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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막에 가려진 몸, 필립 꽁브 - 까브 까넴무용단의 ‘드로모스 1’

 

아르코 대극장의 광활한 무대 위에 커다란 흰 막이 수직으로 떠 있었다. 이는 6월 3일 공연되었던 ‘모다페(MODAFE) 2008’의 해외 초청작, 필립 꽁브 - 까브 까넴무용단(Philippe Combes - Cie Cave Canem)의 작품, ‘드로모스(Dromos) 1’의 무대로 설치된 것이다.

공연소개를 보면 작품 ‘드로모스 1’을 “외부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이미지를 확립하지 못한 육체를 보여준다”라 설명하고 있다. 계란껍질 밑에 쌓인 하얀 점막 같은 천위에는 인체의 골격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양 같기도 한 형체 불명의 몽환적인 영상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이어 텅 빈 농구경기장, 누군가 홀로 공을 튀기고 있는 것 같은 반복적인 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이 영상과 소리의 연속성 안에서 나체로 꿈틀거리고 있는 무용수 델핀 로렌조(Delphine Lorenzo)의 움직임이 무대에 있던 흰 막 위에 투영되어 나타났다.

수직의 얇은 막 뒤에는 벌집 같은 철골구조물이 있었고, 무용수는 그곳을 자유로이 움직였지만 관객들은 무용수를 직접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흰 막 위에 영상의 코드로 전이된 델핀 로렌조의 움직임을 어렴풋이 인식할 뿐이었다.

결국 흰 막 밖으로 무용수는 나오지 않았다. 오직 그 막 안에서만 움직이고 표현할 뿐이었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 막 뒤에서 춤을 추던 무용수는 그 막을 뚫고 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에 자신의 몸을 계속 치대기 시작했다. 결국 흰 막 위에는 무용수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그 백지 위에 드러나는 그녀의 육체는 아르코예술극장 좌석에 채워진 약 육백 관객들의 시선에 의해 완전히 확립되지 못한 육체가 담긴 것이었다.

하긴 태어나서 내 얼굴 한번 직접 볼 수 없는 세상인데, 무엇인가의 ‘실체’를 확인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거울을 통해서 내 얼굴을 인식해야만 하듯 우리가 ‘실체’라고 알고 있고 또 믿고 있는 것은 늘 ‘드로모스 1’의 무대처럼 흰 막, 아니 그보다 더 두텁고 진한 막에 둘러싸여 있다.

흰 막에 씌워진 무용수의 몸, 그 움직임을 보며 관객들은 ‘실체’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힌다. 저 막을 갈기갈기 찢은 다음 더 선명하게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다는 욕망에 휘감긴다. 그러나 결국, 무용수는 막 밖으로 몸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고 이는 저 막을 찢어 그녀를 끄집어 낸다한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막으로 싸인 미완의 ‘실체’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Dromos 1’은 관객들을 포스트 모던적 감상에 빠트리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실체’의 존립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며 순수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만들었다. 어미의 자궁을 밀고 나와 차가운 메스가 살에 닿은 순간부터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는 사회의 억압과 강요가 각인되었고 지금의 나는 순수한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Dromos 1’을 감상한 관객들의 머리 위에는 심오한 물음표가 하나 떠다녔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진정 나, 그리고 실체는 언제나 투영되고, 만들어지고, 해석되고, 요구되는 것인가?’를 되묻고 있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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