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의 무대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는 음악과 소품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의 분위기를 ‘보랏빛 안개’라는 한 마디로 표현한 서윤미 연출은 이번 공연에 어떤 음악과 소품을 마련했을까. 기대작 ‘블랙메리포핀스’와 그 작품을 만들어가는 연습현장의 분위기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그리고 서윤미 연출 자신에 대한 이야기, 뮤지컬 데뷔 2년 만에 자신만의 영역과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그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 ‘블랙메리포핀스’의 음악과 소품들

이번 작품, 음악은 어떤가요?

음악은 중독성이 강한, 현대음악 같은 음악이에요. 형식은 기존의 작곡 틀처럼 가지는 않고요. 여기 멜로디가 다른 곡의 여기에 차용되는 식의 디테일한 리프라이즈에요.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앞세워서 변주를 하는 방식이죠. 전체적인 느낌은 어둡고 클래식해요. 음악의 특징을 정리하자면 첫째가 클래식한 멜로디, 두 번째가 중독적인 멜로디가 앞에 나온다거나 하는 현대음악적인 형식, 세 번째는 드라마틱한 구성을 들 수 있어요. 대사적이에요, 음악이.

연출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대표할만한 넘버, 장면을 말씀해주신다면?

사일렌트 웬즈데이(Silent Wednesday)요. 네 명은 수요일의 기억을 잃어버려요.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주인공들은 안개 속처럼 사라진 수요일, 기억 속 침묵하고 있었던 수요일을 찾아 헤매게 되죠.

소품은 어떤 것들이 쓰이나요.

소품은 수량은 최소화하면서 질적으로 고증을 거쳤어요. 대부분 다 제작을 했고요. 타자기 하나도 제가 직접 골랐어요. 느낌을 잘 전달하도록 의상에도 신경 썼죠. 결과물은 그린대로 만족스러워요. 스텝들이 지금 거의 뭐 불사르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거든요.(웃음)

- 작품에 담긴 연출의 의도, 혹은 기대

직접 트위터도 하고 계시지만 요즘은 관객 반응이 바로바로 나오잖아요. 무대에 오른 직후 어떤 반응을 기대하시나요?

‘헉’하는 정도요? 막 시끌시끌한 반응을 바란다기보다 눈을 껌뻑껌뻑거리는 정도의 느낌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앞서 ‘보랏빛 안개’라는 말도 하셨는데요. 보고 나면 꿈꾼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리얼하게 다가오는 ‘어떤 의미’가 있는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실제 작품의 소재들은 굉장히 자극적이에요. 서양사의 잔혹하고 자극적인 소재들이 그대로 사용됐죠. 시체나 방화도 그렇고요. 자극적인 소재들은 대학로 정극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다뤄졌던 것이지만 그동안은 드라마만 강조해왔다고 봐요. 자극적인 소재를 자극적으로만 다룬 거죠. 그걸 어떻게 매력적으로 그려낼까 하는, 그 매력에 의해서 사람들이 사로잡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냥 들쑤시고 끝나버리는 것은 다큐를 만들면서 너무 많이 느꼈어요. 그게 다큐의 가장 큰 장점이자 한계거든요. 제가 이쪽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어요. 그런 상처들을 다독여주는 식으로라도 치유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은 괴로운 것이 아닌가요. 배우분들도 힘들어하실 것 같은데요.

그럼요. 드라마의 강도가 세고, 연기 자체가 깊게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연습하고 나면 배우들이 거의 탈진해요. 그래서 주말 2회 공연이 사실 걱정되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파장이 있을 것 같네요. 약간 다크한 추리극 느낌을 예상했던 관객은 인물과 함께 자신 내면의 깊은 상처까지 발견하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후반부에 반전이 있어요. 막 놀라운 반전은 아닐 수도 있지만요. 저는 반전을 위한 반전은 싫어요. 갑자기 엉뚱한 사람이 지목되는 식이요. 그런 반전이 아니라 살인 동기에 관한 반전이에요.

- ‘카리스마’와 ‘초딩’을 오가는 연습현장

연습현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작품처럼 어둡지만은 않겠죠?

거의 유치원 달님반, 개나리반 이런 수준이에요.(웃음) 배우들이 맨날 저를 놀리는 재미로 살고, 저 놀리는 걸 그렇게 좋아해요. 저 등장할 때 노래가 있을 정도예요. 제가 연습실에서 이중창을 만드느라고 노래 부른 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고요.(웃음)

엄하게 지도하지는 않으세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배우들이 집중할 때는 정말 잘하거든요. 저도 ‘카리스마’와 ‘초딩’을 왔다갔다해요. 배우들도 같이 왔다갔다하고요.(웃음) 배우들이 연습에 막상 들어가면 제 말을 그렇게 잘 들어줄 수가 없어요.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줘요.

작품 연습 과정에서 원래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좋은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도 있나요?

안무에서 어떤 부분이 있었는데 제가 그 부분을 빼달라고 했어요. 다른 것을 찾아봐야겠다고 했을 때 안무 선생님이 여자를 의자에 앉혀놓고 춤을 추게 했어요. 그때 헤르만의 직업이 화가 겸 조각가인 게 떠오르더라고요. 그 여자애를 조각이라고 놓으면 될 거 같았어요. 서있을 때 여자는 춤을 추지 않고 오브제 조각이 되는 거죠. 마침 턴테이블이니까 혼자 서 있는 조각상이 오르골처럼 움직이도록 할 생각이에요.

- ‘서윤미 연출가’에 대한 크고 작은 궁금증들

뮤지컬을 시작하신 것이 2년 전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극작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사실은 제가 원래 뮤지컬을 시작하기 전에 계속 전략기획과 브랜드마케팅 쪽에 있었어요. 프로듀서 출신이죠. 작가 일을 시작한 건 30세 이후에요. 이 일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저는 30세 이후에 작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정말 그 결심대로 29살 12월 28일에 다큐멘터리 하나를 계약하고, 정확히 30세 1월 1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죠.
 
왜 먼저 빨리 시작하지 않으시고 30세부터로 생각하셨나요?

작가데뷔가 곧 시집가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저는 결국 작가로 살다 죽을 것 같은데 그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싶었어요. 대학교 때 이미 30세부터 작가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고는 20대에는 내가 해보고 싶은 직업 다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실제로 다 해봤어요.(웃음) 해보고 싶은 관심분야를 선택해서 전부 도전했어요. 나중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경험도 해 봤고요.

뮤지컬 데뷔 2년 만에 ‘서윤미 연출가’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흥행보증수표’라는 말까지 돌고 있는데요. 부담스러우신가요, 반가우신가요.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일희일비하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보통 일주일에 공연, 영화, 드라마까지 한두 편에서 많으면 두세 편, 한 달에 열 몇 편씩 의뢰가 들어와요. 작품은 신중하게 결정하고 결과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요. 최근에는 관객분들이 사인을 요청하시거나 선물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스스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요.

극작, 연출, 음악 등 공연 전반에 영역을 넓혀가고 계신 것도 계기가 있으신지요.

계기라기보다는 과정이 그렇게 됐어요. 뮤지컬은 2년 전에 데뷔했는데 사실 데뷔하기 전에는 ‘오페라의 유령’ 초연 외에 뮤지컬을 본 적이 없었어요. 데뷔 직전 그 당시에는 이쪽 뮤지컬 시장의 생리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여서 문화마케팅 측면, 이론적으로만 접근했죠.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지킬앤하이드’를 14번을 봤어요. 그 당시 대극장뮤지컬이 그 작품밖에 없었거든요. 하루는 조명, 하루는 무대체인지, 앙상블의 움직임 등... 그렇게 14번을 보고 극을 하나 썼어요. 그게 대극장용 ‘스위니토드’ 같은 작품이에요. 그 작품을 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해서 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뮤지컬 공연으로 만드는 협력 사업에 운 좋게 뽑히게 됐고요.

음악도 당시 아는 뮤지컬 작곡가도 없었고, 나중에 곡이 마음에 안 들어도 거절할 입장도 아니어서 직접 제가 만들게 됐어요. 반면에 다른 작곡가분이 너무 잘 만들어주셨는데 제 능력이 부족해서 폐를 끼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제가 음악도 만든 거죠. 첫 작품은 제가 만들어서 22곡이 다 나왔어요. 그 음악을 PMC에서 들어보시고는 ‘밀당의 탄생’도 그냥 작곡하면 어떻겠냐 해서 하게 된 거죠.

쉽게 말씀하시지만 극작에 작곡, 혹은 연출까지 한다는 것은 간단한 작업이 아닐 텐데요.

‘밀당의 탄생’ 때도 그랬고, 예산 사정상 작곡을 의뢰할 형편이 아니었어요. 콘텐츠진흥원 작품도 아는 작곡가가 없어서 할 수 밖에 없었고요. 워크숍도 제 돈 들여서 제가 했으니까요.(웃음) 작품 쓰면서 2년 뒤쯤에 뮤지컬로 자리 잡고, 그 2년 뒤쯤 제작사를 찾고, 또다시 2년 후쯤 무대에 올리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가서는 작곡가를 바꾸고 싶었어요. 제가 작업하고 싶은 외국의 작곡가가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곡을 바꿀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제가 작곡을 맡은 의도도 있죠.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어요. 어렸을 때 배우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줄 착각을 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늘지를 않는 거예요. 맨날 상 받던 에이스가 어느 순간 천덕꾸러기가 되더라고요. 또래에 비해서 너무 잘 치다가 5학년 때부터는 못 치는 거죠. 가장 문제는 악보대로 치지를 않는 거예요. 악보를 외우지 않고 제 맘대로 자꾸 치는 거죠. 맨날 선생님께 맞았어요. 그런데 그게 작곡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자신의 연주가 짜여진 악보가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다는 것, 언제부터 아셨어요?

중학교 때 알았어요. 하지만 동시에 작곡의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도 알았죠. 대중에게 내놓을 정도의 퀄리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뮤지컬로 갔을 때는 음악에 드라마와 감성이 더해지기 때문에 비로소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이 되는구나 싶었죠. 뮤지컬음악은 멜로디뿐만 아니라 그 안에 정서와 함축된 의미가 있으니까요. 뮤지컬을 보면서 내 음악이 뮤지컬음악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지금도 대중가요나 클래식을 만들 자신은 없어요. 뮤지컬음악이기 때문에, 드라마가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어느 연출가든 작품을 접하면 연출가 특유의 분위기가 있잖아요? 연출님의 작품의 특성은 스스로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작품들을 봤을 때 특징적인 거라면 ‘영화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자유로워요. 저란 사람의 특징 중 가장 큰 부분이 ‘전략적인 자유로움’이에요. 자유로운데 막 나가지 않는 ‘잘 짜여진’ 자유로움이죠.

서윤미표 드라마는 시공간을 굉장히 자유롭게 넘나들어요. 백제와 신라, 과거와 현재, 내면과 현실 등 너무나 쉽고 자유롭게 이동하죠. 그래서 영화적이에요. 신이 굉장히 많죠. 극작법과는 정반대에요. 극작법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가 다 하고 있어요.(웃음)

연출님은 철저하게 고집이 있으신 것도 하고, 없으신 것도 같아요.

없어요, 고집. 아니, 있나? 하지만 제 작품의 특성이 고퀄리티를 지향하는 거니까 없다고는 못하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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