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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뮤지컬 ‘풍월주’ 스테디셀러 될까

막이 오르고 객석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자세를 고쳐 앉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고요하기 그지없던 객석. 그러나 극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면서부터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뮤지컬 ‘풍월주’(이재준 연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처럼 진지하게 무대에 집중하던 관객이다. ‘풍월주’는 이미 마니아들의 작품이 되어 있었다.

신인 뮤지컬 창작자를 지원하는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선정작인 ‘풍월주’는 지난해 3월 리딩공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개막 전부터 뮤지컬 마니아들의 기대를 받았던 작품이다. 신라 진성 여왕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팩션물(역사적 사실 혹은 실존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이라는 점은 최근의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었고, 남자기생이라는 소재는 흥미로웠다.

지난 5월 개막 직후 반응은 기대보다는 별로라는 반응이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배우들의 케미스트리(Chemistry)가 밀도를 더해 가면서 작품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극을 거듭해 관람하는 마니아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예정보다 5회 공연이 연장됐다.

신라 시대가 배경이지만 그 외 설정은 대부분 상상이다. 풍월주는 본래 화랑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하지만 뮤지컬 속 풍월주는 남자 기생을 부르는 말이다. 풍월주들은 ‘운루’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지체 높은 부녀자들을 접대하고 위로한다.

‘풍월주(風月主)’, 말 그대로 ‘바람과 달의 주인’이다. 운루의 에이스인 ‘열’은 머물지 않는 바람이자 잡을 수 없는 달빛 같은 남자다.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지만 마음만은 주지 않는다. ‘열’의 마음은 오직 오랜 동무인 ‘사담’에게로 향해 있다. ‘사담’ 역시 마찬가지다.

둘의 관계를 흔한 동성애, 혹은 질퍽한 연애 감정으로만 단정 짓기는 힘들다. 어린 시절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한 둘은 소울메이트 같은 관계다. ‘열’과 ‘사담’을 연기한 성두섭과 김재범은 마치 형제처럼 닮아 있어 더욱 그리 보인다. 붓으로 그린 듯 고운 선을 가진 두 배우는 우정과 사랑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한 결로 연기해 공감을 얻는다.
  

‘열’과 ‘사담’의 사이에 ‘진성 여왕’이 끼어들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진성은 무대의 지배자다. 블랙과 골드로 매치된 그녀의 의상은 역시 같은 배색의 세트와 어우러져 무대가 그녀의 세상임을 암시한다. 진성은 추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는 ‘열’을 갖기 위해 ‘사담’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진성을 연기한 구원영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외롭고 무기력한 여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뮤지컬이지만 대사의 비중이 높아 연극색이 짙은 편이다. ‘내가 아니면 네가 아니면’을 비롯해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있지만 넘버 수가 적어 아쉽다. 3단으로 구성된 무대는 계급사회와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의 관계를 의미한다. 대사는 사극 톤이 배제되었고 의상은 드레스와 수트에 가깝다. 참신한 반면 극의 배경이 신라임을 알고 보는 관객에게 혼란을 주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풍월주’는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소재, 다소 불친절한 연출 등은 대중적인 코드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누군가에게는 확실히 어필할 만한 작품이라는 얘기도 된다. 좀 더 세심한 손길을 거친다면 ‘쓰릴미’,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뒤를 잇는 스테디셀러가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2013년 공연이 예정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풍월주’의 롱런을 조심스레 점쳐본다. 

(8월 2일까지. 대학로 컬처스페이스 엔유. 김재범, 성두섭, 이율, 신성민, 구원영, 최유하 등 출연)

조수현(공연칼럼니스트)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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