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로서 위성신이 걸어온 20년간의 활동을 돌아보면 곧 한국 공연계의 역사와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열악한 창작여건 속에서도 그는 한국창작뮤지컬이 발전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웃으면서도 깨달음이 있는 무대를, 괴로운 일상 속에서도 유쾌함을 찾을 줄 아는 연출가 위성신의 시선은 언제나 날카롭고도 따뜻하다. 좋은 연출가란 “관객에게 기대감을 가지게 하고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연출가”라고 분명히 말하는 그에게 지금까지의 20년, 그리고 현재 꿈꾸는 것들에 대해 물었다.

- 20년 전, 그리고 2012년 지금의 공연계

20년을 돌아봤을 때 개인적으로 소중한 추억이 있는 작품이 있나요.

이번 연극제 라인업에서는 관객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평가받았던 작품이자 터닝포인트라 할 수 있는 ‘늙은 부부 이야기’가 있다. 지방공연도 다니고 흥행에도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돈도 좀 벌었다.(웃음) 그 작품이 또 다른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줬다. 가장 오래된 레퍼토리로는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가 있다. 연극으로 만들어져서 17년째니까 굉장히 오래된 작품이다. 하지만 가장 아끼는 작품이 뭐냐고 묻는다면 안타까운 동시에 아꼈던 작품인 연극 ‘술집’을 꼽고 싶다.

20년 전 연출을 처음 시작할 때 당시 공연계 상황은 어땠나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그때에 비하면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지원 기금도 늘었다. 하지만 창작여건 자체는 많이 변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힘들다. 작품의 수준이 올라간 만큼 배우개런티나 비용들이 상승했고,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관객성향도 변했다. 20년 전 연극 시작했을 때에도 20대 관객이 주류였지만 그때는 진지한 연극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당시에는 연극이 철학적이고 깊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극계에서 진지한 작품들이 사라져갔다. 요즘 관객들은 작품취향이 편식적이다. 아주 대중적이거나 스타마케팅을 하거나 완전 코미디가 아니면 힘들어졌다. 진지한 작품들은 만들어놓고 굉장히 괴로워하고 고전한다. 작품에 생존을 걸고 있는 작가나 연출가, 배우들이 연극적인 진지한 작품을 대하는 것을 어렵고 두려워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다. 옛날에 국내영화보다 헐리우드영화, 홍콩영화를 많이 보고 국내가요보다 팝송을 많이 들었던 시기에서 가요와 국내영화로 돌아섰듯이 공연계도 그런 변화를 겪고 있다. 번역극과 라이센스 중심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가 창작작품들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는 창작뮤지컬이 중심이 돼서 상당 부분 공연계를 잡아가고 있고, 이는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이다.

앞으로의 한국창작뮤지컬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현재 관객의 기본적인 취향도 옛날 외국작품들의 성격보다 국내창작뮤지컬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소극장뮤지컬은 라이센스 작품보다 창작뮤지컬이 훨씬 좋은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형뮤지컬은 창작보다 라이센스 작품이 많다. 그만큼 창작 작품은 대극장 투자가 힘들고 해외에서 검증을 거친 라이센스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대규모 투자가 힘들다는 점에서 라이센스보다 우수작품, 잘 된 작품, 살아남는 작품이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 해외 사례를 봐도 소극장뮤지컬은 그렇게 뛰어난 작품들이 거의 없다. 소극장뮤지컬은 대형뮤지컬보다 비주얼이 아닌 독특한 색깔과 스토리, 드라마, 캐릭터로 승부하는 경향이 크다. 해외 라이센스보다 한국창작작품이 그런 부분에서 뛰어나다. 아마 소극장 쪽은 한국창작뮤지컬이 앞으로도 대세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한다.

- 좋은 연출가, “야구로 보면 선발타자”

‘웃기는’ 건 쉬울 수 있지만 ‘느끼게 하는’ 것은 어렵다. 연출님만이 가진 ‘관객에의 다가가기 전략’이 있다면.

가장 큰 것은 ‘진정성’이다. 내가 언제 가장 가슴이 아팠고, 언제 가장 슬펐고, 가장 행복했나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이렇다면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 감동은 의외로 굉장히 큰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데서 온다. ‘당신이 행복하고 싶다면 모든 행복의 조건을 버려라’ 라는 말이 있다. 돈이 많이 있어야 행복하고, 명예를 얻어야 행복한 게 아니라 그런 조건 자체가 없다면 금방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감동의 조건은 의외로 단순한 데 있다. 과대포장, 영웅의 일대기만 감동스러운 것이 아니라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자체가 감동을 준다.

연출님이 생각하는 좋은 연출가는?

옛날 후배들이 물어봤을 때 야구로 보면 선발타자라고 했다.(웃음) 기복이 없는 연출가다. 관객이 그 사람의 작품을 봤을 때 기대감을 가지게 하고, 실망스러운 퇴작을 적게 만드는 사람이 좋은 연출가다. 꾸준한 기대치 이상의 작품을 만들 수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연출가가 돼야 한다. 또한, 어느 정도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분명한 연출가가 좋은 연출가라고 생각한다.

20주년을 맞은 지금, 10년이 더 흘러 30주년을 맞은 시점을 떠올려본다면 어떨까요.

내 꿈은 평생 연출가로 살아가는 것이다. 배우도 마찬가지고 연출도 마찬가지고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예술가의 정년이 없다고 말을 하지만 예술가도 정년이 있다.(웃음) 보통 55세 이상이 되면 불러주는 무대가 줄어들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건 자체도 힘들어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때를 맞지 않고,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기 위해서 이런 작업(연극제)을 하고 있다. 50대 후반, 60대 초반이 돼도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꾸준히 삶에 욕심내고 있는 연출가였으면 한다. 나는 예술가에게 있어서 가장 큰 힘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새로워지고 싶은 욕심, 뭔가 더 만들고 싶은 욕심, 뭔가 다르게 보고 싶은 욕심이 예술창작활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내 원래의 꿈은 하나의 장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계통에서 20년을 했으면 앞으로 30년 40년이 지난 후에는 연출가로서 대가라는, 장인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죽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대중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좀 더 다른 위성신만의 색깔이 나올 것이다. 하나의 일가를 이룰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연출가로서 가장 ‘욕심’이 생기는 부분은?

첫 10년의 세월은 조금 더 실험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시기였고, 10년에서 20년의 세월은 생존과 결부된 시기였다. 첫 10년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대중성을 채워보는 작업을 이후 10년간 많이 했다면 지금부터는 더욱 분명한 위성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싶다. 좀 더 심플하고 좀 더 스타일리시한 작업을 하려고 한다.

그 첫 시작을 ‘퍼펙트맨’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물론 ‘퍼펙트맨’도 상당히 스타일리시한 작품이다. 지금 하고 있는 뮤직드라마 ‘당신만이’도 일상적인 작품이지만 세트는 굉장히 단순하고 스타일리시하다.

연출데뷔 20년을 맞은 지금 가장 가까운 곁을 지켜준 가족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아내의 가장 큰 불만이 가족과의 시간이 적다는 것이다. 자기 작품에 대한 욕심이 강해서 가족에 대한 소홀함이 크다고 서운해한다. 여기에 늘 미안하고 반성한다. 남자가 가족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아들과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은 세 마디를 전하고 싶다. 

연출가 위성신의 20주년 페스티벌 ‘위성신은 000 연출가다’는 지난 5월 16일 막을 열어 2013년 1월까지 정동 세실극장과 대학로에서 진행된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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