뷰 현장에서 함께 나눈 약속 때문이었다. 당시 인터뷰 현장에서는 작품의 제작과정과 내용의 숨겨진 뒷이야기들이 일부 언급됐지만 공연이 오르기 전이라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 없었다. 그 아쉬움은 마지막 공연이 오를 때쯤 다시 한 번 인터뷰를 진행하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졌고, 공연은 관심 속에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이 자신만의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만들며 작품을 즐겨주길 바랐다”는 서윤미 연출에게 그간의 인터뷰에서는 공개하지 못했던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마지막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드디어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게 돼 기쁩니다.

공연 전에 약속했으니까요. 저도 이제 편한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뻐요. 특히 이번 공연은 저뿐만 아니라 배우와 스텝들, 작품을 사랑해주신 관객분들의 감성과 상상력,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거든요. 그래서 연출 입장에서 더욱 말하지 못하고 아꼈던 말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역시 작품은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하니까요. 말로 부연설명을 하기보다는 작품을 보신 후의 피드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지난 인터뷰 때 그러셨죠. 작품이 자신의 아픔을 담아 만든 이야기지만 관객들 각각이 자신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관객이 미처 무대를 보기 전에 해석에 영향에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요.

저는 이 작품이 저만의 아픔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우리가 가진 각각의 아픔들이 많이 치유가 됐거든요. 작품의 해석에 답은 없어요. 단지 될 수 있으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들이 자신의 상황을 생각해서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게 물론 있지만 그건 제 생각일 뿐이에요. 여러 가지 생각을 배우들과 나누며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몇 개의 버전을 추렸어요. 주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몇 가지 해석들이 가능하도록 사전에 합의한 거죠.

- 제작진이 합의한, 해석 가능한 몇 가지의 버전들

공연이 오르고, 그야말로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졌는데요. 연출과 배우들이 무대에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메리’에 관해서 합의하신 해석의 버전들을 생각해 본다면요?

첫 번째, 메리가 끝까지 실험을 위해 아이들을 속였다는 해석이 가능해요. 끝까지 아이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행동했던 거죠. 그렇다고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어요. 이 경우 실험만이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이었을 테니까요. 최면은 아이들을 완벽하게 속일 때 성립되니까 메리가 끝까지 속였다고 보는 거죠. 마지막 한스가 찾아갔을 때도 올 게 왔구나 생각하고 로만박사와 짰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일단 발터 형사에 대해서는 수사를 한 사람으로만 생각했어요. 그 또한 나치에 개입됐다고 보는 관객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해석이 가능해요. 하지만 일단 연기할 때 정확한 상황을 가지고서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발터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배우들과 협의했어요. 메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다양하게 가능성을 열어뒀지만요.

두 번째, 메리가 중간에 마음이 바뀐 경우에요. 말 그대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죠. 이 해석은 일반관객들이 가장 좋아할 버전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요. 마지막은 메리 역시 그냥 실험을 위한 희생자였을 경우에요. 메리 역시도 단지 실험을 돕는 자에 불과했다면, 로만박사가 나치였을 경우 메리는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던 것이 될 거고, 나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지켜줄 수 있었던 게 되겠죠. 저희가 메리에 관해 협의한 부분은 여기까지예요.

정말 메리에 관해 해석을 다양하게 해도 극이 성립되네요. 어떻게 해석을 해도 말이 되니까 관객들 사이에서 논쟁이 뜨거웠는지도 모르겠어요.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가능성은 해석에 따라 무한하니까요. 전부를 취할 수는 없고 주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몇 가지 버전들만 취해서 협의하고 극을 만들었어요. 어느 정도 이렇게 해석도 될 수 있고, 저렇게 해석도 될 수 있게요. 관객분들은 내가 생각한 게 정답이 맞을까, 작가도 그렇게 생각한 걸까 궁금하셨겠지만 저는 작가와 다른 생각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주제는 따로 있지만 그 밖의 해석은 각각의 삶에 따라 다양할 수 있어요. 오히려 관객들이 계속 작품을 보면서 같이 발견하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지, 왜(Why)에 관해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왜 기억을 지우지 않고 불행과 동행하기로 한 걸까’의 문제는 단 한 분이라도 더 오랫동안 생각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어요.

초고 단계에서도 설정이 여러 번 바뀌었다고 들었는데요.

초고가 세 번 정도 크게 바뀌었는데요. 헤르만이 안나를 죽였다는 설정도 있었어요. 박사의 시체를 죽이려고 했는데 안나를 죽여서, 실제로 안나는 없는 존재라는 설정이죠. 헤르만이 너무 충격이 커서 박사인지 안나인지도 모르고 찌른 거에요. 하지만 너무 끔찍한 결말 같아서 취하지 않았어요. 그런 설정이야말로 캐릭터를 학대하는 것일 수 있겠다 싶어서요. 메리가 죽지 않았을 경우도 논의 대상이었지만 이것도 제외했어요. 그냥 초고 단계에서 이런 상상을 했을 뿐이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었지만 위에 언급한 것 외에는 생각하지 말자고 협의하고 연습을 시작했어요.

- 막이 내린 후, 네 아이들의 행방에 관한 이야기

아이들이 그 후 어떻게 됐을까의 결말에 대한 해석도 다양한데요. 어떤 결말들이 가능할까요.

마지막에 오르골 위에서 아이들이 서로 마주보며 각자의 길로 가잖아요. 그 후 결말에 대해서도 몇 가지 열어두고 연기했어요. 첫째로, 로만박사가 나치 쪽이었다면 아이들은 바로 죽게 돼요. 이 박사의 연구실을 나가는 동시에요. 스스로 실험을 거부하고 강제종료한 거니까요. 무대는 실험대를 상징하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돌 수밖에 없는 반복적인 실험의 날들을 상징하는데요. 그러면 이 밖을 나가는 순간 아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두 번째 가능성으로 로만박사가 나치가 아니라면 다행히 아이들은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겠죠.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각자의 입양부모 아래서 연기를 하면서 살아간다면요. 하지만 서로 다시 보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역시나 해피엔딩은 아니에요. 

그래도 일단 살아남기만 한다면 인생은 어찌될지 모르는 거예요. 좀 더 오래 살아남아서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에는 실험이 완전히 중단됐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불행한 기억을 안고 길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죠.

만약 로만 박사가 처음부터 나치 쪽이었거나 메리도 모르는 채로 나치에 나중에 매수됐다면 더욱 위험하겠죠. 일단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는 경우는 없어요. 어쨌든 이 아이들은 다시 못 봐요. 위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고요. 회전무대를 나가는 순간 위험에 노출되죠. 하지만 저는 그걸 ‘성숙’이라고 봐요. 위험할 걸 알면서도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택한 거니까요.

‘블랙메리포핀스’는 보고 돌아섰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궁금증들이 생기는 작품 같아요. 그게 어떤 관객에게는 중독이고 새로운 재미였겠지만 일부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처럼, 꼭 풀어야 하는 퍼즐처럼 남겨지기도 했을 거고요.

 

풀고 싶더라도 완벽하게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삶이 아닐까요. 보랏빛 안개라는 말을 한 것도요. 잡을래야 잡을 수 없다는 의미였어요. 그게 제가 생각했을 때 삶이고, 인생인 것 같거든요. 네 아이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요.

 

- 작품의 이야기, 모두 ‘최면’ 속 진술이었다

앞서 말씀하신 결말이 강하늘 배우가 알아챘다던 숨겨진 반전인가요?

아니에요. 이건 결말에 대해 해석 가능한 버전에 대한 이야기였고요. 그건 다른 이야기에요. 사실 그걸 하늘이만 안 건 아니고요. 성우가 글을 쓰고 집필할 때 함께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알고 있었죠. 성우를 제외한 배우들 중에는 제일 먼저 알아챘어요, 초고 딱 나왔을 때요.

맨 처음 재판장에서 ‘고발합니다’부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한스한테 최면을 걸고 있는 거예요. 최면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일부 최면 방법에는 환자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익숙한 장소를 떠올리게 하거든요. 이 아이들은 메리의 편안한 최면방식에 익숙해져 있잖아요. 그래서 ‘메리를 기억해’ 신에서 약도 행복하게 받아먹고요. 편안함을 주기 위해 한스를 앉혀놓고 ‘당신은 지금 재판장에 있습니다...’로 최면을 시작하고 있는 거죠. 한스 변호사에게 가장 익숙한 장소가 재판장이니까요. 메리를 고발하려고 했다가 변호하면서 끝나는 형식도 한스에게 편안한 방식을 따른 거죠. 그러니까 작품 전체가 최면이었던 거예요. 최면에서 자기들이 겪은 이야기들을 진술하는 거죠.

네 아이들 중에서 이번 작품은 한스에 의해 진술되고 있어요. 아마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 불려갔을 거예요. 한 명씩 최면에 들어갔겠죠. 지금은 한스의 최면인 거예요. 그랬을 때 누군가 시리즈물이냐고 질문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건 아니에요. 시리즈물은 이 이야기 다음에 이어지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건데 이건 그냥 또 다른 버전인 거거든요. 내용은 똑같을 거예요. 다음에 다시 올라가면 헤르만 버전이 올라갈 수 있겠죠. 공연이 초연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아서, 이번 초연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동안 한스 버전 외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었어요.

극에서 한스의 버전이라는 상징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무대 위에 테이블이 뒤집혀져 있잖아요. 테이블 뒤집혀진 게 이 아이들의 왜곡된 기억을 나타내요. 그 위에 또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요. 그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가 이야기의 해설자가 누구이냐를 상징해요. 테이블 위 타자기는 한스의 변호사를 상징하기 위해 사용한 거였어요. 헤르만 버전에서는 테이블 위에 조각상이 있을 거구요, 요나스의 테이블 위에는 엄청난 양의 원고뭉치가 있을 거예요. 그렇게 버전들이 있는 거죠. 하지만 관점이 다를 뿐 90% 정도가 똑같기 때문에 관객들은 결국 같은 공연을 보시는 거예요. 다만 해설자에 따라 살짝 다른 거죠.

최면에 들어가고 나오는 장면도 해설자에 따라 다를 수 있겠네요. 그리고 한스만이 겪은 일은 다른 사람의 버전에서는 생략될 수 있겠고요.

맞아요. 헤르만 버전에서 본다면 한스와 메리가 이야기 나누는 그 장면이 없는 거죠. 메리가 한스와 얘기하면서 죽은 것은 한스에게는 엄청난 사실이지만 헤르만은 그 죽음을 듣는 순간이 더 충격일 거예요.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도 직접 보지 않았으니 확신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헤르만에서는 안나와의 장면이 더 강해지겠죠.

헤르만에게 안나는 특히 중요한 존재인데요. 왜 아버지를 죽인 게 요나스인 건지도 궁금했어요.

저는 반드시 요나스가 죽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헤르만이 죽였을 수도 있어요. 어린애들이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정말 죽었는지 어땠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헤르만이 찔렀을 때는 요나스를 위한 것도 있지만 본인의 분노도 있어요. 어리고 순수한 요나스가 좀 더 빨리 행동했을 뿐이죠. 헤르만에게는 오히려 너무나 엄청난 충격이어서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지 몰라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박세은 기자_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컨텐츠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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