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극단 한강’의 ‘산타 히로시마’로 대학로에서 연출가로 데뷔한 위성신 연출이 2012년 연출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읽기를 하고 싶다”는 그는 일상의 소소함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들로 관객에게 진정성 있는 웃음을 던져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서민의 일상을 다루면서도 진지하고 무겁기보다 여전히 유쾌한 이유에 대해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페스티벌 ‘위성신은 000 연출가다’는 벌써 그의 4번째 연극제다. 그동안 대학로의 대표 젊은 연출가로서 꾸준히 대표작을 모아 의미 있는 연극제를 선보여 왔다. 이번 20주년 기념 페스티벌에서 신작과 대표작을 함께 선보이게 된 위성신 연출을 직접 만나 20주년을 맞은 감회와 연극제의 의미, 대중에게 사랑받는 그만의 ‘따뜻한’ 관객 다가가기 전략에 대해 물었다.

이번이 위성신 연출의 네 번째 개인연극제로 알고 있습니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연극제는 더욱 특별할 것 같은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데뷔 십 년째가 됐을 때 ‘위성신은 거북이를 좋아한다’는 이름의 연극제를 열었다. 그 당시는 그때까지 올렸던 실험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가 30대 후반이었는데 40대에 접어들면서 일상과 대중성 쪽으로 연출의 화두를 잡고 좀 더 대중적이고 일상에 가까운 작업들을 시작했다. 이번 20주년 연극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좀 더 대중적인 작품들로 최근 신작까지 총 7 작품을 선정했다. 처음 10년이 실험적인 시도였다면, 그 후의 10년은 대중성을 얻은 시기였다. 앞으로의 10년을 다시 생각하면서 다른 색깔을 고민하고, 새로운 화두를 잡기 위해 이번 20주년 페스티벌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연극제에는 신작과 그간의 대표작들을 함께 준비해야 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요.

당연히 신작에는 신경이 쓰인다. 또 40대 후반이 된 중견연출가의 20주년 타이틀을 가지고 올리는 신작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작품 수준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다. 다른 작품들은 한 번씩 검증을 거친 작품들이었으니까 부담이 적었지만 신작은 검증이 안 된 데다가 우려와 염려, 기대가 많아서 좀 힘들었다.

-신작 ‘퍼펙트맨’, “웰빙만큼 중요한 것이 웰다잉”

신작 ‘퍼펙트맨’은 소재 면에서 독특합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요즘 세상 자체가 웰빙과 웰다잉을 중시하지 않나. ‘퍼펙트맨’은 ‘웰빙만큼 중요한 게 웰다잉’이라는 것에서 출발했다. 저승사자들이 바라보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퍼펙트맨’은 저승사자들이 만든 회사이름이자, 우리 삶의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 그 자체다. 뮤지컬에 있어서 소재의 다양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 천편일률적인 내용에서 벗어나보자 싶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아직 초연이어서 조금씩 안 맞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관객 반응은 대체로 ‘소재가 참신했다’, ‘재미있었다’는 반응이었다.

연출님 작품을 보면 유쾌한 일상 속에 깨달음과 웃음이 함께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웃음’을 위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삶 자체가 굉장히 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한 것이다. 괴로움만 있다면 사는 의미가 없지 않나. 유쾌함도 있고 행복함도 있고, 삶은 의외적인 재미가 많다. 조금만 다르게 보면 산다는 건 나름대로 행복할 수도, 즐거울 수도 있다. 그런 일상적인 삶 자체가 유쾌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본다. 조금 다르게 보기, 곧이곧대로 보지 않고 조금만 다르게 보면 같은 일상이라도 재미있다.

우리가 인간의 삶을 너무 괴롭고 진지하게만 바라보기 시작하면 사는 사람도 바라보는 사람도 괴롭기만 하다. 내가 가진 철학, 연극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거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철학 중에 ‘아름다운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아닌 것을 뜯어고치려는 노력도 필요한 일이다. 세상이 다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비관하기 보다는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삶에서 깨달음을 준다.

-내가 스스로에게 붙이고 싶은 수식, ‘따뜻한’ 연출가

이번 연극제 타이틀을 빈칸으로 비워둔 것이 눈에 띄는데요.

20년쯤 되니까 위성신이 어떤 연출가인가를 관객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과연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나 역시 그 빈칸에 스스로 어떤 연출가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었다.

스스로 그 빈칸을 채워본다면 어떤 말을 채워 넣고 싶으신가요.

내가 제일 원하는 것은 ‘따뜻한’이다. 다른 어떤 연출가들은 날카롭게 때로는 진지하게 각각의 시선을 가지고 세상읽기를 하는데 나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따뜻하다’는 말이 듣고 싶다. 흥행연출가, 대중적인 연출가 등의 말도 들었고, 촌스러운 연출가란 말도 들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따뜻한’이란 수식이다.

- 위성신의 ‘일상’과 ‘실버 세대’를 향한 따뜻한 관심들

위성신 연출작 하면 소소한 일상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일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일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가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였다. 그전까지는 실험적인 작품을 하다가 일상적인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관객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것을 계기로 일상에 대한 공부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97년도에 한예종 연출과를 가서 학업계획서를 쓰라고 했을 때 일상을 연극화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를 하면서 썼던 작품들이 ‘술집’, ‘늙은 부부 이야기’다. 그런 일상적인 작품들을 해 오면서 ‘락시터’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관객도 소소한 일상이 주는 소중함을 함께 깨닫게 되지 않았나 싶다.

작품을 보면 주변에 어딘가 있을만한 캐릭터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특히 애정을 많이 기울인 캐릭터가 있으시다면?

‘늙은 부부 이야기’ 같은 경우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시 어머니 아버지께 바친다고 했었다. 작품 포스터 자체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모델로 제작했다. 부모님의 사진을 보고 막내동생이 그려서 만든 포스터다. 최근에 만든 뮤직드라마 ‘당신만이’에 나오는 경상도 부부 캐릭터에는 나와 아내의 모습이 일부 투영돼 있다.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살아 있을법한 인물들에 애정이 간다.

‘늙은 부부 이야기’도 그렇고, 실버세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내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연령층이 높다는 거다.(웃음) 어쩌다보니 실버콘텐츠를 많이 하게 됐다.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를 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가 의외로 가장 인기가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도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좀 더 발전시켜서 만들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한 것이 ‘늙은 부부 이야기’다.

재미를 느껴서 하다 보니 ‘염쟁이 유씨’도 실버콘텐츠의 느낌이 됐고, ‘언덕을 넘어서 가자’도 70대 이야기, 강풀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다. 그다음에 70대 어머니의 이야기인 ‘어머니’란 작품도 하고, 작년에 만들었던 뮤지컬 ‘친정엄마’까지 생각하니 6~7개 작품이 실버콘텐츠가 되더라.(웃음) 한국사회가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노년의 이야기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고, 내가 닥칠 문제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소재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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