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하’라는 배우,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그녀의 필모그라피에 켜켜이 쌓여있는 작품과 캐릭터가 너무나 다양해서다. 그녀는 2006년 뮤지컬 ‘풋루스’로 데뷔한 후 뮤지컬 '잭더리퍼'의 초연인 '살인마잭'에서는 거리의 여인 글로리아 역을 연기했고, 뮤지컬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생각을 해’에서는 노처녀 영회를 연기했다. 최근작인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서는 매혹적인 여인 알로이지아로 변신했다. 최유하가 맡아온 역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문득 그녀의 본래 성격은 어떨지 궁금해질 정도다. 그런 최유하가 뮤지컬 ‘풍월주’의 진성여왕으로 돌아왔다. 여왕과 여자의 경계, 그 사이에 선 ‘최유하’가 표현할 진성은 어떤 모습일지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최유하’가 ‘진성 여왕’이 되기까지

- 뮤지컬 ‘풍월주’의 진성여왕 역할은 어떻게 맡게 되신 거예요?

저는 남자 간의 사랑을 쉽게 다루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특정 다수층을 공략하는 것에 반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도 남자 간의 사랑이야기라서 배제했었어요.(웃음) 전작인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 ‘풍월주’ 리딩 공연을 참여했던 친구가 있어서 작품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를 대입해 본 적은 없었죠.

그러다 진성여왕 역을 제의하는 전화를 받게 됐어요. 그 친구에게 연락했더니 ‘언니, 그건 해야 돼. 역할 정말 매력 있어.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더라고요. 어떤 작품이길래 그러나 하면서 대본을 봤어요. 대구에서 공연했을 땐 데 쉬는 날 노트북으로 보다가 호텔 앞 카페에서 펑펑 울었어요. 제가 생각한 남자 간의 사랑도 아니었고, 특정층을 공략한 장면도 없었어요. 진성도 정말 매력 있었고요. 그래서 하고 싶다고 했죠. 공연 연습하는 첫날, 연출님께서 ‘인간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감정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점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어요. ‘사랑에 대한 것이고, 갖느냐 못 갖느냐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요.

- 최유하 배우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대본이요. 흔한 것들을 모아서 ‘울어라 울어라’하며 만든 작품들이 있잖아요. ‘풍월주’는 제가 시놉시스를 들었을 때 분명히 참신한 작품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읽었을 때 제 가슴에 ‘한 방’이 오는 것들이 있었어요. 사전정보 하나 없이 봤었을 때 저에게 느껴지는 담담한 감정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 리딩 공연이 올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리딩 공연에 대한 여러 말들을 들으셨을 것 같은데, 부담감 같은 건 없으셨는지.

당연히 부담되는 것들이 있었을 거예요. 작품과 인물, 그리고 저에 대한 기대도 있었거든요. 리딩 공연 때의 대본을 읽고, 중간 대본을 읽고, 지금 대본을 읽어봤는데 작품이나 캐릭터에 변화가 있더라고요. 저를 깎아 먹을 수 있는 말이지만 처음부터 ‘비교할 수 없다’ 생각하고 시작했어요.(그녀는 이 말의 진의을 설명하려 무척 애썼다) 세상에서 제가 제일 잘나서가 아니고요. 이 공연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역할을 게으르지 않게 연습해서, 제 것을 갖고 가면 비교나 부담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저는 어떻게 연기해도 ‘최유하’가 묻어 나오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런 부분이 좋은 걸 수도 있고, 나쁜 걸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어쩔 수 없이 제가 갖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 최유하 배우의 필모그라피를 보니 맡은 역할이 참 다양하더라고요.

저는 제 안에 있는 것들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했다면 최악의 조건이었을 거예요. 캐릭터가 있어야 하는 곳이잖아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다행이에요.(웃음) 한국에서는 이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캐스팅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때 제가 청순한 역도 할 수 있고, 팜므파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성격 자체가 이중적이에요. ‘풍월주’ 팀에서는 개구쟁이를 맡고 있어요.(웃음) 언니오빠들이 많아서 그런지 시종일관 떠들고 춤추고 노래해요. 그런데 다른 작품에서 저를 보신 분들은 ‘최유하는 말 없는 애’라고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저는 프로덕션에 따라 많이 바뀌는 편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생활기록부에 보면 어떤 해에는 ‘유하는 정말 까붑니다’ 돼 있고, 다른 해에는 ‘말이 없습니다. 말을 해야 합니다’라고 돼 있고요. 그래도 청순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제 안의 ‘까불이’ 기질 때문에 불편하거나 힘들지는 않아요. 청순한 기질도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있거든요. 그게 저의 필모그라피가 다양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해요. ‘운장’ 역으로 같이 공연하는 (김)대종 오빠는 ‘너 일코 한다’고 해요. ‘일반인 코스프레’한다고요. ‘일코’는 가장 최근에 배운 단어에요. 오빠가 지금 인터뷰하는 저를 봐도 아마 껄껄 웃을 거예요.(웃음)

- ‘풍월주’ 팀 사이가 정말 돈독한 것 같아요.

정말 정말 좋아요.(웃음) 저는 작품을 할 때 항상 진지한 편이고, 열정적으로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의 이런 태도에 누군가가 ‘뭘 그렇게 열심히 해’라고 말하면 굉장히 상처받아요.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있고요. 저는 진지하게 하는 데 ‘그렇게 연기하면 힘이 들어간다’, ‘대충할 때 더 연기가 잘 된다’는 말을 들으면 서운하더라고요. 대충하는 게 아니라 릴렉스해야 하는 거거든요. 가끔 제 생각을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팀은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모두 진지해요.

- 기자간담회 때 보니까 연출님과도 다들 허물없이 지내시는 것 같던데.

우선 연출님이 능력은 있으시되 권위나 허세가 없어요. 그게 제가 연출님을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연출님은 늘 열어놓고 말씀하세요. 이번에도 제가 어떤 오류를 겪은 일이 있었는데 먼저 ‘미안해’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상처 받았어요. 제가 연출님을 미안하게 했다는 것에요. 그런 연출님을 선장으로 삼고 팀원들이 따라가니 팀 자체가 좋은 기운을 받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술자리를 별로 안 좋아해요. 술을 잘 못 마셔서요. 요즘엔 다 가요.(웃음) 술을 못 마실지언정 가서 앉아 있는 게 좋으니까. 그 정도로 제가 사랑하는 팀이죠.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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