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미 작가가 돌아왔다. 그는 ‘늑대의 유혹’으로 관객을 신나게 웃게 했고, ‘밀당의 탄생’으로는 극작은 물론, 작곡과 연출까지 1인 3역을 하며 흥행을 이끌어 흥행보증수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들고 온 차기작은 전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심리추리스릴러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다. 독특한 소재에 화제의 캐스팅, 서윤미 작가의 극작과 연출로 뜨거운 기대를 모으고 있는 화제작 ‘블랙메리포핀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무대에 오르기 전 막바지 총지휘에 열정을 쏟고 있는 서윤미 연출가를 대학로 연습실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늑대의 유혹’, ‘밀당의 탄생’에 이은 차기작이 ‘블랙메리포핀스’라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게다가 심리추리스릴러 장르로 소재와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은데요. 이번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제가 제일 먼저 쓴 작품은 뮤지컬도 TV용 다큐도 아닌 극장용 독립영화 장편다큐멘터리였어요. 이후로는 국책사업 위주로 작업을 많이 했고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제 작가적 색깔이 점점 무게감이 깊어진다고 할까요. 뮤지컬에서는 그게 핸디캡이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깨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게 된 작품이 ‘늑대의 유혹’이었어요. ‘늑대의 유혹’으로 뭔가 반전 같은 느낌을 준 후에는, 상업성을 증명하고 싶어서 상업성에 확신이 있었던 ‘밀당의 탄생’을 선택했어요.

저는 작품 장르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아요. 다양하게 하는 게 좋아요. ‘밀당의 탄생’ 이후 다음에는 뭘 해볼까 하다가 흥행을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을 하면 말 그대로 상업성만 보여지겠다 싶어서 편하게 할 수 있는 ‘블랙메리포핀스’를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로맨틱코미디만 상업적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장 상업적이지 않은 것이 가장 상업적일 수도 있죠. ‘블랙메리포핀스’를 통해 그것을 증명하고 싶기도 해요.

-‘블랙메리포핀스’ 속 캐릭터, 작품의 분위기

작품의 장르가 심리추릴러인 만큼 작품 속 캐릭터가 어떨지 궁금한데요.

그냥 추리스릴러가 아니라 심리추리스릴러잖아요. 추리스릴러에서 ‘누가 범인일까’가 중요하다면 심리추리스릴러는 ‘왜’가 중요하죠. ‘왜’를 파헤치려다보면 결국 그 동기는 인물의 심리에서 나오니까요. ‘살인자가 누구이냐’ 보다 ‘살인동기가 과연 무엇이었을까’가 핵심이 돼요. 캐릭터의 심리적인 부분이 중요해지죠. 추리물의 기본적인 플롯은 살인자가 누구였을지를 계속 숨기는 거고요, 이에 비해 심리추릴러는 살인동기가 무엇이었을까를 계속 숨기는 거예요.

‘블랙메리포핀스’의 캐릭터들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심리학적인 결함들을 가지고 있어요. 트라우마로 인해 내면에 아픔들을 가지고 있는 네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죠. 배우들에게는 캐릭터를 만들 때 모두 각각 모티브가 될 수 있는 병명들을 지정해줬어요. 그것들은 대중들에게는 철저히 공개되지 않는 서브텍스트였고요. 한스는 ‘알콜중독’인데 완벽에 대한 집착이 있어요. 그래서 사건의 해결에 대해서도 집착하죠. 헤르만은 ‘경계성 인격장애’가, 요나스는 ‘공황장애’와 ‘회피성 인격장애’가 있어요. 안나는 평범해지고 싶어 하는 ‘결벽’ 증세가 있고요.

포스터 위에 쓰인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제목과 음울한 동화의 분위기가 그대로 일치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포스터는 제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요. 마치 팀버튼의 느낌처럼 동화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하게요. 콘셉트로 말하자면 ‘다크 앤 시크’라고 할까요? 그 느낌을 주고 싶어서 어두운 블랙 톤을 사용했어요. 무대 의상도 화이트, 블랙, 그레이 위주로 갈 거예요. 세트도 원세트로 시크하게 갈거고요. ‘메리포핀스’라는 게 원래는 굉장히 예쁜 동화잖아요. 그 예쁜 동화를 뒤집었을 때 잔혹함이 생겨난다고 봐요. 잔혹하지만 호러적이지는 않은.

팀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작품을 보면 동화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해서 매혹적이잖아요. ‘백설공주 살인사건’이란 게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백설공주가 주는 동화적 플롯의 매혹성 때문에 ‘who’보다 ‘why’의 추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겠죠. ‘메리포핀스’라는 동화를 가지고 ‘메리포핀스 살인사건’이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그게 바로 ‘블랙메리포핀스’ 인거죠.

작품의 분위기에 대해 연출님이 수식어를 붙여주신다면, ‘블랙메리포핀스’는 한마디로 어떤 분위기의 작품인가요?

‘보랏빛 안개’요.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선명한데 선명하지 않은 느낌인데요. 하지만 ‘보랏빛 안개’라는 것은 실존할 수는 없잖아요? 자연현상이 아니니까요.

이 작품이 바로 그렇거든요. 실존사건 같지만 100% 허구에요, 모티브가 되는 실화가 없죠. 사건의 모티브는 서양사와 실존주의를 참고한 거예요.

- ‘주옥’ 같은 배우들

배우분들 이야기도 해주세요. 캐릭터를 만드실 때 미리 염두에 두신 배우들이셨나요?

네. 모두가 캐릭터 구상 때부터 제가 염두에 뒀던 배우들이에요. 저는 작품 쓸 때부터 배우를 생각해요. 그래서 저랑 작품을 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시놉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요.(웃음) ‘나 뭐한다’ 하고 말만 한 상태에서 합류하는 식이죠. 원래는 강하늘, 전성우 배우가 요나스였어요. 그 친구들이 헤르만으로 가면서 김대현 배우가 들어왔죠. 정상윤 배우는 마지막에 들어왔어요.

이번 작품의 배우들은 한 마디로 주옥같아요. 뭐 이런 배우들이 있지 싶을 정도예요.(웃음) 저랑 친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정말 열심이고, 긍정적이고.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고요. 디렉팅도 정말 잘 받아들여요. 창작 작품이다 보니 연기에 대해서도 디렉팅이 20%라고 치면 창작이 80%거든요. 배우들도 창작자라고 봐야죠.

배우분들이 자유롭게 창작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주시는 건가요.

제가 그런 걸 잘해요. 만약 애를 키운다고 하면 정원에서 아이를 자유롭게 놀게 하는데 대신 그 안에는 모든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는 거예요. 아이가 넘어졌을 때는 이렇게 하고, 만약 이렇게 갈 경우는 A로 이럴 때는 B로요. 이런 식으로 대안들을 계속 마련해놔요. 작품 할 때도 마찬가지죠. 배우들이 최대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끌어낼 수 있게 열어줘요.

작품 처음에는 제가 원하는 방향의 러프한 신을 준비해요. ‘러프 런쓰루’라고 해서 신을 디테일하게 잡지 않은 상태에서 런쓰루를 가는 거죠. 거기서 배우들이 어떤 걸 하고 싶은지 파악을 해요. 그 다음에 디테일한 신을 만들고, 일반적인 런쓰루를 가는 식이에요.

초연배우는 캐릭터 디렉터일수밖에 없어요. 함께 만들어가는 거죠. 실제로 저는 한 사람의 천재가 세계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 열어줬을 때의 재능과 재능들이 만나는 거예요. 저는 가지고 있는 지분이 많아요. 제가 그것을 열어주지 않으면 배우들은 숨 막히는 꼭두각시가 될 거에요. 그래서 확실하게 열어주죠. 그게 제 방식이에요.

구체적인 신을 구성하실 때는 어떻게 디렉팅을 하시나요?

같이 평등한 입장에서 소통해요. 저도 원하는 연기를 직접 보여주고요. 그런데 그 시점이 조금 다른 거죠. 기다려주는 시점과 잡아주는 시점, 잘 안 되는 부분을 직접 보여주는 시점들이 있어요. 제가 그렇다고 지나치게 러프하지는 않아요. 틀이 있으니까요. 오히려 후반 작업은 심하게 디테일해요. 대사 톤과 한 글자 한 글자에도 디테일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제정신이야’라는 대사를 할 때, 톤의 레벨까지 디테일하게 조정해요. 웃는 타이밍과 숨 쉬는 타이밍까지도 생각하죠. 마치 영화 찍는 것처럼요.

- 심리추리스릴러와 신체언어의 만남

이번 작품에는 장르를 살리기 위해 신경 쓰신 부분이 많으실 것 같아요. 장르를 고려해 새롭게 시도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안무에요. 일반적인 뮤지컬 안무처럼 하지 않고, 현대무용처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대무용 안무가를 섭외했는데 현대무용을 뮤지컬에 접목했을 때 단점들이 있잖아요. 그걸 제가 어떻게 정돈하고 어떤 방향으로 끌어내느냐가 관건이에요. ‘스프링어웨이크닝’이나 ‘터치미’ 같은 안무를 하고 싶었어요. ‘신체언어 움직임’이라고 할까요. 지금 레벨 2쯤에 와 있어요. 레벨 4까지 쓰려고 해요. 안무 난이도를 총 8레벨로 봤을 때 뮤지컬에서 레벨4가 넘으면 뮤지컬이 될 수 없다고 보거든요. 뮤지컬에 접목할 수 있는 레벨까지 시도해보려고 해요.

이번 작품,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많이 주는 작품이 될 것 같은데요.

해석의 여지가 많죠. 소위 말해 회전문 타기 좋은 작품이에요.(웃음) 하지만 ‘회전문을 타야만 하는’ 작품이면 문제가 되잖아요.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 봤는데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이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혹시, 보면 볼수록 발견하게 되는 숨겨진 안배가 있나요?

숨겨진 안배들이 있죠.(웃음) 예를 들어 저희 작품 중에 연구일지 날짜가 있는데요. 그 날짜들이 다 실제 날짜들이에요. 1926년 몇 월 며칠, 그날 날씨까지도 실제와 같아요. 그 날짜를 생각한 게 전성우 배우에요. 전성우 배우는 작곡에도 어시스트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강하늘 배우는 조연출 역할을 해주고 있고요. 정말 주옥같은 배우들이에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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