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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in] 뮤지컬 ‘엘리자벳’의 죽음(토드), 영혼을 잠식하는 매혹적인 춤!김준수의 ‘죽음(토드)’, 독특한 존재감으로 무대 압도

금발에 검은 날개를 지닌 죽음의 천사들이 두렵도록 아름다운 춤사위를 펼치면 어김없이 ‘그’가 나타난다. 달콤한 유혹의 단어, 귓가에서 속삭이는 환상 같은 멜로디는 듣는 이의 속마음을 꿰뚫는 듯 마음을 뒤흔든다. ‘나만이 너를 이해할 수 있다’는 따뜻한 ‘그’의 속삭임은 차갑게 식어가던 가슴 속 외로운 마음에 악마처럼 스며들며 영혼을 잠식해간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스토리의 중심에 선 인물은 황후 엘리자벳이지만, 스토리의 배후에 서 있는 것은 뜻밖에도 ‘죽음(토드)’이다. 자유롭던 유년시절을 보낸 후 드라마틱한 우연으로 한순간 오스트리아의 황후의 자리에 오른 엘리자벳은 자유를 빼앗긴 채 인형처럼 조종 받는 삶을 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실로 영혼이 꽁꽁 묶인 엘리자벳의 운명은 실에 양팔을 매단 인형극으로 표현되는데 사실 자유를 잃은 황후의 영혼을 지배해가는 존재는 ‘죽음(토드)’이다.

작품의 작곡가인 실베스터 르베이는 지난 인터뷰에서 ‘죽음(토드)’에 대해 “매력적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매력적이다 못해 관객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다”고 말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던 몸이 불편한 여성이 작품을 본 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의욕을 갖게 됐다”는 감동적인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실베스터 르베이의 말처럼 작품 속 ‘죽음(토드)’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사람도 짐승도 아니며,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이 존재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치 발톱을 숨긴 매와 같이 빠르고, 발걸음을 죽인 표범과 같이 관능적인 몸짓으로 다가와 표적의 급소에 비수를 꽂는다.

야수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면, ‘죽음(토드)’은 표적의 영원한 사랑을 손에 넣기 위해 죽음의 천사들과 매력적인 춤을 춘다. 죽음의 천사들과 ‘죽음(토드)’이 엘리자벳을 상대로 유혹하려는 자와 벗어나려는 자의 관계 속에서 펼치는 격정적인 춤은 역설적이게도 매우 아름답고 화려하다. 엘리자벳은 물론이고 관객까지도 죽음의 천사와 함께 하는 그의 춤에 빠져든다.

정체를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죽음(토드)’의 면모도 흥미로운 요소다. 특히, ‘죽음(토드)’의 노래에는 이러한 그의 다양한 면모들이 담겨 있다. 엘리자벳과 요제프의 결혼식 날 “너의 선택이 과연 진심일까. 그를 향한 환상은 착각일 뿐”이라고 노래하며, “마지막 춤, 내 마지막 춤. 결국엔 나와 함께. 오직 나만의 것”이라 외치는 모습은 광기어린 질투에 사로잡힌 ‘사랑에 빠진 남자’다. 하지만 엘리자벳의 아들 루돌프에게 “뭐를 망설이지. 세상을 구원해. 지금이야, 그것이 운명. 무너지는 이 세상 너만이 구할 수 있어”라고 반역을 독촉하는 모습은 삶의 희망을 부수는 ‘악마’와 같은 모습이다.

작품은 ‘죽음(토드)’을 그 어떤 쪽으로도 규정짓지 않는다. 엘리자벳의 우울한 감수성에서 태어난 상징적인 그의 존재는 엘리자벳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때로는 외로움을 채워주는 사랑으로, 때로는 모든 희망의 끈을 놓고 싶은 절망으로 변화하며 끊임없이 그림자처럼 엘리자벳의 뒤를 좇는다. 그가 엘리자벳에게 “나만이 너를 이해하고 자유를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하다. ‘죽음(토드)’은 곧 엘리자벳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자신이며, 거역할 수 없는 어두운 욕망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3인 3색의 ‘죽음(토드)’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뮤지컬 ‘엘리자벳’의 색다른 재미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류정한, 김준수, 송창의가 각자만의 해석으로 매력적인 ‘죽음(토드)’을 다양하게 표현해낸다.

특히, 김준수의 ‘죽음(토드)’은 관객에게 호평을 받은 만큼 독특한 존재감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다른 두 배우보다 나이도 어린 그가 인간이 아닌 캐릭터에 대해 어떤 답을 냈을지 의문이었으나 돌아온 답은 의외성 있는 매력적인 해석이다. 단순히 관능적인 남성적 캐릭터로 황제 요제프와 엘리자벳 간의 삼각관계를 구성하기보다는 여성도 남성도, 인간도 신도 아닌 ‘경계적 존재’로 나타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여성과 남성의 경계에 놓인 듯한 중성적인 몸놀림, 때로는 속삭이는 고음으로 때로는 허스키한 저음으로 영역을 넘나들며 유혹하는 김준수의 이중적인 목소리는 관객이 예상치 못한 교묘한 배합을 만들어냈다. 다른 그 어떤 영역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 그 무엇도 매혹시켜버리는 초월적인 ‘죽음(토드)’의 존재를 자신이 지닌 특유의 양성적인 매력에 감수성을 더해 매력적인 캐릭터로 부활시켰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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