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객석 점유율 역대 1위, 10회 이상 관람관객 600명, 100회 이상 관람관객 76명, 300회 이상 관람 관객 22명, 뮤지컬 팬클럽 최다 회원 보유. 2005년 4월 초연된 뮤지컬 ‘헤드윅’의 지난 발자취다. 현재 새로운 시즌이 순항 중이니 기록은 계속 깨지는 중.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로커의 넋두리가 무대에 올려졌을 때 이 작품의 대중적 성공을 예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햇수로 7년, 6번째 시즌을 이어오면서 ‘헤드윅’은 마니아들만이 열광하는 작품이 아닌 대중적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기록이 보여주다시피 ‘헤드윅’은 유독 재관람하는 관객의 비율이 높다. 그만큼 작품의 중독성이 강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는 비단 관객만의 얘기가 아니다. 작품에 대한 스태프들의 애착도 대단해서 초연 당시 스태프 대부분이 지금껏 그대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독고진보다 멋진 ‘소’자 수염의 소유자 이준 음악 감독과 매혹적인 비주얼을 책임지고 있는 채송화 분장 디자이너는 ‘헤드윅’의 터줏대감, 안방마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헤드헤즈(헤드윅의 열성팬을 일컫는 말)’를 자처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헤드윅’과의 강렬했던 첫 만남

(이준 음악감독- 이하 이) ‘헤드윅’을 영화로 처음 접했는데 완전 쇼킹이었죠. 기획사 측에서 음악 감독 제의와 함께 DVD를 보내왔는데, 핑크플로이드의 ‘더 월’을 봤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어요. 바로 전화했죠. 하겠다고. 음악만 듣고 무조건 하겠다고 한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뮤지컬 음악은 17,8년 전에 지하철 1호선 초연 때 하고는 안했었거든요. 힘들고 페이도 적고 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느낌이 오는 작품을 언제 해보겠냐 싶었습니다. 지금도 무대에 서면 설레요. 수백 회를 했지만 ‘미드나잇 라디오’ 같은 경우 기타 솔로를 한 번도 똑같이 쳐 본 적이 없습니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무대에서 풀고 에너지를 받죠. (웃음)

(채송화 디자이너- 이하 채) 저도 다른데서 받은 스트레스를 여기서 분장하면서 풀어요. (웃음) 저도 ‘헤드윅’을 우연한 기회에 영화로 처음 접했어요. 분장이 너무 멋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죠. 그리곤 ‘누가 저런 비슷한 느낌의 뮤지컬을 만든다면 내가 하고 싶다’란 생각을 했어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새로운 작품의 분장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제목이 뭔데요? 하니까 ‘헤드윅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죠. 순간 소름이 쫙 돋고 등에 식은 땀이 흘렀어요. 무조건 콜이었죠. ‘헤드윅’은 제 분장의 색깔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었던 작품이어서 너무나 의미가 큽니다.

- ‘헤드윅’의 진화 & 어게인(Again) 2005

(이) ‘헤드윅’이 사랑받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드라마적인 힘, 음악적인 힘도 있고. 분장의 힘도 커요. 대학원에서 채선생님의 분장을 분석하는 강의도 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헤드윅’은 이제 마니아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음악은 참 마니아틱한데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경우 많잖아요. 요즘 10센치나 장기하와 얼굴 같은. 이미 그 친구들의 음악은 인디가 아니란 얘기죠. ‘헤드윅’도 마찬가지예요. 꾸준히 사랑을 받고 강남에도 진출하고 하면서 ‘마니아틱하다, 대중적이다’ 이런 잣대가 무의미한 작품이 됐어요.

(채) 처음 올렸을 때랑 요즘이랑 느낌이 다른 게 뭐냐면 초창기에는 관객들이 거의 여자였어요. 근데 시즌이 갈수록 점점 남성 관객이 늘더니 지난 시즌 윤도현 씨 때는 거의 40% 정도가 남성이었어요. 연령도 높아지고요. 젊은 여성에 편중되어 있던 객석에 새로운 관객층이 드는 걸 보면서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데 열악했던 대학로 공연장 시절이 그립기도 해요. 뭐랄까. 좀 더 뜨거웠던 것 같아요. 저는 지금 ‘헤드윅’의 저력이 초연 멤버들의 힘이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이) 사실 매 시즌마다 얘기가 여러 번 나왔어요.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진 않지만 대학로에서 오만석, 송용진, 김다현, 조승우 이렇게 초연 멤버 그대로 다시 올려보자는. 언젠가는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헤드윅’ 잊지 못할 순간

(이) 음악이 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장 극대화시켰던 헤드윅은 역시 윤도현이고요. 예쁜 헤드윅, 스타일리쉬한 헤드윅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슬펐던 건 이석준의 헤드윅이었어요. 석준이는 현실에 가까운 트랜스젠더였어요. 몸이랑 목소린 완전 남잔데 마음만 여자인.... 그게 참 슬펐어요. 그래서 (정)성화가 헤드윅을 참 잘 할 것 같아요. 제가 본 배우 중에 캐릭터 소화가 최고인 배우거든요. 헤드윅이 나중에 가발을 벗었을 때, 남자 몸에 짧은 머린데 얼굴에 화장이 막 번져 있는 걸 보면 되게 슬프거든요. 성화 같은 친구가 헤드윅을 하면 그런 슬픔이 극대화될 것 같아요. 애써 감추려던 남성성을 드러낼 때의 아픔... 또 제가 잊지 못하는 게 ‘헤드윅 콘서트’를 위해 (존 카메론) 미첼이 내한했을 때예요. 처음 만나서 연습을 하는데, 미첼이 큐시트를 짜면서 어떤 노랠 부를까 묻더군요. 제가 ‘오리진 오브 러브’를 듣고 싶다고 했어요. 들으면서 완전 울었잖아. (웃음) 모두가 다 울었어요.

(채) 제가 헤드윅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니까 헤드윅이란 인물은 좀 나이도 있고. 연륜이 있는 배우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헤드윅이 워낙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잖아요. 헤드윅이 굳이 예쁠 필요는 없어요. 제가 아주 슬프게 기억하는 헤드윅은 초연 때 오만석씨였어요. 그의 드라마에 빠져서 모니터를 잊어버릴 정도였죠. 만석씨는 트랜스젠더의 아픔 이런 것보다 한 인간의 사랑에 대한 아픔이 진하게 느껴진 헤드윅이었어요. 그 때 ‘아 이 공연이 단지 트렌스젠더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거구나’ 생각했죠. 정상훈씨나 임창정씨도 참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첼은 저도 잊지 못하죠. 제가 미첼 분장을 했잖아요. 콘서트 때 마치 영화처럼 미첼의 얼굴이 전광판에 클로즈업되는데 울컥했어요. 같이 무대에 서니 어땠냐고 배우들에게 물어보니까 ‘우리도 헤드윅을 하고 있지만 미첼은 그냥 헤드윅 자체’라고 얘기들 하더라고요.

- 반전의 매력 있는 그들

(채) 감독님이랑은 초연 스태프 회의 때 처음 만났는데,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어요. 어둠의 포스가 느껴지고. (웃음)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지랑은 180도 다른 분인 거예요. 왜 같은 얘기를 해도 유독 재밌는 사람이 있잖아요. 마치 대학 때 MT 가면 웃긴 얘기로 좌중을 휘어잡는 복학생 선배 같은 느낌? 일할 때는 굉장히 멋있지만 평소에는 참 편하고 따뜻한 분이죠. 무척 가정적이시고요. 전에 석준씨가 상미씨랑 결혼을 앞두고 감독님한테 상담을 많이 했어요. 그 때 한 마디로 정리하시더라고요. ‘나는 다시 결혼해도 지금의 아내와 할 거야. 결혼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 라고요. 조니 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니 뎁이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카리스마가 있는데 실제로는 가정적이고 따뜻한 사람이라잖아요. 이렇게 반전이 있는 남자가 멋있죠. (웃음)

(이) 이렇게 극찬을 해주시다니. (웃음) 저는 여태까지 한 모든 작품의 분장을 선생님이 하셔서 우리나라에 분장 디자이너는 채송화 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웃음) 선생님과 인연이 참 깊은 것 같아요. 요즘 무척 바쁘셔서 공연장에 자주 못 오시는데 선생님 손길이 참 그립습니다. (웃음) ‘헤드윅’을 하면서 메이크업이란 걸 처음 해봤는데 여자의 마음을 알았어요. 화장이 잘 돼서 무대에 나갈 때는 우월감과 자신감이 넘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막 신경질 나고. 왜 메이크업에 공을 들이는지 알겠다니까요. (웃음) 선생님 첨 봤을 때는 워낙 마르셔서 무척 예민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전혀! 사실 모든 스태프 중에서 제일 힘든 분야가 분장팀이예요. 소위 말하는 노가다거든요. 제일 일찍 와서 제일 늦게까지 일하세요. 그런데도 힘든 내색 한번 안하시더라고요. 정말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 ‘헤드윅’은 나의 운명

(이) ‘헤드윅’으로 뮤지컬 음악 감독이란 걸 처음 맡았어요. 록뮤지컬 분야에서는 나름 제 입지를 다져줬고요. 24년 정도 무대 생활을 하고 있는데 ‘헤드윅’을 하고 있을 때는 저도 주인공이 됩니다. 다른 공연 땐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느낌이 강한데 이건 같이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거 되게 중요한 거거든요. 저의 에너지가 헤드윅한테 가니까요. 며칠 전에 그런 얘길 했어요. ‘헤드윅’이 롱런한 이유는 뭐고 어떻게 해야 더 롱런할 수 있을까? 첫 번째 나온 얘기가 계속 이 스태프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워낙 소통의 힘이 큰 작품이라... 폐쇄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그 끈끈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공연에 묻어난다고 봅니다. ‘헤드윅’은 음악감독 이전에 그냥 내 것이고, 끝까지 같이 갈 겁니다.

(채) 저도 ‘헤드윅’을 통해 본격적으로 뮤지컬 작업을 하게 됐어요. 많은 뮤지컬을 했지만 솔직히 모니터 몇 번 하면 좀 질리는 작품도 있는데 헤드윅은 볼 때마다 설레요. 백 번도 넘게 봤을 텐데 말이죠. 저는 제가 한 분장이 제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비록 제가 출연하는 건 아니지만 작가로서 작품을 무대에 올려놓는 거죠. ‘헤드윅’은 몇 백 명의 관객이 제 작품을 두 시간 동안 뚫어지게 쳐다봐 주시잖아요. 그래서 부담감도 크지만 자부심도 크답니다. 그런 마인드 때문에 ‘헤드윅’은 다른 사람한테 절대 못 줘요. (웃음) 제 작품이니까요. 감독님이나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수현(공연 칼럼니스트)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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