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칠수와 만수’와 연출가 유연수의 인연은 참 깊다. 그는 1997년 연극 ‘칠수와 만수’에서 만수 역을 맡았었고, 2007년에는 극단 연우무대의 30주년 기념을 맞아 연극 ‘칠수와 만수’의 연출을 맡았었다. 당시 연극 ‘칠수와 만수’를 처음으로 각색해 무대에 올리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2년, 유연수는 이 작품의 연출가로 관객 앞에 다시 섰다.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각색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아픔과 웃음으로 돌아온 연극 ‘칠수와 만수’의 유연수 연출가를 만났다.

- 1997년 연극 ‘칠수와 만수’의 무대에 섰고, 2007년에는 연출을 맡았었다.

2007년이 연극 ‘칠수와 만수’의 4번째 정도 공연이었다. 그전까지는 각색을 하지 않고 그대로 공연을 올렸다. 초연 당시와 비교했을 때 2007년은 시대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고루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많아 대대적으로 수정했었다. 그 당시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전반부는 굉장히 좋은데, 뒷부분이 시대에 맞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예를 들어, 집으로 배달된 편지를 우연히 기자가 발견해 읽어주는 장면의 경우,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맞지 않는다. 2012년 공연은 뒷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 2007년 연출했을 때와 지금 작품을 볼 때 달라진 것이 있나?

줄거리는 변했지만 연극 ‘칠수와 만수’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현실 풍자’는 변하지 않았다. 2007년 공연 때는 ‘원형 그대로 올리지 그랬냐’는 말도 있었다. 그랬다면 이 작품은 백전백패였을 거다. 예전에 연극열전에서 연극 ‘한씨 연대기’를 올린 적이 있었다. 100퍼센트 원작 그대로 공연했는데, 관객들 절반은 잤다. 당시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한씨 연대기’ 단편소설을 접목시켜 연극화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재공연에서 초연 당시 출연진과 제작진 그대로 무대에 올랐음에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유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연극 ‘칠수와 만수’와 ‘한씨연대기’는 비슷한 면이 많다. ‘한씨연대기’도 배우가 5명, ‘칠수와 만수’도 배우가 5명이다. 연극 ‘칠수와 만수’는 대만의 황춘명이 쓴 ‘두 페인트공’이라는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이를 배경으로 ‘한씨 연대기’ 같은 작업을 거쳐 공연됐다. 연극 ‘칠수와 만수’는 사회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 그때는 무대에서 욕을 할 수 없었던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본 관객들이 얼마나 많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겠나.

- 군사 정권 시절이라면 더욱 반응이 컸을 것 같다.

당시는 검열을 하던 시절이다. 검열관 두 명이 검열하러 왔다가 웃다 쓰러져서 검열도 안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웃음) 이후 민주화 시대로 넘어오면서 연극 ‘칠수와 만수’가 풍자해야 할 대상이 모호해졌다.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이 작품의 목소리가 힘이 빠지기 시작한 거다. 그 통쾌하고 날 선 목소리들이. 그 점이 연극 ‘칠수와 만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 유연수 연출가는 1997년 만수 역을 맡아 연기했었다. 지금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보면 어떤가?

요즘 배우들은 연기할 때 자유롭고 거침없다. 예전 연극배우들은 딱딱했는데, 지금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맘껏 즐기면서 연기한다. 연출할 때는 보통 배우들이 맘껏 연기할 수 있도록 놔 준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소통이 안 됐을 때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편이다. 출연하는 배우 한 명은 거의 밤마다 꿈에 내가 나타날 정도로 고생했다. 그런 것들이 고쳐서 무대에 오르는 걸 보면 뿌듯하다.

- 이 작품에 출연도 했고, 연출도 했다. 이 작품과의 인연이 굉장히 깊어 보이는데.

나는 춘천이 고향이고 강원대학교를 나왔다. 대학교 1학년 때 춘천에서 연극 ‘한씨연대기’가 공연한다고 해서 보러 갔다가 충격을 받고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갔다. 그때는 연극 ‘칠수와 만수’의 전설만 들었었고 공연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1997년에 출연하게 됐고, 2007년에는 연출까지 하게 됐다. 극단 출신이라고 해서 연출을 그냥 시키진 않는다.(웃음) 첫 연출작이었던 연극 ‘나쁜 자석’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 이 작품을 연출할 수 있었다.

- 이제 막 연출가로 데뷔했던 시기라 힘들었을 것 같다.

연극 ‘칠수와 만수’의 첫 공연 날, 칠수와 만수를 연기한 역대 선배님들이 다 오셨었다.(웃음) 그 작은 연우소극장에서 카메라와 기자들, 문성근, 강신일, 박광정 같은 대선배들이 다 앉아 계시는데…. 배우들은 빨가벗고 공연하는 느낌이었을 거다. 그때 배우들이 상당히 잘했고, 선배님들도 좋은 평가를 해주셨다. 그때도 주위 분들이 뒷부분만 잘 마무리하면 연극 ‘칠수와 만수’는 언제든 잘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 이번 공연을 각색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

‘가족’이다. 물론 사회의 부조리나 풍자, 비판도 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고, 가족이 많이 해체된 시대지 않나. 이 사회를 회복하려면 가족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회복해야 사회도 화목해지고, 국가도 결국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칠수와 만수 모두 가족 문제에 걸쳐 있는데, 그 부분이 올드하게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연극 ‘칠수와 만수’는 풍자적인 면이 강한 작품이다. 연출하면서 표현 수위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부분은 많이 없었다. 현 정권을 중점적으로 비판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칠수와 만수 두 사람의 드라마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민했던 것은 두 사람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되는 한국의 현실과 뒷부분의 드라마가 잘 연결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 두 사람이 일하는 곳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곤돌라’ 위다. 사실 직업적으로 잘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이 두 사람의 직업을 현실적으로 바꾸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실사를 붙이는 인물로.(웃음) 사실 18층 건물에 세계적인 디자인을 칠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될 수도 있다.(웃음) 개인적으로 ‘페인트공’이라는 직업이 연극 ‘칠수와 만수’에서 가장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페인트공’이 가지는 미학적, 연극적인 요소도 있고. 앞으로도 연극 ‘칠수와 만수’를 하는 한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 ‘곤돌라’에 매달려 가장 상업적인 빌딩에, 가장 상업적인 여배우의 누드를 그린다는 설정도 그렇다. 누드와 빌딩은 지금 상업화돼 있는 우리의 현실이고 물질문명의 설정코드다. 가장 아이러니한 두 사람이 처한 환경, 현실에 대한 부분이 무대 세트에 그대로 나타난다.

- 페인트공이라는 설정을 버릴 수 없다고 한 점이 인상적이다. 연극 ‘칠수와 만수’에서 ‘이것만은 빼면 안 된다’고 할 만한 부분이 있나?

빌딩 위에 갇혀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빠지면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언론이나 타의에 의해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현실의 모순, 부조리도 이 작품에서 바꿀 수 없는 부분이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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